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순간 - 후각으로 떠나는 여행

14. 목련꽃이 아름다울 때

14. 목련 꽃이 아름다울 때 


“물건을 씹어서 맛을 가리는 것은 미루어서 헤아리는 것이고, 요리로 맛을 내는 것은 헤아려서 미루는 것이다.

글을 읽어서 뜻을 아는 것은 미루어서 헤아리는 것이고, 글을 지어서 말에 통달하는 것은 헤아려서 미루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처음으로 배울 때에는 미루어서 헤아리나, 이해할 때가 되어서는 헤아려서 미루지 않는 것이 없다. 

옛사람이 지식과 행동을 논한 데에서 흔히 지식을 앞세우고 행동을 뒤로하였는데 이것은 먼저 미루어 헤아리는 것부터 시작하여 점차 헤아려서 미루는 데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최한기의 기측체의 중)


아침에 만난 꽃은 향기를 드러낸다. 그것은 하나의 무리로 모여 떠도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바람이 멈추어선 곳으로 퍼져가는데, 촉촉한 공기와 따스한 햇볕은 향기를 서로 비비게 하여 바람에 실어 보낸다. 후드득! 한낮에 내리는 소낙비는 꽃을 적시고, 잎과 줄기, 뿌리를 이 도시 곳곳의 빈 땅에서 자라게 한다. 그리고 꽃은 나무의 향기와 함께 바람이 머문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꽃은 향기로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이니까.


꽃은 아름답다. 하지만 더 아름다운 것은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기를 연상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꽃인 것이다. 후각은 향기의 주체지만, 마음에 있어서는 다른 감각과 다름없는 하나의 객체일 뿐이다. 우연히 맡은 꽃향기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대학 졸업식에 받았던 꽃다발이 떠오르는 것은 꽃과 향기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때문일 것이다. 곧 후각이 우리 마음을 기쁨 혹은 즐거움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임을 절실히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 런지.         

      

알코올의 발명은 향수 발전의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이때부터 식물성이나 동물성, 합성 향유 등을 수십에서 수백 종 이상 혼합시켜 알코올에 용해하기 시작했다.     

향유와 알코올은 잘 융화되지 않기에, 향수의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안정 상태에 이르게 되는 숙성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제대로 된 향수를 만나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보통 3개월에서 1년 정도 섭씨 8도 정도의 공간에서 숙성시켰으며, 숙성된 향은 병에 담기 전에 여러 번 여과 과정을 거치며 품질 이상 여부를 점검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러한 숙성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초단파와 극초단파를 이용하여 짧은 시간에 숙성 효과를 높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편리함과 빠름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지만 아날로그가 가진 추억을 줄 수 없듯이 기다림이 없는 향수도 그와 같을 것이다. 

    

우리의 후각 체계는 감각들 중에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이다. 실제로 자궁에서 12주가 되면 냄새에 대한 감각이 완전하게 가능하다. 우리의 시각계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려면 태어난 뒤로도 여러 해가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다. 아이가 자궁에서 세 달 만에 완전한 후각 기능을 갖춘다는 사실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냄새에 대한 학습은 시작한다는 뜻이다. 엄마가 섭취하는 것이 양수에 화학적으로 남으며 양수에 있는 냄새 분자를 태아가 지각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익숙하지 못한 봄과 익숙한 들음을 비교하면, 보는 것이 듣는 것만 못하므로, 반드시 전후에 들은 것을 가지고 참고하여 경험으로 삼아야 한다. 또 익숙하지 못한 냄새를 맡음과 익숙한 맛을 봄을 비교하면, 냄새 맡는 것이 맛보는 것만 못하므로, 반드시 전후에 맛본 것을 가지고 참고하여 경험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근심거리는 항상 자기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상대만을 탓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먼저 나의 문제를 살피고 그 뒤에 피차를 서로 참조하고 전후를 따져 서로 경험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후각을 통해 다가오는 폭풍을 일찌감치 알 수 있었습니다. 먼저 폭풍이 다가옴에 따라 콧구멍은 커지고, 더 강하고 멀리 퍼지는 대지 냄새의 홍수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빰에 빗방울이 튀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폭풍우가 물러가면 냄새는 점점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저 공간 너머로 소멸합니다.”(헬렌 켈러)     


자연 소재에서 추출되는 향수의 기본 원료는 오일과 수지, 그리고 앱솔루트인데, 이것들을 세포 조직 속에 포함하고 있는 식물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25만 종의 식물 중에서 약 2천 종을 차지하고 있다.          

