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닦고 있습니다만….

앉은부채

by 이우형


언젠가 ‘앉은부채’를 촬영하겠다며 청계산을 뒤진 적이 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물론 그냥 나선 길은 아니었다. 약간의 정보를 가지고 찾아 나선 길이었다. 얼마 뒤 우연한 기회에 다른 산을 가게 되었다. 겨울이 채 끝나지 않은 터라 꽃이 있으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도착해 주차하고 내려보니, 뒷바퀴 옆에 앉은부채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사방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많이도 솟아 있었다. ‘세상일이 그렇지 뭐’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예상대로 다른 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앉은부채와의 인연은 제법 오래됐다. 야생화 사진 촬영에 몰두하기 시작하던 2007~8년 무렵, 남양주 천마산 자락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다. 이후부터 잊을만하면 한 번씩 우연히 찾은 숲 속에서, 그야말로 우연히 만나고는 했다. 그 무렵은 사방팔방으로 꽃 찾아 엄청나게 다니던 시절이었다.

앉은부채는 만날 때마다 신기해하던 꽃이다. 마치 주머니에 쌓인 듯 들어앉아 있는 꽃의 모양도 특이했고, 꽃잎이라 부르기 어색한 포(苞)도 그랬다. 꽃이 먼저 불쑥 올라오고 나서, 말린 듯 올라와 커다랗게 펼쳐지는 잎의 모습도 생경했다.

앉은부채는 복수초와 함께 이른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이다. 꽃의 모양이 독특해 어떤 이들은 선뜻 가서기 주저하기도 한다. 꽃잎으로 오해받는 불염포(佛焰苞)의 모습이 흔히 알고 있는 꽃의 모양과 너무 달라서다. 불염포에 대한 산림청 자료를 보면, “천남성과의 육수화서를 둘러싸고 있는 포엽을 말한다.”고 되어있다. 또 다른 자료에는 “불염포는 꽃이 아니라 꽃차례를 싸는 조직이므로, 포가 아니라 ‘총포가 변형된 조직’ 정도로 해야 올바르다.”라고 수정해 설명하고 있다. 김종원 계명대 교수의 《한국식물생태보감 1》에는 “포엽(苞葉)의 엽초(葉鞘)가 변형된 것”이라 설명한다. 이래저래 식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어렵다. 육수화서도 불염포도 포엽도 엽초도 모두 그렇다.

어쨌거나 앉은부채의 꽃은 불염포 안에 동그랗게 앉아 있다. 모양이 마치 코로나 시기에 많이 봤던, 그 바이러스 모양과 비슷하다. 이 둥근 모양의 꽃은 암술기를 거쳐 양성기, 수술기로 넘어가는 5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같은 꽃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것은 자가수분을 막기 위해서다.

불염포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게 적갈색 얼룩무늬 모양이다. 무늬가 없는 노란색, 연두색 등도 있다.

여름에 꽃을 피우는 ‘애기앉은부채’도 있다. 주로 강원도 이북의 높은 산지에서 만날 수 있다. 전체적인 모양은 비슷하지만, 불염포의 색이 짙은 자주색이거나 노란색이고 크기가 작다.

앉은부채라는 이름의 유래는 흔히 ‘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와 닮아서’라고 알려져 있다. ‘앉은부처’가 음운변화로 ‘앉은부채’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반하는 의견도 있다. 이른 봄 올라오는 꽃의 모양이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과 닮았고, 꽃을 감싼 불염포가 부채를 펼친 듯한 모양이라, 이를 합쳐 앉은부채라고 했다는 주장이다. 또 앉은부채의 넓은 잎이 이름의 유래가 되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미 우리나라 식물에 부채가 붙어있는 이름이 많다는 점도 이 의견에 힘을 보탠다.

앉은부채는 천남성과의 식물로 독성이 강하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잎을 물에 오래도록 우려내고 말려서 묵나물로 먹었다고 한다. 이런 탓인지 삿부채풀, 우엉취, 산부채풀, 호랑이배추 등의 다른 이름도 전해진다.

일본에서는 꽃의 모양이 좌선하는 수행자를 닮았다고 해서 ‘좌승초’(座禅草, ザゼンソウ)로 불린다. 특히 불염포를 ‘불상 뒤의 광배(光背)’로 표현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형태보다 꽃에서 나는 냄새로 이름을 지었다. ‘취숭’(臭菘, chòu sōng)이 바로 그 이름이다. ‘냄새나는 배추’라는 뜻이다.

지난 2021년 앉은부채는 또 다른 이름을 얻었다. 이름 앞에 ‘한국’이 붙은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 유전적으로 기존의 앉은부채와 다른 특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란다.

학자들은 늘 치열하다. 이름 하나, 꽃의 모양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정확하고 세밀한 분류가 가능해진다. 그렇지만 꽃이 좋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늘 도전의 연속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한가?’라는 의문이 항상 따라다니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뭐, 어떤가?’하는 생각도 든다. ‘이 숲에 그런 아이가 살고 있다’ 정도만 알고 있어도 훌륭하지 않은가.

앉은부채의 꽃말은 ‘기다림’, ‘인내’, ‘희망’이다. 이른 봄,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앉은부채에 어울리는 꽃말들이다. 더불어 꽃 하나 알자고 도 닦듯 식물학 서적들을 뒤져야 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지 싶다. 아무튼 어렵다.





■참고

·《한국식물명의 유래》, 이우철 著.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민제 外 編著.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국립수목원.

·산림청 홈페이지(https://www.forest.go.kr)

·검색 도우미 : ChatGPT, 네이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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