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의 시작

갑작스런 서울상경

by BOX book

언젠가 건축사의 길을 걸으며 보잘것없는 나의 설계 경력에 대한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차마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고발(?)하며 우리나라에서의 전문가에 대한 대우를 나의 인생에서 들여다보길 기대하는 마음이었지만, 부끄러운 속내까지 들춰내기엔 나의 자존감이 그리 우월하진 못했다.


거창하지 못한 시작과 부끄러울 만큼의 나의 작업들을 꺼내 세상에 알리기에는 아직 어리숙하고 부족한 나이기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 건축사를 따고 '총알 없는 전쟁터'라는 고리타분한 말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경쟁사회에 홀로 떨어져 5년이란 세월을 견디고 버티다 보니, 이제 조금 용기란 게 나서 글을 쓰겠다는 의지가 생겼던 것 같다.


"건축사는 전문직이라 졸업하면 곧바로 취업할 수 있어!"


나의 가벼운 결의문이 무색하게도 취업이 안 됐고,


"졸업만 하면 취업된다면서~?"


라며 역으로 돌아온 가족들의 압박문.

졸업을 앞둔 겨울날 되물어 오던 가족들에게 숨조차 쉴 공간마저 가지지 못해, 친한 선배에게 부탁해 들어간 회사가 나의 첫 직장이었다.


2009년 11월 말, 후배네 원룸 유리창의 서리가 얼어 예술 작품을 만들던 추운 겨울날 서울 건대 인근.


"곧바로 일하러 서울로 와~"라는 선배의 말과 "올라오면 같이 살자"는 후배의 따뜻한 말에


찾아간 후배의 집. 이불 한 채 사 들고 들어간 날, 채 하루도 지나지 못하고 "밥 한번 먹자!"란 거취레 말임을 사실 적시한 후배에게서 떠나, 김건모의 '서울의 달'을 읊조리며(이때부터 이 노래가 사무쳤던 것 같다) 친구가 추천한 남성역 인근의 지하방으로 서울의 터를 잡았다.


가로수길 인근에 위치한 오피스텔에 사무소를 운영하는 선배는 아파트 착공 후 특화 디자인 업무를 전담하는 사무소로,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디자인 회사'였다. 이것조차 구별하지 못할 때, 군대에서 얘기하는 '사수'라 부르는 직속 선배의 까칠함은 5년간 해군 부사관으로 많은 사람을 보고 경험했지만 그것조차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사장인 선배가 사무실에 없던 날에는 게임을 하는 대담함과 업무에 있어 등한시하는 자신감까지 보이면서, 허구한 날 지각하는 꾸준함으로 어쩌다 늦으면 옥상에 올라 혼을 냈던, 나의 인생 최악의 캐릭터가 된 '사수'였다.


물론 배울 건 있었다. 사람의 됨됨이보단 그 사람의 능력이나 실력을 배우고픈 마음이 아직 이 길을 걷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선배로서의 사장님은 내가 서울에 정착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갑작스러운 후배의 사실 적시로 집에서 쫓겨나 급전이 필요해 부모님께 손을 벌렸고 겨우겨우 방값은 맞출 수 있었지만 얼마 없던 나의 지갑 사정으로 필요한 생활용품조차 살 수 없어 좌절하던 그 시절, 선배는 많은 걸 선물해 주었고 월급은 작지만 점심까지 제공해 주는 다정함으로 잘 버텼다. 사장으로서의 선배님은 사무실 관리를 어려워 했다. '사수'인 대리를 관리하지 못했고 '수금'에 대해 미숙했다. 9개월이 지나던 어느 날, 나는 졸업을 했고 회사는 직원 한명을 더 뽑았으며 M.T.까지 갔다 오기도 했지만, 월급이 두 달 밀렸고 선배의 휴업으로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온 지 채 1년도 안 된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