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지 않는 아름다움

앵초

by 이우형


재능은 스스로 내세우지 않아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로 표현되는 이 말은 제법 믿을 만하다. 요즘 같은 자기 PR 시대에 무슨 가당치도 않은 말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세상 굴러가는 모양을 자세히 보면, 여전히 특별함은 저절로 드러나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곧잘 볼 수 있다.

식물들 역시 특별한 재능을 품고 있다. 뛰어난 약효, 쓸모 많은 몸, 아름다운 꽃, 탐스러운 열매 등 모두 한두 가지씩은 지니고 살아간다. 이 재능들은 식물들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아 대를 이어가기 위한 생존 기술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식물의 특별한 재능을 너무 좋아한다는 데 있다. 특별함이 드러나는 순간, 그 식물은 삶의 터전뿐만 아니라 가문이 몰락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특별함과 비범함은 생존의 재능으로 작용하지만, 사람들 눈에 특별함과 비범함이 발각된 식물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실제로 사람들의 욕심 탓에 사라져 버린 식물은 상당히 많다.

미모도 재능의 한 분야다. 우리나라 야생화 중에도 미모로 열일하는 꽃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수더분한 꽃을 들라면 ‘앵초’를 꼽을 수 있겠다. 앵초는 전국 각지의 그늘진 냇가나 계곡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 화사한 연분홍 꽃에 털이 보송보송한 녹색의 잎이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그래서 관상용 화초로도 인기가 많다. 숲에서 앵초를 만나면, 마치 사람이 정원을 꾸며 놓은 듯한 착각이 든다.

앵초는 외국에서 들여온 ‘프리뮬라’(Primula)와 같은 가문이다. 이들 가문은 친척도 많아 전 세계에 대략 500여 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6종 정도가 등록되어 있다.

세계 곳곳 숲 속에 예쁜 얼굴을 하고 자라고 있으니 관련된 이야기도 많다. 그리스신화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슬픔에 죽음을 맞이한 청년의 신화로, 유럽에서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이 깃든 설화로 앵초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작 우리나라에서 앵초와 관련된 기록은 비교적 근대에 등장한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경우 약초와 관련해 식물의 이름이 기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기록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앵초라는 이름마저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앵초의 한자 ‘앵’(櫻)은 앵두나무를 의미한다. 따라서 앵두나무꽃을 닮아서 붙여졌다는 설도 있고, 일본에서는 벚꽃을 의미하기도 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영어명은 ‘프림로즈’(primrose)로, 말 그대로 ‘봄의 첫 장미’를 의미한다. 속명인 ‘프리뮬라’(Primula) 역시 ‘최초의’란 뜻을 가진 라틴어 ‘프리무스’(Primus)에서 유래했다. 모두 이른 봄에 피는 꽃이란 뜻이다.

미모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앵초는 인기만큼이나 수난도 겪고 있다. 보는 족족 사람들이 열심히 캐 가다 보니, 이제는 자연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아 졌다. 그나마 앵초는 상대적으로 키우기 쉬운 편이지만, 난초과 식물처럼 생육조건이 까다로운 꽃들은 환경이 바뀌면 대부분 살리기 어렵다. 예쁘다고 캐가는 것이 그저 사람의 욕심일 뿐이란 이야기다.

숲에서 만나는, 한 미모 하는 꽃들을 만난다면 눈인사 한 번, 사진 한 장으로 족하다. 미모와 재능이 생존을 담보해야 할 만큼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미모만큼이나 앵초의 꽃말은 다양하다. 설화 등에서 기인하는 앵초의 꽃말들로는 ‘행운의 열쇠’, ‘천국의 열쇠’, ‘젊은 날의 슬픔’, ‘가련’, ‘희망’, ‘첫사랑’ 등이 있다. 그야말로 꽃말 부자다. 그 많은 꽃말 중에서도 특별히 빨간색 앵초의 꽃말인 ‘돌보지 않는 아름다움’이 앵초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지 않나 싶다.

용인 어느 한 나지막한 골짜기에는 앵초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개울 한쪽에 적당히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는 앵초 가족을 만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새로운 봄에는 이 가족들이 무탈하게 잘 지냈는지 안부나 물어보러 갈까 생각 중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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