자연에서 향기를 포집한다는 것은 식물의 채취와 추출을 의미하는데,. 수많은 꽃잎과 나무의 수지를 모아서 에센스를 뽑아낸다. 이 힘든 과정을 통해 얻어낸 향 자체는 아름답지만, 처음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향료와 향목(香木)은 그 자체로도 좋지만 찧을 때 더 좋은 향기가 나는 것처럼 향의 원료인 식물은 하나의 아름다운 향기의 원천이 되는 순간의 에센스를 만들기 위해서 철저히 자기의 모습을 잃고 변형되며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곧 자신을 희생한 사랑이 아름다운 향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료를 사용해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는 마음과 생각으로 향을 창조하게 된다. 


특정한 향을 떠올리고, 성분을 섞었을 때 어떤 냄새가 날지 상상하며,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다. 향은 사람의 마음을 따라간다. 그리고 생각과 마음을 읽어낸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자야말로 진정한 자신만의 향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해마다 이맘때, 아니 한 여름엔 항상 생각나는 여름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혼자 그를 기다립니다. 그에게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금방 들어갈게"라는 목소리를 말입니다. 전화가 옵니다. 그리고 난 또 기다립니다. 그가 오기를.....

더위에 빨개진 얼굴 위로 맺힌 땀. 그리고 지난여름에도 입었던 마소재의 긴 팔의 재킷, 차가 없었기에 그가 밖에 일을 보러 나갔다가 버스를 타고 오는 날이면 언제나 이랬습니다.     


어느 날은 내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가 경복궁 전철역에 몇 시까지 도착한다고 하면 전철역 근처 치킨집 앞에서 그를 기다립니다. 그가 지하철 출구에서 나옵니다. 더위에 지친 그 사람..... 

난  치킨을 먹고 그는 덥다며, 그리고 여름엔 빙수가 있어서 좋다면서 팥빙수를 먹습니다. 그리고 우린 따갑게 내리쬐는 볕 아래로 걸어 버스에 오릅니다. 그리곤 사무실로 들어갑니다.     


더운 계절이 돌아오면, 또 볕이 뜨겁게 내리 쬐이면, 나무들조차도 지칠 때면 난 항상 이런 옛일이 생각나고, 마음을 표현할 수 없게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그땐 우리에게는 차도 없었고, 갖춰진 사무실도, 직원도, 연구소도 없었습니다. 오직 우리 둘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꿈은 언제나 떠돌았고, 어딘가에 있겠지만 마치 안갯속에서처럼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광화문에서 점심을 먹을 때 밖을 보니 이런 생각에 맘이 뭉클했습니다. 맘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때의 당신이 말입니다. 우린 그때에 비해서 많은 것을 가졌고, 이룬 것도 많고 이제 꿈은 더 이상 떠돌지 않으며, 안개는 걷혀서 조금은 떨어져 있지만 그리 멀진 않습니다. 서서히 다가오고 보인답니다. 우린 정말 많은 것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며,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서로의 곁에 있으니까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이젠 당신이 더운 여름에 긴팔 재킷을 입어도 시원하겠지요. 우리의 애마가 시원한 바람을 몰고 오니까 말입니다. 송골송골 맺힌 땀도 이젠 다 지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매년 이맘때가 되면 똑같은 일을 회상할 겁니다. 그때도 역시 볕은 따갑고 나무들은 지쳐있겠지요. 그리고 항상 함께 할 것입니다. 

                    

흐린 날이 운치가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말입니다. 어디론가 여행을 하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아무런 예정도 없이, 우리가 왕포마을로 갔던 그때처럼 말입니다. 약간은 무더워 지치는 그런 날에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땀을 흘리며, 당신과 시골의 버스터미널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버스도 기다려 보고 싶고, 작은 일로 싸우기는 해도, 그래도 좋았던 우리의 여행이 오늘 문득 생각이 납니다. 그런 날에 남들은 더위에 지쳐도 우린 서로를 보면서 더욱 신이 났던 날들.. 바로 오래전 우리의 모습이군요. 


사랑합니다. 저와 함께 이런 여행 다시 한번 하지 않으시겠어요? 그것과 더불어 시간여행도 함께 말입니다. 당신과 함께 햇살이 뜨거운 날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늘 내게 슬프게 느껴지는 목련이 아름답게 보일 그날을 기대합니다."  


 늘 슬프게만 느껴졌던 목련꽃이 이 봄에는 당신이 아름답게 여길 것이라고 확신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이전 13화 순간 - 후각으로 떠나는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