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일본 여행-1

오이타현 벳푸·別府市

by 이우형
벳푸 타워. 1957년 완공된 90m 높이의 타워로 벳푸의 랜드마크다.


처음에는 부부동반 온천여행이라고 했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과 함께 가는 온천여행이라 조금 얼떨떨했다. 온천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글쎄…….”하고 일단 대답을 미뤘다. 여행계획은 얼마 뒤 정년퇴직 기념 여행으로 바뀌었다. 가는 사람은 아내와 나, 그리고 아내의 동료 서 박사, 단 3명이었다. 여행지는 일본의 온천 여행지인 벳푸였다. 내 의사와는 크게 상관없이 계획이 진행됐다. 서 박사는 벳푸와 관련된 연구를 해 그 지역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더군다나 오래전 ‘여행 가이드’ 경력도 있다고 했다.

여행 며칠 전 톡으로 일정과 준비물 등이 담긴 계획서가 날아왔다. 마치 여행사에서 보내준 일정 같았다. 속으로 ‘뭔가 거창한 일이 벌어지고 있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비행기 타는 것이 꺼려졌다. 사고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불편했고, 좁은 닭장 같은 이코노미석에서 십여 시간씩 앉아 있는 게 끔찍했기 때문이다.

해외는 지난 30년 동안 꽤 많이 나가봤다. 대부분 회사 일과 관련해서다. 다른 말로 하면 ‘출장’이다. 더군다나 오랜 잡지 편집자 생활로 출장은 곧 해외 취재였다. 취재로 떠나는 여행은 그리 빡빡하지 않았다. 하루에 한두 군데 방문이나 인터뷰 일정을 잡고 나면, 나머지는 현지를 돌아다니는 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통역 가이드와 운전기사까지 함께 다니니 그런 호사가 없었다.

문제는 비행이었다. 중동이나 유럽은 대부분 11~13시간 정도 비행기를 탔다. 북미도 마찬가지였다. 동남아가 그나마 4~5시간 거리로 조금 나았다. 젊었을 때는 베트남 정도까지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요즘은 두 시간도 길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몇몇 나라에서 겪었던 입국 과정의 불친절함은 해외여행을 꺼리는 또 다른 이유가 됐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새벽같이 일어나 여행가방을 차에 싣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더듬어 보니 일본은 2015년 여름 오키나와 이후 10년 만의 재방문이었다. 물론 벳푸는 초행길이었다. 기간은 2박 3일. 공항에서 서 박사와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는 감사하게 형님이라 불러도 되냐고 물었다. 이내 친해져 공항 라운지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한 시간 남짓 비행 끝에 오이타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착륙하며 얼마나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는지, 엔진의 덮개 일부분이 열렸다. 창문 너머로 사진이나 한 장 찍으려 핸드폰을 갖다 대니 어느 틈에 덮여 있었다. ‘뭐지?’ 싶었다. 솔직히 덮개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줄 알았다.

아담한 오이타 공항은 입국장에 한국어를 하는 직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줄은 조금 천천히 줄었지만, 어느 나라의 10분에 20cm보다 훨씬 쾌적했다. 일본어에 능통하고 현지에서 유학한 두 사람 덕분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그저 뒤만 따라다니면 모든 게 해결되는 이런 신선놀음이라면 어느 여행이 즐겁지 않을까.

직행버스를 타고 벳푸 시내로 떠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우리네와 닮았다. 집의 모습과 숲의 색이 미묘하게 차이 나 보였다. 벳푸까지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길,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벳푸 타워의 ‘아담뽀짝’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푸른 하늘 아래 회색으로 빛나는 타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횡단보도 중간에 멈춰서 사진을 찍으니, “빨리 건너오지 않고 뭐 하냐”는 타박이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차 없는 도로 중간에 서 있는 형국이었다. 어색해 보이긴 했지만, 신호등의 초록 불빛이 빨강으로 바뀌려면 시간이 더 있었다.

숙소는 ‘노가미혼칸’(野上本館), 서 박사가 박사 논문을 쓸 때 이곳 대표와 인연이 컸다고 한다. 그 인연은 지금도 막역하게 이어지고 있단다. 숙소에 짐을 두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에 벳푸 타워가 있었다. 가는 길에 다시 몇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벳푸타워 중간에 ‘일본야경유산’(日本夜景遺産)이란 글귀가 커다랗게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야경이 제법 괜찮은가 보다. 자료를 찾아보니 벳푸 타워는 1957년에 완공되었으며 높이는 90m라고 한다. 바닷가에 있어 전망은 시원했다. 크지 않은 벳푸 시내도 한눈에 들어왔다. 평일이라 그런지 타워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사방을 돌며 시내 전경을 핸드폰과 카메라에 담았다. 날씨가 그저 예술이었다. 바다 건너 오이타 시내의 모습이 해안선을 따라 길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바다도 예술이었다.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 편에 이어서 계속]


벳푸 타워에서 바라본 바다와 벳푸 시내. 멀리 오이타시(大分市)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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