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중국요리 집,춘화원
13. 중국요리 집, 춘화원
“말은 입에서 나오고 음식은 입으로 들어간다. 성실한 말은 나오는 것과 들어가는 것이 서로 좋아하고 일치되며, 굽이돌아 서로 만나고 나를 통해 남을 은혜롭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등지고 해치며, 분주하고 어긋나며 나로 인해 남을 해치는 것은 허망한 말이다.
곧장 음식을 청하는 것은 비렁뱅이나 하는 일이다. 공을 들여 음식과 말을 만들고 청함은 산과 바다와 같은 일이니, 이것이 바로 말과 음식이 서로 좋아하고 일치하는 것들이다.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정직과 신뢰를 쌓아 그에게 먼저 양보함으로써 그가 나에게 양보하며, 남에게 먼저 주면 남이 나에게 주는 것이니, 이것이 곧 말과 음식이 굽이돌아 서로 만나는 것을 말한다”
(최한기의 기측체의 중)
감각을 이용하는 방식은 정확히 똑같다. 하지만 그것은 감각의 지리적, 문화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양상에 의해서다. 그래서 감각은 우리를 과거와 밀접하게 이어주는 것이다.
미각 하면 대개 기본적인 네 가지 맛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은 다섯 가지가 있다. 짠맛, 신맛, 단맛, 쓴맛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견된 우마미(umami)가 있다. 우마미는 아미노산 MSG의 맛으로 순수 단백질의 맛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서양 요리에서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 바로 육수다. 그래서 맛의 대부분은 미각이 아니라 후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미각과 후각을 구별 짓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냄새에 대한 반응은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맛에 대한 반응은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점이다.
우리는 냄새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만한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가령 그림을 볼 때, 그 그림의 색채나 이미지 등을 묘사할 수 있는 말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반면,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는 쉽게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그것은 냄새에 대한 경험이 사람마다 다르기에 하나의 기호나 언어로 표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 냄새와 함께 한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나의 고향은 작은 항구도시인 마산이다. 지금은 창원시에 편입되어 버렸지만, 중학교 때까지 살았던 이곳은 기억하지 않아도 언제나 바다와 선창의 생선 비린내를 떠오르게 한다.
우리 집은 시내 근처라 맛있는 음식점이 즐비했다. 아버지는 특별한 날이 되면 언제나 화교가 운영하는 선창가 근처의 중국요리 집, 춘화원으로 가족 모두를 데려갔다. 그래서인지 중국요리의 냄새는 늘 아버지를 떠오르게 한다.
춘화원의 많은 요리 중에서도 특히 라조기가 맛있기로 유명했다. 요리가 나올 때의 냄새는 정말 잊을 수 없었다. 마치 긴 터널을 지나 밝은 빛을 만나는 순간처럼 말이다. 그 시간이 그립다. 하지만 그 맛과 향기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정말로 어렵다. 우리의 언어는 너무 한정적이기 때문이라.
라조기는 같은 닭으로 만든 요리인 깐풍기와는 사뭇 다르다. 깐풍기는 국물 없이 마르게 볶은 음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튀겨놓은 닭고기에 양념을 버무려 놓은 요리를 말한다. 반면에 라조기(고추 닭고기)는 튀겨놓은 닭고기에 양념과 전분을 풀어 넣어 걸쭉하게 볶아낸 요리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그 둘은 양념과 물기의 차이인데 간 짜장면과 보통 짜장면으로 비교해보면 쉬울 듯하다.
라조기를 만드는 재료는 닭고기와 붉은색 건 고추, 다진 마늘, 생강, 대파, 피망, 계란, 표고버섯, 죽순, 양송이버섯, 굴소스가 필요합니다. 물론 요리사의 조리법에 따라 조금씩 재료가 다르긴 하겠지만 통상 사용되는 재료는 비슷할 것이다.
먼저 양송이와 죽순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치는데 그 순간 흙과 수목의 냄새가 습기를 따라올라 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청경채는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데쳐주는데 그 냄새가 파릇한 삼월의 봄내음을 실어온다. 야채는 미리 썰어서 준비하고, 다진 생강 반은 생강술을 만들어 주면, 그 향기는 코끝을 톡 쏘며 닭의 비릿한 냄새를 부드럽게 해 준다.
닭은 살만 발라내고, 여기에 소금과 청주(혹은 와인)로 간을 해주고, 발라둔 닭 뼈는 육수로 만들어 둔다. 그리고 닭 살코기는 밀가루에 계란 흰자를 넣고 골고루 묻혀서 길쭉하게 한 번, 그리고 다시 한번 튀겨낸다.
기름에 튀겨진 닭고기는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제어하며 식욕을 자극하고 요리가 완성되기도 전에 저절로 손이 가게 해준다. 총 2번 튀긴 닭고기는 꼭 기름을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닭과 식용유의 기름기가 혼합되면 역한 냄새를 일으키며, 또한 바싹바싹한 식감을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제 플라이 팬에 고추기름을 두르고 홍고추를 살짝 볶고 꺼낸다. 그러면 매운 냄새가 코끝을 맴돌며 허한 위를 자극한다. 그리고 파, 마늘, 생강을 넣은 다음 간장과 생강술을 넣어준다.
미리 준비해둔 육수에 재료를 모두 넣고 끓인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튀긴 닭과 버섯을 넣고 소금, 후추, 설탕, 식초와 고춧가루, 굴소스로 간이 고루 배게 한다. 그리고 전분을 넣어 약간 걸쭉하게 만들면 완성되는 것이다. 완성된 요리는 담는 그릇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니 그릇의 선택이 중요할 것이다. 마치 좋은 향수를 담는 향수병과 같이 말이다.
이제 라조기의 냄새가 후각의 터널을 향해 돌진한다. 이 향기는 점막 세포에서 반응하며 서서히 뇌의 후각 기억에 남겨지는데, 긴 시간을 통해 이루어진 냄새는 순식간에 점착되고 아련한 추억의 한 장면으로 각인될 것이다.
향기를 창조하는 조향사는 각 원료들이 섞였을 때의 냄새를 상상한다.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도 그들은 알고 있다. 마치 요리사가 식재료를 가지고 만드는 음식을 미리 알고 있듯이 말이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돌아가신 지 아주 오래되었는데도 언제나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며, 사랑이었다. 고등학교 교복을 사러 가서 맛있는 돈가스를 함께 먹었던 아버지! 그와 함께 하였던 시간이 그립다.
하지만 난 아직도 아버지가 바라던 아들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아들은 언제나 아버지가 바라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걸까?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버지이기보다 아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끝없이 사랑받고 싶은 욕구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받은 그 사랑을 우리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돌려주어야 할 것 같다.
오늘따라 유난히 중국요리 집 춘화원에서 라조기를 먹고 싶은 것은 아버지의 냄새가 그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