제도화된 특권, 국민을 시험하는 오래된 방패

내 시선 속의 이슈

by 박동욱
273618_328715_3534.jpg 사진 / 이강산 기자출처 : 시사포커스(http://www.sisafocus.co.kr)




국회의 특권 논란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게 반복되는 풍경에 가깝다.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고, 그럴듯한 구호가 나와도 결국 구조는 그대로다. 국회는 늘 “개혁”을 외치지만, 국민들은 어느새 “또 시작이네” 하고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놀람은 사라진 지 오래고, 남은 감정은 피곤함과 냉소, 그리고 씁쓸한 분노뿐이다.


첫 번째 문제는 제도화된 특권이다.

국회의원이 가진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법으로 보장받는 권리다. 원래 취지는 분명했다. 윗선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껏 의정활동을 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특권이 책임을 피하는 방패로 자주 쓰인다. 막말이나 비방, 허위 발언이 문제가 되어도 “의정활동 중 한 말이다”라는 한마디로 상황이 정리된다.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와도 “불체포특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간만 흐를 뿐이다.


이 특권은 법과 관행으로 이중 안전장치 안에 들어 있다. 그런 만큼 개혁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실제로 개혁을 추진하는 순간 정치인들은 자기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말로는 “특권 내려놓기”를 외치지만, 정작 입법 과정에서는 논의가 질질 끌리다 임기 말로 미루고, 결국 그대로 사라지는 일이 반복된다. 그 사이 특권은 또 한 번 살아남는다.


두 번째는 기득권의 자기방어 본능이다.

여야가 겉으로는 치열하게 다투는 것 같아도, 특권 앞에서는 신기하게도 입장이 비슷해진다. 한 번 권력의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를 ‘지켜야 할 것’으로 여기게 된다. 각종 권한과 예산, 보좌 인력, 의전, 혜택 등은 마치 당연한 대가처럼 느껴진다.


“군사정권 때보다 지금 국회의원 특권과 부패가 더 심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과거엔 노골적인 권위와 폭력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법과 관행에 깊이 들어앉은 특권이 문제다. 더 교묘하고, 감추기도 쉬우며, 더 오래 버틴다. 정치권은 공천과 이해관계라는 끈으로 서로 엮여 있다. 이런 구조 안에서 “특권 축소” 이야기는 곧 나와 내 진영의 힘을 깎자는 말처럼 들린다. 결국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본능적으로 현상 유지를 선택하게 된다.


세 번째는 허술한 감시와 미온적인 처벌이다.

특권 남용이나 부패 의혹이 터질 때마다 정치권은 익숙한 절차를 밟는다. 진상조사위를 꾸리고, 대책 조직을 만들고, 강경 대응을 약속한다. 하지만 결과는 늘 비슷하다. 경고나 당원권 정지 정도의 조치만 취하거나, 자리만 옮겨 다시 활동을 이어간다.


법의 잣대도 할 말이 많다. 일반 시민은 몇 만 원짜리 실수에도 범죄자가 되기 쉽다. 반면, 권력자의 특권 남용에는 사과 한 장과 기자회견으로 위기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 수사는 느려지고, 공소시효만 줄어든다. 국민들은 이런 장면을 몇 번이고 보다 보면 결국 “법 앞의 평등은 말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제 식구 감싸기’는 단지 비유가 아니다. 국회는 자체로 징계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동료에게 중징계를 내린 사례는 매우 드물다. 강하게 징계하면 언젠가 그 불똥이 자기 진영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국민들 사이에선 ‘법이 공정하지 않다’는 불신이 더욱 깊어진다.


네 번째는 국민적 관심의 빠른 소멸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여론이 들끓는다. 각종 포털에 관련 기사와 댓글이 쏟아지고, 국민청원과 해시태그가 이어진다. 하지만 분노가 오래가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생계가 걸려있으니, 정치 이슈를 늘 최우선으로 삼기는 어렵다. 다른 사건이나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면, 예전 문제는 금세 뒷전이 된다.


정치권도 이 패턴을 너무나 잘 안다.

“일단 버티자, 이번만 넘어가자”는 식의 계산이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강하지만 오래가지 않는 국민의 분노가 오히려 특권 유지에 좋은 환경이 된다. 결과적으로 특권과 부패는 국민의 피로와 무력감을 먹고 살아남는다.


이렇게 네 가지 축이 얽히면서 특권은 견고하게 남는다.

법이 울타리를 치고, 기득권이 안전망을 두르고, 느슨한 처벌이 비용을 낮추고,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여론이 시간을 번다. 국민의 분노는 때때로 뜨겁지만, 특권의 구조는 참 쉽게 바뀌지 않는다.


국민이 느끼는 허탈감은 단순한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요구는 사실 간단하다.

“더 많은 권한을 가져도 좋다. 하지만 그만큼 더 무거운 책임을 져라.”

하지만 현실의 국회는 이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더 많은 보호 장치는 누리면서, 책임은 오히려 가볍게 지려는 모습이 반복해서 드러난다.


이제 질문은 명확해졌다.

“특권을 인정할 것인가”가 아니라, “특권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서 끊어낼 것인가”의 문제다.


만약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 필요하다면, 그 범위와 조건을 구체적으로 좁혀야 한다.

특권을 남용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정치적 생명을 걸 각오로 강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법을 만드는 사람일수록 법의 무게를 더 크게 감당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신뢰라도 유지할 수 있다.


정치권이 스스로 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결국 변화의 압력은 밖에서부터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노의 크기가 아니라, 기억이 얼마나 오래가느냐다.

한 번 터진 분노가 끝까지 이어질 때, 특권은 더 이상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된다.


국민은 여전히 묻고 있다.

“누가 이 특권을 만들었고, 누가 그 위에서 웃고 있는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국회가 내세우는 ‘개혁’이란 말은 결국 공허한 수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제도화된 특권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결단이 없다면, 국민의 끈질긴 질문과 기억이 조금씩 그 특권을 깎아내릴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낡은 특권을 끝까지 추적하는 국민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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