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은 조금 달라도

조선현호색

by 이우형


산을 가는 목적은 다양하다. 정상을 오르는 등산이 가장 일반적인 목적일 테고, 다음이 트레킹일 것 같다. 정복하느냐 걷느냐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봄에는 산나물을 채취하러 가는 산채꾼들로 북적일 테고, 사시사철 약초를 캐는 심마니도 있다. 목적이 뭐든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방식이다.

숲을 보는 방법 역시 산을 찾는 목적에 따라 다르다. 당연히 숲에 대한 이해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순수하게 숲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목적 대부분이 자신의 건강이나 수익과 관계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끔 TV에서 약초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가 있다. 프로그램은 어렵게 산속을 헤매며 산삼이나 도라지와 같은 각종 약초를 채취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불편할 때가 있다. 산에서 자라는 귀한 식물들이 마구잡이로 채취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자막에는 소유주의 허락하에 채취하는 것이며, 불법 채취 시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솔직히 그 부분도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 산림은 국유지부터 개인 소유지까지 소유자도 많고 경계가 불분명해, 그들 모두로부터 허락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아 보여서다. 방송에서 하는 일이라 거짓은 아닐 거라 믿어본다.

산에서 약초를 채취하는 일은 우리나라의 오래된 업(業)이고, 그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무분별하게 자생지 전체를 박살 내는 행위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오는 걱정이다.

식물들은 자신이 자라는 환경에 집착한다. 돌 틈이나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식물을 두고 생존력이 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환경이 그들이 선택한 생활 터전이다. 그들의 삶은 거기에 맞춰져 있어 그곳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비옥한 땅은 오히려 독이 된다. 뭐, 그런 거다.

식물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 변화는 잎이나 식물체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같은 집안이라고 해도 생김새가 조금씩 다른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현호색 이야기를 하려다가 엉뚱한 길로 많이 돌았다.

산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땅을 보고 다니지만, 등산이나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거의 발밑의 풀들을 자세히 보지 않을 것이다. 목적이 거기에 있지 않은 탓이다. 그렇더라도 이른 봄 산을 오를 때면 등산로 옆 발밑을 한 번씩 보기를 권하고 싶다. 아직 푸르름이 없는 땅 곳곳에 작은 꽃들이 피어 있고, 이들을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현호색은 그중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꽃이다. 파랑, 분홍, 자주, 흰색 등 다양한 색을 가진 기다란 형태의 특이한 꽃이 인상적이다. 다만, 크기가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진가를 알 수 없다.

현호색은 국내에 대략 스무 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잎의 변이가 심해 분류에 대한 논란도 있고, 그래서 몇몇은 같은 종으로 다시 합쳐지기도 했다. 조선현호색도 그런 논란에 놓여 있는 꽃이다.

그렇다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고산에 살거나 특정한 지역에만 자생해, 일부는 희귀 식물로 분류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현호색은 전국 대부분 산이나 들에서 만날 수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꽃이지만, 다양한 잎들의 변화를 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꽃이 없다면 다른 식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혼란을 주는 것 같다.

현호색이라는 이름은 한자에서 왔다. 설명에 따르면 뿌리의 덩이줄기가 검어 '현'(玄), 주산지가 중국 북방 오랑캐가 사는 땅이라 '호'(胡), 새싹이 묶인 듯 꼬여서 '색'(索)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조선현호색에 대한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은 듯하다. 그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현호색 정도랄까.

꽃말은 ‘보물주머니’와 ‘비밀’이다. 꿀이 가득 찬 꽃의 모습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들이 있다.

꽃은 사람의 눈길이 필요하지 않다. 꿀을 가득 채우고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벌과 나비다. 사람들은 그것을 연인에 비유하지만, 실상은 대를 이어가기 위한 생존의 유혹일 뿐이다. 그래도 가끔은 착각 속에 그들을 바라보자. 그들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위로와 기쁨은 우리들의 몫이 될 테니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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