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러 와요.

얼레지

by 이우형


‘얼레지’라는 식물이 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4월에 싹 틔워 꽃을 피운다.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은 길어야 2주 정도다. 더군다나 5월경이면 열매를 맺고 지상부가 사라져 버린다. 얼레지를 볼 수 있는 기간이 불과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 길지 않은 기간 얼레지는 숲 속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보통은 군락을 이루며 산다. 한참 꽃이 필 때면 숲 속 바닥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이며 화려함을 자랑한다. 엘레지는 땅속 깊숙이 자리 잡은 비늘줄기에서 두 장의 얼룩무늬 잎을 낸다. 그 사이로 꽃대를 올려 크고 화려한 분홍색 꽃을 피운다.

꽃이 화려하지만 키우기는 쉽지 않다. 다른 야생화와 달리 깊이 박혀 있는 비늘줄기에서 싹을 내는 탓에, 윗부분을 캐 간다고 해서 살릴 수가 없다. 두 달 정도 눈에 보이다가 사라지는 식물체는 허상에 가깝다. 진짜는 땅속에 있다. 씨를 받아 파종하는 방법도 있지만, 생육조건이 까다로워 터를 잘 골라야 한다. 싹 틔우기에 성공하더라도 꽃을 보려면 5~6년을 기다려야 하는, 예쁘지만 까탈스러운 식물이다. 어지간한 정성과 지식이 없으면 도전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집에서 편하게 꽃 한 번 보려다 성질 먼저 버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예쁜 야생화가 있나 싶어 화초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지만, 꽃시장에서 만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레지라는 우아해 보이는 이름의 유래는 잎의 무늬에 있다. 옛말 ‘얼레’가 현재의 ‘얼룩’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피부병의 어우러기에서 변한 말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 등이다. ‘가재무릇’이라는 이명도 잎의 무늬에서 유래했다.

얼레지 하면 떠오르는 ‘엘레지’라는 단어가 있다. 실제로 얼레지의 다른 이름을 엘레지로 쓴 자료도 있단다. 흔히 엘레지라고 하면 슬픔을 노래한 가곡이나 시 등을 떠올리지만, 순우리말에도 엘레지가 있다. 한자로는 ‘구신(狗腎)이라 쓴다. 풀이하면 ‘개의 음경’이다. 꽃봉오리 상태일 때의 모양이 닮아서 그렇게 부른 게 아닌가 하는 해석이 있다.

식물의 꽃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얼레지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꽃이 아름다운 건 지금의 삶을 후대로 이어가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사람에게 예쁘게 보일 생각은 먼지 한 톨만큼도 없다. 그저 열심히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그 삶에 사람들이 끼어들어 이러쿵저러쿵 의미를 부여하고, 멋대로 말을 만들어 퍼트린 것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얼레지에게 ‘바람난 여인’이라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꽃말을 붙였다. 뒤로 젖혀진 꽃잎의 모양이 치마를 들어 올린 듯 보여 붙여졌다는 설이다. 개인적으로 분홍빛 머리카락 뒤로 젖히고 바람을 가르는 명랑한 개구쟁이 꼬맹이가 더 어울려 보인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듯 누구는 얼레지를 보고 ‘순수한 사랑’, ‘숨은 아름다움’과 같은 꽃말을 달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꽃말은 도대체 누가 붙이는 걸까?

얼레지는 두어 달 짧은 삶 속에 화려한 이야기를 남기고 자취를 감춘다. 그 짧은 삶 속에 숨겨진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적어도 그 두어 달 동안 그들은 ‘봄꽃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화려한 꽃으로 숲 속을 압도한다. 우리는 그들을 보고 찬사를 보내고, 짓궂게 놀리기도 한다. 얼레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렇게 인연은 이어지고, 서로의 삶이 엉킨 세상이 만들어진다. 서로가 서로의 삶에 조연이 되는 그런 세상이다.

그 인연을 새롭게 하려, 이른 봄날 사진기 들고 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하다. 마치 오랜 연인을 만나러 약속 장소로 향하던 청춘처럼.






■참고서적 및 자료

·《꽃들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이재능 著.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민제 外 編著.

·https://www.nature.go.kr/(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국립수목원.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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