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나물
이른 봄 양지바른 숲길은 키 작은 꽃들로 소란스럽다. 사람들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숲은 식물과 곤충들이 주고받는 대화로 시끄럽기 짝이 없다. 저마다 꽃을 피우고 키를 키워 부지런한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바야흐로 생존을 위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시끄럽다’를 소리로 한정한다면 숲은 고요하다. 바람 소리나 사물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 정도일 테니까. 범위를 넓혀 커뮤니케이션 모두를 포함하면, 숲은 그야말로 시장통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소란스럽다. 숲에 사는 숱한 생명은 모두 제작기 생존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솜나물’은 그늘이 없는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란다. 몸에 비해 비교적 큰 꽃을 피워 사람들 산책길에 시선을 끌기도 한다. 온몸에 하얀 털이 복슬복슬하게 나 있는 모습이 귀엽다.
흔히 식물들은 봄에 꽃을 피우면 여름에 열매 맺고 한살이를 끝낸다. 솜나물은 다른 식물들과 달리 가을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잎도 달라지고 꽃도 달라진다. 가을에 솜나물은 봄과는 전혀 다른 거치가 두드러진 큰 잎으로 변하고, 꽃도 자가수분하는 폐쇄화가 달린다. 봄에는 꽃대 길이가 15cm 내외지만, 가을로 가면 꽃대의 길이가 최대 60cm에 이른다. 이 사연을 알지 못하면 전혀 다른 식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야생화를 열심히 촬영하러 다니던 시절 자주 가던 장소가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공원묘지였다. 이곳에는 풀밭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꽃이 넘쳐났다. 솜나물도 그중 하나다.
공원묘지에서 자라는 키 작고 다양한 꽃들을 촬영하느라 본의 아니게 남의 조상 무덤에 절도 많이 했다. 키 작은 꽃을 찍으려니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의 열정이 다시 생길까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비교적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솜나물이지만, 꽃을 만날 때마다 반갑고 기뻤다. 비단 솜나물만이 아니었다. '봄맞이', ‘조개나물’, ‘제비꽃’, ‘큰개불알풀’, ‘할미꽃’ 등등 만나는 모두가 그랬다.
계명대 김종원 교수는 ‘무덤문화가 그냥 사라진다면, 솜나물은 희귀종이 될 것이다’라고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어쩌면 양지바른 언덕에 산소를 쓰는 우리네 문화가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른 봄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늦가을 ‘해국’까지 한 해를 마칠 동안, 꽃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늘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솜나물을 보며 그때의 기억이 몽글몽글 다시 피어난다. 아마도 올봄부터는 그 여정을 다시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솜나물은 몸에 털이 보송보송하게 난 나물이라는 뜻이다. 과거 기록에는 봄에 어린잎을 식용했다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까치취, 대정초, 부싯깃나무 등으로도 불린다. 꽃말은 ‘발랄’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꽃과 꽃말이 찰떡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