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
얼핏 들으면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식물이 있다. 얼마나 원한이 깊었으면, 꽃 이름이 ‘복수초’이겠는가. 이름이 주는 선입견이 참 무섭고 웃긴다. ‘복수’라는 단어가 붙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원한을 갚는 것’이다. 그래서 복수초는 살짝 억울하다.
복수초는 한자로 ‘福壽草’라고 쓴다. ‘복(福)과 장수(壽)를 가져다주는 풀(草)’이란 뜻이다. 이름의 유래는 일본에서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같은 이름을 우리나라, 중국, 일본이 함께 사용한다. 이 중 복수초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은 일본이다. 1638년 편찬된 일본의 문학 관련 서적 ‘케후키구사’(毛吹草, けふきぐさ)에 복수초가 ‘봄의 계절어’ 중 하나로 짧게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눈 속에 피어 가장 먼저 ‘복을 알리는 풀’(福告ぐ草)이라 부르다, 발음이 자연스럽지 않아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지금의 이름으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는 1937년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 중국은 1956년 간행된 《현대실용중약》(現代實用中藥)에 복수초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연대기 순으로 보면 일본이 복수초란 이름의 저작권자인 셈이다.
그렇다고 복수초가 1937년 우리나라에 갑자기 나타난 건 아니다. 복수초는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 살고 있었고, 민간에서 부르던 이름이 있었다. 민간에서 전해오는 복수초의 다른 이름은 ‘어름새출’, ‘설중화’, ‘눈새꽃’, ‘얼음꽃’ 등으로, 대부분 눈, 얼음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나라 식물 중 많은 수가 정명이든 학명이든 일본과 관련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처음 우리 식물을 조사하고 분류한 사람이 일본인이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우리 이름을 찾자는 목소리가 일부 나오고 있다. 학명은 어쩔 수 없다지만, 국명이라도 고쳐 보자는 의견들이다. 당연히 바꿀 수 있다면 바꾸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다만, 너무 억지스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전부터 불리던 이름이라면 모를까, 신조어까지 만들어 바꾸자는 건 아니지 싶어서다.
이름 속 숨은 뜻처럼 복수초는 겨울이 끝나지 않은 추위 속에 꽃을 피운다. 지역에 따라 빠른 곳은 1~2월이면 눈을 뚫고 올라온다. 실제로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복수초는 ‘스스로 열을 내어 눈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운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를 ‘식물 열발생’(plant thermogenesis)이라 부른다. 식물이 열을 내는 이유는 꽃의 발육과 매개 곤충을 유인해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다. 어디선가 복수초는 꽃잎으로 햇빛을 받아 열을 모은다는 설명도 본 듯하다. 그렇다고 모든 식물이 열을 내지는 않는다. 복수초와 비슷한 시기에 꽃을 피우는 ‘앉은부채’ 정도가 여기에 포함된다.
복수초는 국내에 3종이 있다. ‘복수초’, ‘개복수초’. ‘세복수초’ 이렇게 3종이다. 한때 ‘가지복수초’도 있고 ‘애기복수초’도 있고 해서, 분류가 까다로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이 3종으로 합쳐졌다.
복수초들은 꽃이 비슷해 구분하기 쉽지 않다. 간략하게나마 다른 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복수초는 꽃받침의 길이가 꽃잎과 비슷하고 줄기가 갈라지지 않는다. 반면, 개복수초는 꽃받침이 꽃보다 짧고 가지가 여러 개로 갈라지는 특성이 있다. 무엇보다 복수초는 고산지대에서 살고, 개복수초는 해안가나 저지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복수초 대부분은 개복수초라 보면 된다. 세복수초는 꽃이 잎보다 늦게 피고 제주지역에서 자란다. 가지복수초는 일본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국내에서는 삭제되었다.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으로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 탓일까. 정작 복수초는 보이는 족족 사람들에게 캐임 당하는 불행을 겪고 있다. 특히 경기도 일대는 남획으로 멸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까지 왔다고 한다. 복수초는 씨앗이 발아한 뒤 꽃을 보려면 무려 5~6년을 기다려야 하는 느린 식물이다. 더군다나 여름 고온 현상으로 지상부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이 예쁘지만 까탈스러운 식물은 독을 품고 있기도 하다. 나물로 먹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저련 이유로 손대지 말고, 그저 눈으로 예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 틈에 복수초의 계절이 돌아왔다. SNS 등에는 벌써 복수초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2월에 눈 속의 복수초를 촬영하겠다고 강원도 바닷가를 찾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물론 성공하지 못했다. 올봄에는 복수초 사냥을 다시 떠나볼까 한다. 높은 산 어딘가 눈 쌓인 곳에는, 지금쯤 복수초가 눈을 뚫고 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한 번쯤 사진기에 담아 보는 행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참고
·《한국식물명의 유래》, 이우철 著.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민제 外 編著.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국립수목원.
·산림청 홈페이지(https://www.forest.go.kr)
·日本藥學會 홈페이지(https://www.pharm.or.jp)
·기타 검색 도우미 : ChatGPT, 네이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