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경이
그들은 불행하지 않다. 햇볕 내리쬐는 척박한 땅, 차와 사람들의 발길이 지나치는 흙길에 살며 끊임없이 짓밟히는 삶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행복하다.
그들은 ‘질경이’다. 질경이의 삶은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렵다. 짓밟힘을 피할 수 없는 길 한가운데 줄지어 자라는 모습이라니. 그중에는 경운기나 자동차 바퀴에 짓눌려 너덜너덜해진 잎을 달고 있는 개체들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보기에 질경이의 삶은 무척 고단해 보인다. 그래서 억척스럽고 질긴 인생을 질경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대다수가 질경이란 이름도 여기서 나온 거라 믿고 있다.
믿음을 깨트려 미안하지만, 질경이란 이름은 ‘질기다’에서 온 게 아니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질경이는 ‘길경이’라는 옛 이름에서 발음이 변한 것이다. 길경이는 길에서 자란다는 뜻이다. 한자 이름 ‘차전초’(車前草)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식물이 살아갈 터전을 정하는 방식은 경쟁에서 이기거나 피하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식은 키를 키우거나 다른 식물을 감고 위로 높이 올라가는 것이다. 경쟁을 피하는 방식은 바위틈이나 길가 등 다른 식물이 자라기 힘든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에 적응해, 경쟁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질경이는 경쟁을 피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질경이의 삶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고단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에서 최선을 다해 꽃 피우고 열매 맺고 번식하며 번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경이는 번식을 자동차나 수레의 바퀴, 사람이나 동물의 발에 의지한다. 비가 내리거나 물에 젖으면 질경이 씨앗은 끈적하게 변한다. 그 상태로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목에 붙어 이동하다 떨어져 자리 잡고 싹을 틔운다. 길을 따라 자라는 이유다. 어쩌면 질경이는 밟힐수록 행복하다 말할지도 모르겠다.
질경이의 이미지는 이처럼 억세고 거칠지만, 오랫동안 나물과 약초로 널리 사용된 유용한 식물이기도 하다. 봄에 돋아나는 어린순은 나물로, 씨는 말려서 약으로 사용했다. 차전초라는 이름과 관련된 전설도 질경이의 약효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중국 한나라 때 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갔다. 이 군대가 사막을 지나며 물이 부족해 많은 병사가 죽었다. 특히 말과 병사들이 피오줌을 누며 죽어가는 병이 심각했다. 그 와중에 말 몇 마리만 멀쩡해 살펴보니 질경이를 먹고 있었다. 이에 질경이를 달여 병사와 말에게 먹이니 병이 나았다.
차전초는 한자의 의미 그대로 수레(車) 앞(前)에서 자라는 풀(草)이란 뜻이다. 한방에서 질경이는 방광염, 요도염, 변비, 기침, 간염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만큼 질경이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척박한 땅은 낙원이다. 이런 질경이에게도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 있다. 바로 도심이다. 질경이는 척박한 땅에서 살지만, 공기가 나쁜 곳에선 버티지 못한다. 또 밟혀야 잘 산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밟히는 환경에서도 살아가지 못한다. 도심의 길가에서 만나기 힘든 까닭이다. 기름지고 경쟁이 심한 숲에서도 당연히 살지 못한다. 다른 식물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는 곳을 엄청나게 까다롭게 고른다는 의미다.
행복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가치를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선입견일지도 모르겠다. 선입견은 다름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가 불행하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일들이 실은 행복한 일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을 조금 편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가 ‘그러려니’하는 것이다. 여기에 ‘왜?’라는 물음을 달면 조금 피곤해지겠지만, 조금 더 똑똑해지기는 할 것 같다. 그게 세상 사는 데 그리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다름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되지 않을까 싶다.
질경이의 다른 이름으로는 ‘배부장이’, ‘빼부장’, ‘길장구’, ‘빼부장이’, ‘배합조개’, ‘배장이’ 등등이 있다. 꽃말은 ‘발자취’다. 길 위의 삶과 너무 잘 어울리는 꽃말이지 싶다. 발자국마다 자취를 남기는 삶, 얼마나 멋진가.
■참고
·《한국식물생태보감1》, 김종원 著.
·《한국식물명의 유래》, 이우철 著.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민제 外 編著.
·《꽃들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이재능 著.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
·https://www.nature.go.kr/(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국립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