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무섬마을
말이 쉽지. “다 집어치우고 어딘가로 훌쩍 떠났으면 좋겠다”는 말은 푸념에 가깝다. 막상 실행에 옮기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탓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 어려운 일이 현실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 본인의 의지라기보다 타의에 의해서인 경우가 더 많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이런 고마운 일을 만나면 설렘과 걱정이 함께 밀려온다. 그래도 떠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영주로 떠난 여행도 즉흥에 가깝다. 어딘가로 가긴 가야 하는데, 딱히 결정된 목적지가 없었다. 지도를 놓고 가보지 않은 곳을 찾다 영주가 눈에 들어왔다. 말은 많이 들었는데, 가본 기억은 없었다. 영주로 가자!
영주에 아는 곳이라곤 부석사뿐이었다. 안다는 것조차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저 이름을 들어본 정도였다. 다시 한번 지도를 살펴보았다. 단양과 안동 사이 거기 영주가 있었다. 단양도 안동도 모두 가본 곳인데, 영주만 가보지 않았다. 호기심이 더 생겼다.
햇살이 가을빛으로 접어드는 시월 초, 영주로 떠났다. 영주에는 볼거리가 상당했다. 부석사, 소수서원, 선비촌, 풍기인삼과 인견, 사과 등등…….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장소는 무섬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내성천이 휘돌아 흐르고 뒤로 산이 둘러싼 형국이, 마치 육지 속 섬처럼 느껴진다. ‘무섬’이라 불리는 이유다. 무섬은 삼면으로 강이 흘러 마치 물속에 떠 있는 섬과 같다는 의미다. 정식 행정명은 수도리이다.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마을 풍광 전체가 볼거리지만, 특히 오랜 교통로였던 나무로 만든 긴 외나무다리는 마을의 상징과도 같다.
무섬마을은 어린 시절 기억의 한 장면과 겹친다. 무섬마을 앞 내성천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예천군 풍양면의 한 마을과 만난다. 삼강마을이다. 삼강은 두물머리와 비슷한 의미다. 두 개의 강이 만나 세 개의 물줄기가 되는, 말 그대로 강 세 개가 만난다는 뜻이다. 두 마을의 모습이 너무나 닮았다.
10대 후반, 삼강마을은 편하게 찾던 안식처였다. 할머니께서 전도사로 삼강교회에 시무하고 계셨던 탓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삼강에는 두 개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마을 뒤를 돌아 풍양으로 가는 고갯길(5일에 하루, 장날에만 아침저녁 버스가 단 두 번 다니는)이었고, 다른 하나는 강 건너에서 나룻배를 타고 들어오는 뱃길이었다.
그나마 뱃길은 강 건너 나루터 인근까지 버스가 다녀, 늘 이 길을 이용했다. 여름에 물이 줄어 강물이 발목에 찰랑일 때면, 뱃사공 아저씨가 업어 강을 건네주었다. 그때 이 마을은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지금 삼강마을은 대단한 관광지로 변모했다. 강 옆에 있던 주막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삼강은 주막을 주제로 한 관광마을로 변신했다. 강과 고갯길을 이어주는 다리가 생겼고, 강변에는 주막거리가 만들어졌다. 고요하던 마을 풍경은 이제 기억 속 몇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같은 시기를 놓고 보면, 무섬마을은 제 힘으로 걸어 건너는 외나무다리라도 있었다. 무섬마을에도 강 건너와 마을을 이어주는 콘크리트 다리가 있다. 겨우 차 한 대 지나기 버거운 다리이지만, 그 차이는 대단하다. 요즘 무섬마을도 주변이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래도 마을 자체가 몰라볼 정도로 변하진 않은 듯하다. 내심 다행이다 싶다.
변화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불편할 정도로 옛것을 지키는 것 역시 바람직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일확천금이 탐나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피할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돌담에 둘러싸인 나지막한 초가집의 정취는 이제 관광지에서나 볼법한 풍경이 됐다. 눈이 시린 파란 가을하늘 아래 박 넝쿨 이고 있는 초가지붕의 정겨움을, 어쩌면 이제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거다. 삶이 그렇지 뭐. 목놓아 ‘테스형’을 찾지 않아도 삶은 그런 거다. 보내고 만나고 다시 흘려보내는 것.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 위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면, 곧 물에 빠질 듯한 착각이 든다. 빠져봐야 겨우 발목 조금 넘는 정도의 물인데, 그게 왜 그리 두려운지. 옛것은 그렇게 흘려보내고, 처음 본 듯 다시 다가가는 것이 여행의 참뜻 아닐까 싶다. 어차피 예나 지금이나 내 것은 사진 몇 장에 담긴 기억 정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