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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 후각으로 떠나는 여행

15. 더치커피

15. 더치커피  

   

“자신을 아는 것에 대한 얕음과 깊음, 그리고 고르고 치우치는 것은 당연히 다른 사람을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남을 아는 것이 깊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아는 것도 깊고, 남을 아는 것이 얕은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아는 것도 얕으며, 고르고 치우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자신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어찌 자기의 사정만 알고 남의 사정을 모르는 것일까?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모든 일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한 뒤에야 곧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남의 사정을 아는 것에 소홀하면서 자신을 밝게 안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식견이 천박하고 치우친 사람인 것이다 “ (최한기의 기측체의 중)   


같은 식물에서 추출한 향이라도 나라와 지역, 심지어는 시간에 따라 다른데, 특히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향이 빨리 메말라 버리기 때문에 많은 향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증발이 약한 시간대인 새벽에 식물을 채집해야 한다.


커피의 맛과 향기는 찬물보다는 뜨거운 물에서 잘 녹아난다. 또한 뜨거운 물로 추출한 커피는 빠른 시간 내에 마시지 않으면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없다. 커피의 향은 강하기는 하지만 대게 머무는 시간이 짧아 오래 간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에서 로브스터종의 커피가 재배되었는데, 이것을 유럽으로 운반하던 선원들이 장기간의 항해 중에 변함없는 맛과 향을 가진 커피를 마시기 위해 고안한 것이 바로 더치(네덜란드) 커피라고 한다. 

찬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커피를 내리면 커피의 쓴 맛이 적게 나면서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숙성되어 독특한 맛과 향이 있어 오래 보관해도 변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뜨거운 물과 짧은 시간을 통해 커피를 추출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게 찬물과 기다림이란 화두로 맛과 향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아 바로 더치커피의 방식이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양평에 있는 한 주간보호센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은 은퇴 여성 교역자들의 모임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 목사는 60세가 넘으신 독신의 은퇴목회자였는데,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내게 차를 건넸고, 생각지도 않게 더치커피를 만나게 되었다.

이곳의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한 잔의 커피는 참으로 향긋한 냄새로 내게 다가왔다. 그동안 무수히 마셨던 커피와는 또 다른 맛을 전해주었다.      


차 한 잔이 공간과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사뭇 깨닫게 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노인 복지를 위한 작은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그녀의 삶은 아름다웠으며, 그녀가 건네준 다소 아이러니한 커피 한 잔은 그녀가 전해주는 행복을 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김 목사는 은퇴 후에 이곳으로 와서 생활하며 주간보호센터를 관리하고 차량을 운행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저녁 무렵에 도착하였던 터라 곧 어르신들의 귀가를 위해 차량 운행을 해야 하기에 우리에게는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아주 짧은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받는 한 달 사례비는 30만 원, 그 돈마저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모와 두었다가 어르신들을 위해 회식을 하거나 파티를 열어준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자신과 가족을 위해 아니면 이웃과 세상!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사랑 가지고는 힘들 것이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에서 그분을 발견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떠나기 전에 지금은 몇 개 남아있지 않은 오래전에 만들었든 향수 하나를 그녀에게 드렸다. ‘소지(작은 땅)’라고 붙여진 이름만큼이나 그 작은 땅에서 자신만의 향기를 날려 보내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향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치커피!

차가운 물과 오랜 기다림으로 탄생되는 하나의 숙명과도 같은 그 삶이 어쩌면 그녀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오랜 기다림으로 향과 맛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더치커피는 바로 그녀였다.     

틀을 깬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 작은 틀이 다른 세상을 보여주니 말이다.    


그녀와의 짧은 만남의 시간을 끝내고 돌아서는 내게 카이로스의 시간은 또렷하게 말하고 있다

"영원한 순간을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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