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한 바퀴 돌며
이른 아침 출근하며 매일 해돋이를 본다. 해돋이 위치는 계절별로 자리를 옮겨 가고, 태양의 상태는 매일 다르다. 대부분 차 안에서 그 광경을 마주한다. 가끔 그림 같믄 멋진 해돋이를 볼 때가 있다. 아쉽게도 자동차 전용도로 거나 고속도로다. 마음으로 차를 몇 번이고 세울까 고민하다가, 도로 위라는 핑계를 대고 눈으로만 담고 지나친다. 그럴 때마다 아침에 한 번은 차 없이 찍으리라 다짐해 본다.
문득, 그 결심을 옮긴 날이 있다. 보통은 주말에 늦잠을 자거나 하지만, 그날은 뭔 바람이 불어 조금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세수도 하지 않고 달랑 카메라 한 대 챙겨 들고 슬리퍼 끌며 밖으로 나왔다. 10월 말, 제법 쌀쌀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태양은 지평선 위로 제법 높이 떠 올라 있었다. 지평선 위로 얼굴 내미는 모습은 놓쳤다.
일출 촬영을 시도한 적이 몇 번인가 있었다. 동해에서, 남해에서, 서해에서, 그리고 제주도에서 등등…….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나마 서해 왜목마을에서 촬영한 일출이 가장 나았던 것 같다. 누군가 떠오르는 해를 온전히 제대로 촬영하는 행운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집에서조차 제대로 된 해돋이는 촬영하질 못했다. 이번 건은 전생보다 게으름, 혹은 즉흥의 결과였다.
집 앞 하천제방에 올라 천천히 걸었다. 잠시 걸으니 추수가 끝난 넓은 논들이 눈에 들어왔다. 들 곳곳에는 하얀 볏짚말이(곤포 사일리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문득 ‘벌써 추수가 끝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방 옆 도로로 내려갔다. 차가 제법 많이 지나쳐 길옆에 서 있기 부담스러웠다. 조금 걸어 보는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었다. 앙상한 가지에 걸려 있는 커다란 태양의 모습이었다. 적당히 낀 안개가 어우러진 모습이 몽환적으로 느껴졌다. 지나가는 차를 피해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담았다. 태양의 옅은 붉은 기가 없었다면 영락없는 흑백사진이었다.
평소 하지 않던 오지랖으로 만난, 이 한 장의 사진이 계속 눈에 밟히는 이유는 뭘까? 여러 풍경 사진 중, 이 사진을 지날 때면 늘 시선이 한참 머문다. 뭐라고 딱히 정의하기 어려운, 어쩌면 정의하고 싶지 않은 뭔가가 있나 보다.
아침 산책은 그 한 번으로 끝이 났다. 여전히 출근길에 멋진 해돋이를 보면, ‘차를 세워? 말어?’ 고민하는 척 그냥 지나친다. 주말 아침도 여전히 게으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요즘 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아침 풍경이 생겼다. 초겨울, 물안개 피어오르는 넓은 하천 옆 홀로 서 있는 버드나무를 본 것이다. 문제는 이른 아침 눈에 보일 때만 생각이 난다는 점이다. 사진은 어지간히 부지런한 사람 아니면 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야생화를 찾아다닐 때 제법 부지런했던 것 같다. 특히 봄에는 거의 모든 주말, 공휴일을 이용해 전국의 산야를 헤맸다. 두 번의 전시회, 한 권의 사진집으로 그 부지런함은 소진되었나 보다.
무기력하게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요즘 들어 다시 엉덩이가 들썩이긴 한다. 글도 다시 쓰고 싶어 졌고, 카메라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시 잡는 일이 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를 마주하며, 게으름을 털고 다시 아침 산책할 마음이 생길지 스스로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