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풀
시골에 가면 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열심히 야생화 사진을 촬영하러 다니던 시절의 습관 탓이다. 사람들은 ‘논에 벼 말고 뭐 볼만한 게 있냐’고 하겠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말이다. 논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예쁜 꽃을 달고 있는 식물들이 제법 많다.
해충 박멸과 잡초 제거를 위해 열심히 농약을 뿌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논에 오로지 벼밖에 없었다. 논에 기대어 살아가던 물방개, 소금쟁이, 물자라 등등 정겨운 이름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벼메뚜기는 그 시절을 추억하는 대표적인 곤충이 됐다. 논 주변에 자라던 다양한 식물들도 잡초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야 했다.
기쁜 일은 친환경 농업이 시대의 흐름이 된 것이다. 독한 농약 대신 다른 방법으로 논을 관리하자, 자취를 감춘 논의 주민들이 하나둘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요즘 산골 다랑논 주변을 어슬렁거리면 볼거리가 상당히 많아졌다.
‘자귀풀’도 논 주변에 사는 주민이다. 밝은 노란색에 주황색 볼 화장을 한 꽃이 인상적인 예쁜 식물이다. 잎의 생김새는 화초로 키우는 ‘미모사’와 닮았다. 미모사는 손으로 건드리면 잎을 접는 특성을 가졌다. 이런 특징 때문에 ‘신경초’로 불리기도 한다.
미모사만큼 민첩하게 반응하지 않지만 자귀풀 역시 잎을 접는다. 건드리면 접는 것이 아니라 밤이 되면 잎을 마주 접어 잠을 산다. 이를 수면운동이라고 한다. 자귀풀의 또 다른 특성으로는 해를 따라 잎이 움직이는 일주운동이 있다. 낮에 부지런히 해를 따라다니다가 밤이 되면 잠을 자는 특별한 식물이다.
‘자귀’라는 이름은 ‘자귀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나무와 풀이라는 차이를 빼면, 둘 다 콩과식물이고 잎의 모양도 비슷하다. 자귀나무도 수면운동을 한다.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다 보니, 비슷한 이름을 얻었다. 문제는 자귀라는 이름의 유래다. 자료들을 찾아보면 여러 설이 설왕설래한다. 각 설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자귀나무의 한자명은 ‘합환목’(合歡木), ‘합혼목’(合昏木) 등등으로, 모두 수면운동과 관련되어 있다, 이우철 교수의 《한국식물명의 유래》에는 “좌귀목(左歸木)(合歡) → 자괴나모/작의남우 → 자귀나무로 변화(어원사전)되었다”라고 표기되어 있다. 또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인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에는 “잠을 자는 나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설명한 뒤, “수면운동을 하는 잎의 모양이 남녀가 서로 안고 잠자는 모습 같다고 하여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의견으로는 “잠자는 모양이 귀신같아서”, “짝에서 비롯하는 짝나무>짜기나무>자귀나무로의 말의 변천”이라는 설까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는 ‘부부가 서로 안고 잠을 자는 모습’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인간사 모든 갈등과 불화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사랑’이라 믿기 때문이다. 자귀풀의 꽃말 ‘부끄러움’ 역시 이름의 유래와 닿아 있다.
이름의 근원이 되는 자귀나무에 대한 설은 이렇게 난무하지만, 그를 닮아 이름 붙여진 자귀풀에 대해 《한국식물명의 유래》는 “(유래) 미상”으로 적고 있다.
자귀풀과 비슷한 식물로는 ‘차풀’이 있다. 잎과 식물체의 생김이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꽃의 모양이 딴판이다. 열매인 꼬투리의 모양도 넓적한 차풀과 달리, 자귀풀은 둥글고 통통한 모양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까시나무’(흔히 ‘아카시아나무’리고 부르지만, 정명은 ‘아까시나무’다) 잎을 따면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놀이를 해 본 경험들이 있을 터다. 어느 쪽이 나올지 몰라 마음 졸이며 하던 놀이지만,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낭만을 깨트려 미안하지만, 아까시나무잎은 항상 홀수다. 그러니 처음 말한 것으로 항상 끝이 난다. ‘사랑한다’였으면 끝도 ‘사랑한다’다. 그런데 ‘자귀풀’의 잎은 20~30쌍의 잎으로 이루어진 복엽(잎자루 하나에 여러 작은 잎이 달리는 형태)이다. 항상 짝수라는 이야기다. 혹시라도 자귀풀 잎으로 같은 놀이를 한다면 처음을 ‘사랑하지 않는다’로 시작해야 한다. 괜스레 즐기자고 한 놀이가 궁합으로 이어지는 사태로 번지지 않으려면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논가를 거닐다 만난 자귀풀 하나를 놓고 말이 길어졌다. 말이 길어졌다는 것은 사연이 많다는 의미고, 그 사연을 안다는 것은 더 많은 눈길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름을 알고 사연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친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귀풀의 재발견이다.
■참고서적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나무 백 가지》, 이유미 著.
·《한국식물생태보감 1》, 김종원 著.
·《한국식물명의 유래》, 이우철 著.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민제 外 編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