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달

양재거리

by BOX book

첫직장의 아픔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인생 첫 실업급여라는 지원금을 손에 들고.

반지하방 한 칸에 쪼그라든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정리로 분주하지만, 나의 하루는 크게 분주하지가 않았다.

2년 차이지만,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특화사무실에 있던 나의 이력은 나를 우그러뜨렸고.

그래도 곱게 핀 마음으로, 여러 사무소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다.

‘연봉을 알려주마’의 뒷담화들을 들으며, 각자 맞는 사람, 맞는 직장이 있는 거라 생각이 들어
안 좋은 얘기들이 있어도 이력서를 제출했다.


“겨울 한가운데서, 나는 내 안에 꺾이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알베르 카뮈
(그때는 그 말을 몰랐고, 나는 그냥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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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한 달 조금 지나 두 번째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은 ‘연봉을 알려주마’ 소희 말하는 건축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카페에 안 좋은 글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신봉하던 애플의 최초 버전을 최초로 산 아이폰 3GS에 지하철 앱과 버스 앱을 깔고.
굽이굽이 찾아간 회사는 50평가량의 큰 사무소였다.

정리되어 있지만 정신이 없었고 다른 사무소와 같이 운영을 하고 있어

사무실을 이용하는 사람도 거의 12명 정도였다.

나의 자리는 운 좋게 창가 자리였다.
사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딱 맞는 자리였다.

창가에 앉으면,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도 하늘만큼은 늘 있었다.


“내게 오는 조각들을, 그저 배열하라.”-버지니아 울프
(정리되어 있는데 정신없는 그 사무실에서, 나는 내 조각들을 배열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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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배치의 환영식에도 불구하고 퉁명한 목소리로 외치는 12년 차 실장님.


“부산 사람이가? 나도 부산 사람이데이!”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처음에는 싫었고 속으로 수백 번을 욕했더랬다.

'연봉을 알려주마'의 정보력이 뛰어난 것인가? 란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난후에 느끼는 점은 결국 맞는사람 맞는 직장이 있다는 결론이다.


우리 사무실은 소장님과 2명의 실장님 그리고 찌끄래기인 나.

총 4명에서 운영하는 회사였다.

1년간 다른 사람이 완성한 기본도면을 가지고 디자인하고 디자인된 도면을 작업하다가

첫 건축설계를 시작하게 된 설익음.

처음 던진 과제는 정화조 도면이었다.


“정화조 도면 그려봐라.”


그 소리로 움츠러들었고 학생 때 졸업작품이 버스터미널 재건축이었던 게

목에 걸려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도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 꿀꺽 삼키며,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소비해

심혈을 기울여 그린 다음 가져갔다.

아니나 다를까, 1년간의 경력은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다시~~!”

수정하고 가져가면,
“다시~~!”

수정하고 가져가면,
“다시~~!”

속에서 울화가 치밀렀지만 꾸역꾸역 그려 갔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이동하고, 배치하고.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지금은 10분도 안 걸릴 도면을 그때는 하루 종일 그렸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으련만.

“시트 내 도면 배치랑, 치수선 스케일이랑, 글자 크기 같은 것들 도면에 알맞게 그려 넣어줘.

‘도면 작성지침’ 줄 테니까 그거 참고해서 그리면 돼. 다른 도면들도 줄 테니 참고하면 될 거야.”

이렇게 친절하게 자료와 내용을 설명하면 좋았을 텐데,
그 실장님은 부산 사람의 까칠함과 말수 적음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는 스타일이었다.

그때는 몰랐음이다.

그래서 머리를 쥐어짰고, 울화를 머리끝에 쑤셔 박았다.

속으로 엄청 욕했고, 저주를 퍼부었다.

집에 갈 때면 꼴을 안 보게 돼서 그것조차 행복이었다.

그렇게 ‘다시’의 지옥 속에 지내다 처음으로 제대로 도면을 그리기 시작한 건 구조 도면이었다.

그 실장, 이제는 형이다.

그 형은 본인이 배운 방식으로 나를 가르친 듯하다.

