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거짓 사이 어디쯤

낡은 굴뚝과 사우론의 눈

by 이우형


여주 강천보를 가는 길에 높이 솟은 굴뚝을 보고 호기심이 들어 샛길로 빠졌다. 어영부영 헤매다가 만난 것이 폐벽돌 공장이었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과 짙푸른 하늘이 썩 마음에 드는 날이기도 했다. 마침 해가 굴뚝 근처에 있어 장난기가 동했다. 오래전 역할을 다한 듯한 굴뚝에 연기대신 태양으로 불을 피우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사진 한 장을 찍어 놓고 보니 사진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임과 화각을 변형시키는 것만으로 굴뚝 위에 태양을 올리기도 하고 하늘로 돌려보내기도 하니.

그러면서 오랜 궁금증 하나가 떠올랐다. 사진은 사실일까?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한 부분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순간을 박제한 것이라 그 이미지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사진은 사실이다. 사진이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되는 이유다.

그런데 사진을 하면서 어느 순간 이 '사실'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 사진을 시작한 게 1988년 무렵이었다. 군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하던 동생이 사진기를 들고 와 생일선물이라면서 안긴 게 사진을 시작한 계기였다. 동생은 PX에서 면세품으로 샀다며 비싸지 않으니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당시 동생이 선물한 사진기는 미놀타 X-700이었다.

사진기가 생기자 사진에 무섭게 빠져들었다. 그때는 사진 관련 서적이 상당히 귀했었자. 그래서 서점을 뒤져 사진 관련 서적들이 눈에 보이면 모조리 샀다. 나남출판사에서 몇몇 이론서들이 나왔고, 지금도 내 책꽂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88년 1월 중순에 제대하고 2학년에 복학했다. 사진기가 생긴 2학기부터는 전공보다 신문방송학과 사진 관련 수업에 더 관심이 많았다. 매 학기 한 과목씩 사진 관련 강의를 신청해 들을 정도였다. 필름 현상과 인화를 배우고 싶어 학원도 등록하고 다녔다.

사진을 원 없이 촬영할 수 있었던 건 잡지사에 입사하고부터였다. 식물을 다루는 잡지였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직원 모두 반은 사진을 할 수밖에 없었고, 또 대부분 조금씩 사진에 미쳐있었다. 첫 사진기가 수명을 다하고, 새로 장만한 사진기는 니콘 F4s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진기가 지금까지 만진 사진기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청계천에 있는 사진기 점포를 가서 니콘 F4s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신문지에 싸여 있는 사진기를 꺼내 보여주었다. 조금 충격적이었지만, 새 제품이었고 마음에 들어 당시(92년)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샀다.

물론 회사 사진기도 있었다. 35mm는 모터 드라이브가 달린 니콘 F3였고, 중형은 펜탁스 645와 67Ⅱ가 있었다. 출장을 갈 때면 자동차 트렁크는 사진기 가방과 조명 가방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정신없이 몇 년을 보내고 나서 사진은 온전히 혼자만의 취미로 남았다.

수원으로 내려와 조용히 필름 사진기를 내려놓고 책 만들기에 여념이 없던 시절, 운명처럼 한 사진작가를 만났다. 그는 요즘 야생화 사진에 푹 빠져있다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엉겁결에 예전에 야생화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의기투합해 야생화 사진 촬영에 나섰다. 그게 2005년 무렵이었다. 디지털 사진기를 구매했는데, 캐논이었다. 기종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거나 그 녀석은 초점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나마 수동으로 초점 맞추는데 익숙했던 탓에 버틸 수 있었다.

여러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던 캐논을 던지고 후지필름의 파인픽스 S3PRO를 장만했다. 이 녀석으로 촬영한 사진은 화질과 색 모두 마음에 들었다. 니콘의 바디를 채용했고 기계적으로 버퍼가 심하게 느렸다.

파인픽스 S3PRO가 정신을 못 차릴 때쯤 기종을 니콘으로 바꿨다. 어차피 렌즈가 모두 니콘이어서 바디만 새로 장만하면 됐다. 그쯤에 니콘도 제법 괜찮은 제품들이 나왔다. 지금은 SLR은 니콘을, 미러리스는 후지를 사용하고 있다.

어쩌다가 개인적인 사진 이력을 늘어놓았지만, 사실은 사진의 모호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진에 정신이 팔려 살면서(요즘은 조금 멀어졌지만) 가끔 들었던 말이 "사진은 사실이 아니야"였다. 그러면 "원판 불변의 법칙 몰라?"라며 장난스럽게 대답하고는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진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지만, 그 상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보도 사진 밑에는 언제나 상황설명(캡션)이 붙어 있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상황설명을 조금만 비틀면 어떨까? 사진을 사실이라고 믿는 독자들에게, 혹은 그런 상황을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찰떡같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사진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사진 바깥의 상황과 앞뒤의 시간은 담겨 있지 않다. 아마도 이럴 것이라고 상상은 할 수 있지만, 말 그대로 그것은 상상이다. 상상은 사실이 아니다.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건 이 상상의 영역 존재 여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그려내지만, 작가는 거기에 상상력을 더한다. 빛과 구도, 프레임을 통해서다. 그래서 사진은 사실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또 하나, 사진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달라진 풍속도가 있다.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수 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포토샵이라는 디지털 암실 프로그램은 현상과 보정을 넘어 전혀 다른 사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필름으로 사진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과도한 수정이나 합성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합성한 사진을 자신이 현장에서 촬영한 찰나인 양 자랑하는 사진가들도 있고, 또 합성 사실을 감추고 공모전에 출품해 수상한 사례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요즘은 이런 작품들을 사진과는 별도로 디지털아트라는 분야로 달리 분류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유독 사진이라고 우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이 뭐 별거라고……. 그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살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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