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보 야경
강천보는 가끔 찾아가는 여행지다. 거기는 한강문화관이 있고, 전망대와 휴게시설이 있어 한강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기엔 제법 괜찮은 장소다.
여주는 비단 강천보가 아니더라도 바람을 쐬거나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여행지다. 지금 글을 쓰면서 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피어날 정도다.
어느 해 가을, 당일치기 여행이 귀찮아 여주 남한강 옆에 있는 호텔을 잡고 이틀 밤을 보내기까지 했다. 흐르는 강물을 보며 피우는 게으름의 맛이란……. 이른 아침 잘 정비된 강가의 공원을 산책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강을 따라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는 산책로도 그만이다. 강천보는 그 길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강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자전거로 전국을 도는 분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강천보와 한강문화관은 휴게소 역할을 한다. 한강문화관에는 전망대와 커피숍, 매점 등이 있다. 3층은 옥상정원으로 꾸며졌는데, 거기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선베드가 있다. 누워서 시원한 바람맞으며 바라보는 한강의 정취란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밤이면 강천보의 화려한 조명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남한강을 가로질러 여주시 강천면과 단현동을 연결하는 강천보는 ‘4대강 사업’으로 탄생했다. 탄생 배경은 여주지역의 농업용수와 상수도 확보였다. 남한강을 포함한 한강에는 3개의 보가 만들어졌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여주에 있다. 강천보를 따라 서울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차례로 여주보와 이포보를 만나게 된다.
4대강 사업의 4대강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으로, 이 외에도 섬진강과 각 강의 지류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사업비만 22조 원에 이르고 전체적으로 16개의 보와 5개의 댐, 96개의 저수지가 만들어졌다. 강천보 건설에만 2,700억 원 가까이 투입됐다.
관련해 이전에 메모했던 자료를 들춰보니, 낙동강에 절반인 8개, 금강에 3개, 영산강에 2개의 보가 설치됐다. 4대강 중 낙동강, 영산강, 금강에는 하굿둑도 설치되어 있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 최대의 역점 사업이었다. 원래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여론이 여의치 않자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로 바꿔 생태복원과 홍수 예방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사업을 진행해 마무리됐다.
지금도 이 사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권에 따라 결과가 바뀐 두 차례 감사원 감사, 본래의 모습을 변형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환경에 의한 생태계 교란 내지는 파괴 등이 논란의 중심이다. 여기에 사업 시행 과정의 문제들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토목공사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다. 도로와 교량의 건설이 그렇고 철도나 항만, 공항의 건설이 그렇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에 생태계를 살린다는 이유를 더 하는 것에 절대 찬성할 수 없다. 생태계 운운은 개발을 위한 핑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환경을 살리는 방식의 개발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시간과 돈이 많이 들기에 이 방법을 잘 쓰려하지 않을 뿐이다. 대부분 개발사업은 목적을 위해 조건을 맞추기에 다른 중요한 것들은 모두 들러리가 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 개발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환경영향평가는 그리 신뢰가 가질 않는다.
자연은 지금 당장은 개발보다 가치가 빈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훨씬 더 큰 가치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단적인 예가 갯벌이 아닐까 싶다. 또 생물자원의 가치가 커지면서, 자국의 고유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을 인정한 ‘생물다양성협약’ 등도 같은 의미다.
삶에 필요한 개발은 당연하다. 문제는 불필요한 개발이나 특정된 소수의 이익을 위한 개발이 공익의 명분으로 오히려 공익을 해치는 경우다. 개발사업이 아니더라도 소수의 이익을 위해 공익을 팔고, 그로 인해 다수가 피해를 보는 경우는 허다하다. 이뿐 아니라 잘못된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다수의 파국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2008년 무렵, 세계적으로 식량 파동이 발생했다. 당시 리먼사태로 금융위기까지 겹쳐 어수선했던 시절이었다. 이 당시 국제 곡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우리나라는 그 여파가 미풍 정도로 그쳤다. 반면 필리핀은 식량난으로 폭동까지 일어나며 심각한 상황을 맞이했다. 두 나라의 차이는 주식(主食)의 자급도가 갈랐다. 동남아국가인 필리핀은 1년에 3모작 이상이 가능했지만, 경제성을 이유로 쌀농사를 포기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체 곡물자급률이 20%대에 머물렀지만 쌀 만큼은 100%를 넘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한 자치단체장의 말이 있다. 그는 논 한 마지기에 농사지어 얻는 소득보다 그 땅에 공장을 지어 세를 받으면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었다. 그럼 쌀은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수입하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말이 쑥 들어간 게 바로 식량 파동 때문이었다. 필리핀처럼 돈 주고도 식량을 구하지 못해 폭동이 일어난 나라들이 생겼고, 그 덕분에 식량안보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 당시는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의 주류로 떠오르던 시절이라 모든 분야(특히 경제)에서 효율화가 최우선 덕목이었다. 한마디로 조금 쓰고 최대한 많이 벌어 보겠다는 이야기다. 공공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정부들의 정책 지향점은 작은 정부였다. 이에 편승해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밀어붙였다. 경쟁이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선전하며, 많은 나라에서 공공부문 민영화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떠했던가.
무엇이든 지루하더라도 오래 생각하고 꼼꼼하게 검토하고 불필요한 희생은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일을 추진해야만 미래에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강천보 야경 사진을 보며 생각이 너무 많이 나갔다. 언젠가 다른 기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강천보 야경을 보며 이런 생각만 떠오른다는 것이 조금 서글프다.
아무렴 어떠한가. 복잡한 속내를 묻어놓고 여행지로만 본다면 강천보는 훌륭하다. 게다가 강천보의 야경을 보는 재미는 더 쏠쏠하다. 다양한 색의 조명이 계속 변하면서 눈을 호강시켜 주기 때문이다. 얼마간 여유로워지면 다시 여주로, 강천보로 나들이를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