그래서 제일 중요해서 무조건 배워야 하고,
제일 쉽게 따라 그릴수 있어 무조건 그려야하는,

구조 도면을 신입에게 시키는 것이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보내온 도면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거라 어렵지는 않았다.

이해하기보단 트레싱지(밑이 보이는 종이)를 대고 그리듯 그대로 따라 그리는 거였지만.

그것조차 제대로 못 그려 ‘다시’를 수천 번 들은 듯하다.


“세상은 누구나를 부러뜨리고, 그 뒤에 많은 이들이 부러진 자리에서 강해진다.”-어니스트 헤밍웨이
(나는 그 부러진 자리에서, 도면을 처음부터 그리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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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위치는 양재와 개포의 경계점에 있었다.

집에서 지하철 세번의 환승과 버스를 갈아 타고 40~50분 거리를 지나야지 회사에 도착했다.

사당에서 2호선 갈아탈때가 가장 지옥이였다. 치이고 밟히고 눌리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서울에 올라온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였고,

대학교 때 집이 1시간 거리라 너무 멀어 학교에서 살았을 정도였는데,

이젠 매일 이 거리를 왕복하려니 쉽지는 않았다.

첫직장이 집앞에서 지하철 한번만 타면 가는 곳이여서 적응이 오래걸렸다.

그래도 바로 옆에 구룡산이 바짝 붙어 있어 공기는 좋았다.

다만, 봄·가을철의 꽃가루가 내 코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만 빼면 말이다.

그래도 가끔 그 거리의 은행나무 풍경과 도토리 사골탕, 홍합짬뽕은 잊히지가 않는다.


'google AI studio 생성이미지'

[prompt] 양재에 있는 4차선 한적한 도로에 8m의 넓은 보도가 있고 계절은 가을,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에 나무잎이 흩날리며 떨어지고 가을옷을 입은 사람들은 찬바람 기운으로 몸을 움추리며 걷고있다. 새벽의 따뜻한 햇살이 막 밝아오고 지나가는 할아버지는 은행을 줍고 청소미화원이 거리를 쓸고 있다. 카메라는 걸어가는 사람의 시선이다. 주변건물들은 3~6층 정도의 낮은 건물들이 즐비해 있고 하늘은 가을하늘이라 구름이 아주 조금 흘러가고 있다'


10개월 동안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두 건 다 어린이집이었다.

신입인 나는 도면보다 비주얼인 투시도 작업이 위주였다.

이전 사무소의 깍쟁이 대리에게 받은 다양한 자료와 기술들은 학생 때보다 실력을 키울 수 있어서

투시도 하나만은 자신이 있었다.

설계도면(건축, 구조, 조경, 토목, 기계, 전기, 통신, 소방)과 시방서 및 계산서들을 3부씩 출력하여
한 트럭의 결과물들을 만들었고 그게 인생 첫 납품이자 작품이었다.

서울에서 먼 현장이라 직접 공사되는 걸 보지 못하는 게 많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첫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기쁨은 잊을 수 없었다.

납품 후, 이어지는 프로젝트가 없었다.

엎친 데 덮쳐 감리 현장에 있던 실장님까지 업무를 종료하고 복귀했다.

새로운 현장이 없는지 사무실 내근을 하셨다.

소장님은 수주하러 분주하게 다녔지만 별다른 수익은 없었고.

하루하루 일이 없어 업무가 아닌 스터디 시간만 늘었다.


‘또다시 이직을 해야 하는가?’


그런 고민이 들 때쯤, 소장님이 또 다른 길을 제시하셨다.


“가자~~! 아는 사람이 일이 많아, 많은 인원 충원이 필요하다고 하네.”


지인의 합병? 인수? 요청이 왔다는 것이다.

회사 멤버들을 이끌고 선릉에 위치한 사무실로 모두 이사 들어간다는 것이다.

거기 사무실로 입사한다는 것이다.

추가로 들어가면서 인원 충원 요청까지 있었는지 대리님 한 명까지 추가로 뽑았고.

이하 총 5명이 양재의 시골 풍경을 뒤로하고 도심 속 번잡한 선릉으로 이사 가게 됐다.

정글속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