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화
형제는 닮는다. 반드시 맞는 공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딘가는 닮은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그게 외모일 수도 있고 성격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렇다.
학자들이 생물을 분류하는 방식이 있다. 한 마디로 ‘계문강목과속종’이라 부른다. 중고등학교 시절 생물 수업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봤을 용어다. 간단하게 말하면 ‘계’에서부터 시작해 ‘종’으로 내려올수록 닮음이 커진다. 아마도 ‘과’쯤 내려오면 ‘가문’ 정도 될 터이고, ‘속’으로 내려오면 ‘사촌’, ‘종’이면 ‘형제’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어려운 이야기를 뜸 들이며 한 이유는 개나리의 사촌인 ‘만리화’ 때문이다. 만리화라는 이름을 들어 본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하다. 사진만 보면 그냥 개나리다. 개나리 옆에 심어 놓으면 ‘조금 다른 개나리인가?’하고 지나칠 만큼 구분이 쉽지 않다. 굳이 다름을 찾자면 만리화는 개나리처럼 가지가 늘어지지 않는다. 꽃도 개나리처럼 가지를 따라 흩어지지 않고 간격을 맞춰 모여 피는 정도다. 둘 다 봄에 꽃을 피우지만, 만리화가 보름 정도 일찍 개화하는 점도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만리화라는 이름은, 줄지어 길게 자라는 모습이 만리에 꽃이 피어 있는 것과 같아 이름 지어졌다는 이야기, 향이 만리까지 퍼져나가서 지어졌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 꽃말은 ‘희망’, ‘깊은 정’이라고 한다.
야생화 사진을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다름을 찾는 일이었다. 아무리 봐도 같아 보이는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그 차이를 알기가 영 어려웠다.
바람꽃은 대부분 봄에 일찍 꽃을 피운다. 특히 변산바람꽃은 2월 중순이면 꽃 소식이 들려온다. 변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변산바람꽃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이내 여기저기서 자라는 곳이 발견되었다. 그중 한 곳이 경기도 서해안의 풍도다. 얼마 뒤 풍도에서 자라는 변산바람꽃이 풍도바람꽃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꽃의 크기, 모양, 포엽의 생김새 등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변산바람꽃처럼 많은 형제 식물들이 가끔은 사촌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사촌이 형제가 되기도 한다. 요즘은 유전자 분석기술이 발전해 예전처럼 단순하게 모양으로만 구분을 짓지 않는다. 형제인지 사촌인지의 구분이 더 명확해졌다는 이야기다.
만리화의 사촌들은 변산바람꽃보다 다름이 조금 더 확실한 편이라 할 수 있겠다. 만리화의 사촌으로는 미선나무도 있다. 충청북도 괴산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었고, 그 인근에서만 자생해 귀한 식물로 대접받았다. 이들 사촌의 특징은 가지만 잘라서 땅에 꽂아도 잘 자란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두 우리나라 특산종, 즉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라는 점도 닮았다. 번식이 쉽다고는 하지만,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자생지는 아주 협소하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성질이 까탈스럽지는 않은데, 원래 살던 곳을 찾기 어렵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는지. 혹시 집안에서는 성질 더러운데, 밖에 나가서는 호인(好人)인 경우는 아닐까? 천하에 어이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식물은 자신이 살 곳을 명확하게 정한다. 바위틈에 끼여 자라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길에 밟혀 주저앉으면서까지 기어이 그곳을 고집하는 식물도 있다. 모두가 자신만의 블루오션을 찾은 결과다. 살기에 가장 유리한 곳, 사람의 잣대로 가늠할 수 없는 식물의 선택 기준이다.
적어도 식물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식물의 입장에서는 사람의 개입마저도 자신의 생존전략 중 하나일 수 있다. 생태계는 그렇게 균형을 맞추며 순환한다. 그들이 보기에, 마치 온 세상이 자기들 것인 양 시끄럽게 다투며 살아가는 인간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