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상처를 숨기지 않는 리더

『끝까지 남는 사람』

by 박동욱


리더 자리에 오르면 가장 먼저 익히게 되는 기술이 있다.

실적 관리도 아니고, 프레젠테이션도 아니다.

남 모르게 상처를 감추는 법이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누군가 슬쩍 묻는다.


“팀장님은 이런 일 겪어본 적 없으시죠?”


순간, 머릿속에 오래된 장면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회사의 방침이라는 한마디에 내보냈던 그날,

인사팀에서 건네준 하얀 봉투,

텅 빈 책상 앞에 멍하니 서 있던 내 모습까지.


“아니야, 나도 다 겪어봤어.”

목젖까지 올라온 말이 잠깐 망설인다.

괜히 얘기하면 권위가 떨어질까,

‘이 사람도 별수 없네’라는 시선을 받을까

입술이 절로 굳어진다.


많은 리더가 그 순간 이렇게 말한다.

“음… 뭐, 다 힘들지. 그래도 버텨야지.”

딱 여기까지.

조금만 더 내밀면 고백이 되고,

여기서 멈추면 조언이 된다.

상처를 숨기면 말이 가벼워진다.

반대로 상처를 드러내면

같은 한 마디에도 무게가 실린다.


어느 팀장 이야기를 해보자.

평가 시즌을 앞두고 한 팀원이 버티지 못하고 결국 터지고 말았다.

“저, 이 일 자신 없습니다.

아무리 해도 눈에 띄는 게 없어요.

이 회사가 저를 정말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회의실 구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참는 모습을

다른 팀원들도 못 본 척하며 외면했다.

울음과 침묵이 뒤섞인 공기가 뻑뻑하게 굳어만 갔다.


그때 팀장은 침묵을 조금 더 허락했다.

그리고 의자를 살짝 앞으로 끌었다.

“나도 해고 통보받아본 적 있다.”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조금 흔들렸다.

장난처럼 들리지 않게,

자기 연민처럼 보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 다른 회사에 다니던 때야.

어느 날 갑자기 인사팀에서 부르더라고.

회의실에 들어가니 책상 위에 봉투 하나가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어.

‘회사 사정이 어렵습니다.’

딱 그 한 문장이 지난 몇 년을 한순간에 지워버렸다.

집에 가던 길이 기억나지도 않았어.

지하철에서 내렸는지도 잘 모르겠더라.

한동안 내 존재가 회사의 숫자 한 칸으로만 느껴졌다.

‘아,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구나.’

그 생각만 맴돌더라.”


사람들은 조용히 팀장을 바라봤다.

이 팀장이 늘 농담도 잘하고

결정을 빠르게 내리던 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팀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네 말이 남 얘기처럼 안 들린다.

나도 예전에 똑같은 자리에 있었으니까.

아무 데에도 기대지 못해 밤새 뒤척이던 적도 있었다.”


그 한마디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의 어깨가 한순간에 툭 내려앉았다.

누구 하나 박수를 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백은 상황을 바꾸진 못한다.

해고 사실도, 힘든 현실도,

평가 시즌도 여전하다.

하지만 고백은

사람이 자기 처지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준다.

‘나만 이런가’에서

‘나도 이 길 위에 서 있구나’로.


리더가 상처를 꺼내 보이면

팀원들은 자신의 아픔을 부끄러운 비밀이 아닌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리더는 언제나 강해 보인다.

흔들림도 없고, 피곤해 보이지도 않고

항상 정답을 아는 사람 같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묘한 벽이 생긴다.

“저 사람은 원래 잘하는 사람이야.”

“저런 고민은 안 해봤겠지.”

리더의 조언이 현실 속 조언이 아니라

머나먼 누군가의 교훈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따라가고 싶은 마음보다

비교하는 마음이 앞선다.


반대로 상처를 감추지 않는 리더는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저렇게까지 얘기해도 되나?”

“리더가 너무 약해 보이지 않나?”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사람 옆에는 묘한 ‘여지’가 만들어진다.

실패해도 완전히 망가지지 않을 여지,

한 번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여지,

실수해도 사람으로서 끝나는 건 아니라는 여지 말이다.


“나도 거기까지 가봤다”라는 한마디는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셈이다.

“네가 지금 선 자리가 끝이 아니야.

이 길의 끝에도 또 다른 길이 있더라.

나도 그 길을 이미 한 번 지나왔어.”

이 말은 윗사람이 아래로 던지듯 내뱉는 말이 아니다.

조금 앞서간 사람이 등을 돌려, 뒤를 바라보며 건네는 말에 가깝다.


리더가 자신의 상처를 꺼내 보일 때

가장 중요한 건 꾸밈이나 포장이 아니라, 그저 솔직한 순서다.

먼저, 내 실패를 털어놓는다.

그때 내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얼마나 작아지고 초라해졌는지,

또 어디까지 바닥을 쳐봤는지 말해준다.

그 후에야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다”라고 솔직하게 내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길 위에 서 있는 팀원에게 손을 내민다.

“너도 여기까지 올 수 있어”라는 가능성을 함께 나눈다.


상처 없는 리더십은 보기엔 반짝이지만, 쉽게 미끄럽다.

손을 대면 금세 미끄러지고,

뭔가를 올려둘 수조차 없어 보일 때가 많다.

반대로 상처가 드러난 리더의 모습은 표면이 거칠다.

손으로 만지면 울퉁불퉁하고,

세월이 남긴 자국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 거친 자국 덕분에

함께 매달릴 수 있고,

손이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다.


리더란 자리는

흠잡을 데 없는 증명사진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 눌어붙고,

실패와 후회가 남긴 주름까지 고스란히 담긴 얼굴이어야 한다.

상처를 감추지 않는 리더는

내가 안고 있는 흉터가

누군가에게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너도 괜찮아”라는 용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도 받아들인다.


팀 앞에서 모든 걸 다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아픔을 드러내며 특별한 사람인 척할 이유도 없다.

다만, 누군가 절벽 끝에 선 듯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아주 작게라도 이런 말을 건넬 수 있으면 충분하다.

“나도 예전에 거기 있었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어떻게든 한 발 내려설 수 있었지.

그러니까 너도,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게 끝이라 생각하진 말자.”


상처를 숨기지 않는 리더는

자기 강함을 뽐내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의 약함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 모습이 오히려

팀에게는 묘한 용기가 된다.

“아, 이 팀에서는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구나.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나도 거기까지 가봤어’라고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리더십이란 게 결국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끌어올리는 힘만이 아니라,

먼저 상처를 드러낸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조심스레 다시 일어서 보이는 힘일지도 모른다.


그 진심 어린 한 장면이

한 팀의 분위기를 바꾼다.

그리고 언젠가

그 팀 안에서

또 다른 리더가 자랄 것이다.

이번엔,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서.




작가의 이전글2부. 상처와 고백으로 서는 리더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