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선 속의 이슈
최근 교육 현장에서 소풍, 축제, 운동회가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 순간, 인근 주민들의 '소음 민원'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가 활동 중 찰과상이라도 입으면 학교는 학부모의 '안전 책임' 공세에 시달린다. 공동체의 축제였던 학교 행사가 이제는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 누군가에게는 '리스크'가 되어버린 삭막한 풍경이다.
이 현상의 중심에는 현재 부모 세대인 4050 세대가 있다. 1970~80년대 개발도상국 시절에 태어난 이들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격동의 구간을 지나왔다. 당시 부모들은 "내 자식만큼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헌신했고, 그 결과 지금의 부모 세대는 물질적 풍요와 과잉보호 속에서 성장했다.
문제는 이 '과잉'이 정서적 '결핍'을 낳았다는 점이다.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이들은 사소한 불편함을 견디는 힘, 즉 회복탄력성을 기를 기회를 놓쳤다. 본인이 불편하지 않은 삶을 당연한 권리로 학습하며 자란 아이들이 이제 부모가 되어, 내 아이 주변의 모든 '불편한 변수'를 제거하려는 '갑질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공동체 의식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지독한 개인주의와 예민함이 채웠다. 학교의 소음이 아이들의 사회성을 기르는 '생명력의 소리'가 아니라, 내 휴식을 방해하는 '소음'으로 정의되는 순간 공동체는 붕괴한다.
자녀를 향한 과도한 투사는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 할 아이들이, 부모가 미리 깔아놓은 카페트 위만 걷게 되면서 '온실 속 화초'로 고립되고 있다. 부모의 예민함이 아이들의 소중한 추억과 사회적 경험치를 강탈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은 본래 불편함을 견디고 타인과 조율하는 과정을 배우는 장이다. 운동회에서 흙먼지를 마시고, 넘어지고, 시끄럽게 응원하는 과정 자체가 교육이다. 이를 민원의 대상으로 삼는 사회적 기류는 결국 우리 아이들을 '작은 충격에도 부서지는 유리 구슬'로 만들 뿐이다.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갖췄다면, 이제는 그에 걸맞은 정서적 품격이 필요하다. 타인의 활기에 귀를 열어주는 여유, 내 아이의 상처를 성장의 훈장으로 바라보는 대범함이 절실하다. 우리가 '불편러'가 되어 목소리를 높일 때, 우리 아이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는 사실을 4050 세대는 무겁게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