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고씨동굴
한 때 어딜 가나 사진기를 들고 다녔던 적이 있다. 특정 지을 수 없지만, 뭔가 특별한 피사체를 만났을 때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개인적으로 배낭보다 어깨가방을 선호한다. 배낭은 벗거나 돌려서 장비를 꺼내야 하지만, 어깨가방은 매고 있는 상태에서 바로 장비를 꺼낼 수 있어서다. 물론 장비를 많이 넣고 다닐 때는 배낭이 편하다.
요즘은 사진기를 거의 들고 다니지 않는다. 예전처럼 열심히 촬영하러 다니지도 않거니와, 무거운 가방이 거추장스러워서다. 더군다나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너무 좋아져, 특별한 경우 아니면 사진기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탓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진기를 가져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재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진기를 가져갈 때는 특별히 촬영할 피사체가 있는 경우다. 흔히 하는 말로 ‘출사’를 결심할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을 구분 짓는 확실한 기준은 없다. 그날 기분 또는 느낌에 따라 다르다.
영월의 고씨동굴에 갔을 때는 다행히 미러리스 사진기를 어깨에 걸고 들어갔다. 동굴 여행은 오래전 제주의 만장굴과 광명의 광명동굴 정도가 전부였다. 고씨동굴은 강 건너에서 다리를 통해 입구까지 연결됐다. 이 동굴에는 조선시대 선비였던 고종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고종원이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다, 가족과 함께 피신한 동굴이 바로 이곳이다. 이름의 유래다.
입구에서 안전모를 쓰고 동굴에 들어가자 종유석과 석순, 그리고 이 둘이 만나 만들어진 석주 등이 눈에 들어왔다. 안내에 따르면 동굴의 역사가 4억 년에 이른다고 한다. 관람 가능한 전체 길이는 약 600m 정도다. 가다 보면 동굴이 좁아져 지나가기 벅찬 구간도 있다.
중간중간 볼거리에 사진기 들이대고 사진을 찍었다. 석회암과 물이 만들어낸 멋진 작품들을 열심히 촬영하던 중, 어느 한 지점에 시선이 꽂혔다. 바위를 뚫고 나오려는 괴물의 얼굴이 보였다. 사진기로 촬영하고 모니터로 확인하니,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가고일’(Gargoyle)인가?‘
노출 보정을 하자 그 모습이 더욱 뚜렷했다. 유럽으로 출장 갔을 때 중세 건축물에서 본 그 괴물, 가고일의 형상과 거의 닮아 있었다. 가고일은 중세 유럽의 성당 등 건축물에 빗물을 내보내는 배수관 역할을 했던 조각상이다. 성당 건물에 괴물상을 조각해 놓은 모습이 선뜻 이해되지 않지만, 우리나라 궁궐 기와지붕의 잡상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그러려니 싶기도 하다. 그 또한 깊은 뜻이 있겠지.
들고 들어간 사진기가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이 사진은 촬영한 많은 사진 중 조금 더 애착하는 사진이 됐다.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사진은 운과 우연이 9할을 차지한다. 작가가 개입할 수 없는 자연 상태에서 이 둘의 합작은 절대적이다.
영월 땅 김삿갓면에 있는 고씨동굴에서 유럽의 괴물을 만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가끔 귀찮음을 딛고 분발하다 보면 엉뚱한 행운이 찾아올 때가 있다. 조금 더 자주 분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