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항 까막바위
날씨는 차고 파도는 더 차가워 보인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두터운 외투에 목도리를 두르고 서 있어도 바닷가는 추웠다. 그런데도 굳이 겨울 바다를 찾았던 이유를 모르겠다.
컴퓨터를 뒤적이다 사진 한 장을 찾았다. 정확히는 찾았다기보다 눈에 띄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다. 사진은 겨울 바다를 배경으로 한 커다란 바위다. ‘묵호항 까막바위’. 사진에 붙어 있는 이름이다. 촬영한 기억은 어렴풋이 떠오른다. 해변 도로 옆에 거의 틈을 주지 않고 서 있던 바위다. 그 공간을 떼어놓으려 광각렌즈로 촬영했다. 역광이었고 바위는 어두웠다. 나중에 보정을 통해 바위 부분의 디테일을 살렸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처음 까막바위를 만났을 때, ‘바위가 멋지긴 한데 왜 이렇게 도로 옆에 바짝 붙어 있지?’라고 생각했다. 까막바위를 일부러 찾아갔거나 겨울 바다의 정취를 즐기며 걷다가 만난 것은 아니다. 숙소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기사님께 ‘싸고 괜찮은 횟집’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까막바위 근처의 횟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날 대게를 싸고 푸짐하게 먹은 뒤, 집으로 택배까지 배달시켰었다. 그만큼 만족도가 높았다.
이 정도면 2월에 바닷가를 찾은 이유로 충분하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목적은 ‘복수초’였다. 삼척의 한 공원에 2월이면 복수초가 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복수초를 만나지는 못했다. 눈에 덮여 꽃이 핀 노란 복수초를 기대하고 왔지만, 그런 풍경을 만나지는 못했다. 대신 만난 것이 까막바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까막바위에는 전설도 담겨 있었다. 하긴 까막바위란 이름부터 범상치 않고 풍채 또한 적잖이 우람하니, 전설이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터였다. 전설은 조선시대 마을을 침략한 왜구와 이 마을 호장(戶長, 요즘으로 치면 동장쯤 되려나?)에 얽힌 이야기다. 마을을 지키려던 호장이 대왕문어가 되어 왜구를 물리쳤다는 전설이 까막바위에 전해온다. 그 대왕문어가 까막바위 아래 굴에서 살고 있단다.
까막바위라는 이름은 전설과 상관없는 듯하다. 까마귀가 바위 위에 알을 낳고 살아서, 또는 바위가 검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여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길을 나서면 숱하게 많은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곳곳에서 기묘한 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그 인연은 사람일 수도 있고, 나무나 풀, 또는 바위일 수도 있다. 물론 동물이나 곤충일 수도 있고, 길거리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조형물일 수도 있다.
인연의 시작은 만남이지만,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은 관심이다.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메모, 한 자락의 기억이 인연으로 만들어진다. 까막바위 사진은 몇 년을 컴퓨터에서 잠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 만남처럼 우연히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당시의 기억을 조금씩 조금씩 되살려 놓았다. 어쩌면 지워졌을 삶의 한 조각이 이렇게 다시 돌아왔다. 사진을 하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