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잡상·雪景雜想

캐나다 The Living water wayside chapel

by 이우형


살면서 허리만큼 눈이 쌓이거나, 며칠 동안 계속 눈이 내리는 경험을 두세 번 정도 겪었다.

첫 경험은 군대에서다. 중부전선 한가운데 자리 잡은 대성산은 10월 말부터 눈이 내려, 이듬해 5월 초에 가서야 멎었다. 정상 부근 손바닥만 한 연병장이었지만, 쓸고 또 쓸어도 눈 쌓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나중에는 차가 다닐 정도의 길만 내고 나머지는 그냥 방치했다. 길을 내며 치운 눈과 내린 눈이 더해져 눈의 높이가 허리춤 넘게 쌓였다. 봄이 올 무렵 그 눈을 다 치우느라 거의 초주검이 됐다. 세 번의 겨울을 겪고 나니 제대 후에도 한동안 눈이라면 진저리를 쳤다.

나머지 두어 번의 기억은 외국에서다. 한 번은 일본에서고, 다른 한 번은 캐나다에서다. 90년대 초중반 일본 출장을 자주 갔었다. 그중 겨울에 니가타로 들어가 도쿄를 거쳐 고베까지 이어진 긴 출장이 한 번 있었다. 당시 인상 깊었던 기억은 도로 옆으로 한길 가까이 쌓인 눈이었다. 마치 두부를 자른 듯 눈이 길을 따라 벽처럼 쌓여 있었다.

캐나다에서의 기억은 그나마 가장 최근이다. 5~6년 전 회사의 포상으로 짧은 캐나다 연수를 떠났다. 2월 말경이었다. 눈 때문에 가는 길부터 난리가 났었다. 오타와까지는 무사히 갔지만, 그다음 퀘벡으로 가는 비행기가 눈으로 연착됐다. 3~4시간 기다린 끝에 퀘벡에 도착하니 새벽이었다. 외딴 공항이라 호텔로의 이동이 걱정이었는데, 다행스럽게 택시가 있었다. 앞자리에 앉아 시내로 가는 길을 보니 예전 일본의 눈길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데도 택시의 속도계는 시속 100km를 넘나들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며칠 전 새벽에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올해 들어 눈다운 눈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이른 아침 찬바람을 맞으며 밖으로 나가 한참을 서 있었다. 진저리 치던 눈의 기억이 살짝 그리움으로 바뀐 걸까 싶기도 했다. 역시 계절은 계절다워야 아름다운가 보다.

캐나다의 기억은 온통 눈으로 시작해 눈으로 끝맺은 느낌이다. 몬트리올에서 나이아가라를 가는 길도 눈으로 가득했다. 폭포를 지나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도 눈은 계속 내렸다 멎었다를 반복했다. 아이스와인을 맛보러 가는 길에 잠시 들른 곳이 ‘리빙 워터 웨이사이드 채플’(The Living water wayside chapel)이었다. 사전 정보 없이 만난 조그마한 교회는 미니어처를 연상시켰다. 포도밭을 배경으로 길가에 떡하니 자리 잡은 모습이 관광용으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발길에 눈이 다져지기 전 몇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의자 4개가 놓여있었다. 앞에는 성경책이, 입구에는 방명록과 안내 팸플릿도 있었다. 여전히 예배를 보는 등 실제로 사용되는 교회라고 했다. 예약하면 ‘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다고 한다. 1964년에 만들어진 이 교회는 멀리 있는 교회에 가기 힘든 주변 농장의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요즘은 여행객들이 더 많이 찾는 교회가 됐다.

도시의 눈은 천덕꾸러기다. 내리는 순간부터 도시는 긴장하고, 길은 난장판이 된다. 그 탓일까. 어릴 적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던 동심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시절 눈 내린 길을 따라 걷던 새벽송의 기억은, 말 그대로 옛 추억이 되고 말았다. 교회의 새벽 종소리도 사라졌다.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시대, 아니 세대들만 남았다. 시대가 변한 걸까? 사람이 변한 걸까? 화이트 크리스마스 새벽송에 대한 기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닐 텐데 무엇이 달라진 걸까?

괜스레 내리는 눈을 보며 떠올린 작은 교회 사진 한 장 때문에 생각이 엉뚱한 데로 흘렀다. 눈에 진저리 치던 기억은 이제 그리움이 됐다. 성탄 새벽송도, 교회의 새벽 종소리도 이제는 다시 들을 수 없는 추억 속 전경이다. 눈 속에서 만난 캐나다 시골의 작은 교회는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까? 공교롭게도 이 교회와 나는 나이가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가고일·Gargo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