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전문가로 살아남기

전문가란(feat.건축사)

by BOX book

위 이미지는 AI에 의해 제작한 결과물이다.


전문가는 살아남기 위해 지느러미 끄트머리로 쉬지도 않고 움직이는 상어의 꼬리뼈처럼 끝없이 움직여야 한다. 움직인다는 건 살아있는 것과 같고,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때론 상어의 이빨처럼 날카로워지고, 때론 상어의 등지느러미처럼 누군가에게 보이기만 해도 무서워 보여야 할 때도 있다. 또한 조용하게 움직여 아무도 알아챌 수 없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다른 사람을 이끌고 결과물을 이끌어내어 감동을 주어야만 하는 직업인 전문가는, 유연하게 산호 사이를 요리조리 움직여 먹이를 사냥해야 살아남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언제나 칙칙하고 칠흑같이 새까만 심연을 무서워하며, 날렵하게 먹이를 사냥해 살아남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직업이다.


어려서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나는 미술 시간 중에 그리기보단 조각이나 모형 만드는 것에 더 재미를 느꼈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었고 그게 좋았다. 그러므로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직업을 가지기로 했고, 먼 나라 어느 건축가의 건물을 보고 놀라 처음으로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중간에 IMF란 큰 쓰나미로 우리 집이 쓸려나가 버려 그 결심이 꺾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5년의 군 생활로 돈도 벌고 경기도 좋아질 시간을 벌었다. 제대한 후에는 음식 만들기도 좋아했던 터라 요리사도 꿈꿔 보았지만, 1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하신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에 그 결심은 꺾였고, 다시 '건축'으로 돌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어 대학교로 복학하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요리를 하고 그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 요리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꺾이지는 않은 듯하다. 현재는 그것 또한 나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무엇을 만들고 그것에 대해 누군가 좋아해 주는 직업이 전문가이지 않을까?


모든 교육의 기본인 초중고를 지나 감명을 받은 누군가에 의해 건축이라는 전문가의 길을 선택했고, "나는 건축과 결혼했다"는 자의식이 만들어낸 객기로 내던진 농담 속에 숨어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하여 여기까지 왔다는 확신을 가지려 한다. 대학교 때 선배들의 거창함과 후배들의 구차함 속에 나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다양한 노력을 했었다. '라꾸라꾸' 침대와 이불, 학교 화장실 한편에 개조된 샤워실과 값싼 학식으로 버티고 노력했던 시간들. 스튜디오에 모여 페트병 소주와 깡으로 끝나는 과자들로 끊임없이 얘기했던 '건축'이란 주제들.


거창했던 선배들의 "새벽 3시는 돼야 영감이 떠오른다"는 말과 "어떻게 하면 설계를 잘해요?" 물어오는 구차한 후배들의 질문 속에, 나는 설계를 좋아한다는 한숨과 같은 다짐을 찰떡같이 믿으며 밤새 술 마시고 작업했었다. 터무니없이 보잘것없던 그 대학 시절을 넘어, 신입 1년 차라는 현실의 벽이 전문가로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