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도리풀
식물을 보는 사람들은 피곤하다. 정확히는 조금 안다는 사람들 이야기다. 산과 들에서 만나는 식물들 모두 이름표 하나씩 달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이름 없는 것이 없다. 국가생물종목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의 수가 대략 4,600여 종에 이른다. 그러니까 이름도 4,600여 개가 있는 셈이다.
식물에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구분하기 위해서다. 이름이 없다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 설명해도 상대를 이해시키기 쉽지 않을 거다. 이름은 개체의 특성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기호다.
그런데 이름을 특정한 사람들이 붙이다 보니 이런저런 말들이 많아진다. ‘맞춤법이 틀렸네’, ‘이름이 거시기하네’, ‘얘는 얘 하고 다른 거 같네’, ‘여기서는 이렇게 부르네’ 등등 딴지를 거는 이유도 다양하다.
식물의 이름을 부를 때 학명이니 국명이니 이명이니 하는 것들이 있다. 어차피 일반인이 학명까지 알기는 어렵고, 흔히 나라에서 정해놓은 이름인 국명을 사용한다. ‘개나리’ ‘진달래’ 같은 친숙한 이름들이 국명이다. 이명은 같은 식물의 다른 이름으로, 지방에서 부르는 향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오늘의 주인공 ‘족도리풀’은 맞춤법 논란이 있다. ‘족도리’는 원래 ‘족두리’로 써야 표기법에 맞다. 사전에 족도리는 족두리의 제주도와 황해도 방언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요즘 족도리풀을 족두리풀로 쓰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크게 무리가 없다면 등록된 이름으로 쓰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물론 거슬린다면 건의해 바꾸면 된다. 실제로 바뀐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복주머니란’이다. 원래 이름은 ‘개불알꽃’이었다. 꽃의 모양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요즘 사람들이 국명과 달리 부르는 비슷한 이름의 식물이 있다. ‘봄까치꽃’이다. 아직 정식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원래 이름은 ‘큰개불알풀’로, 열매의 모양에서 따온 이름이다. 귀화식물인 개불알풀은 종류도 제법 된다. 이름 앞에 ‘큰’을 떼거나, ‘선’ 또는 ‘눈’이 붙은 녀석들이 그들이다. 이 중 하나만 ‘봄까치꽃’으로 부르기는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봄까치꽃 앞에 큰, 선, 눈을 붙이면 안 될 것도 없긴 하다. 처음부터 좀 근사한 이름으로 지었으면 이런 논란도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족도리풀은 이른 봄에 피는 꽃이다. 3월에 일찍 꽃을 피우고 여름이 되기 전에 결실한 후, 휴면에 들어가는 ‘춘계단명식물’(Spring Ephemeral)이다. 여름 숲에서 만날 수 없는 이유다. 어떤 사람은 꽃의 모양을 보고 징그럽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짙은 자주색 주머니 닮은 꽃이 지면에 거의 붙어 피는 이유가 있다. 파리나 딱정벌레 등이 좋아하는 냄새(부패한 냄새)를 풍겨 꽃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다. 이른 봄에 피어 짧은 생육기간 동안 결실을 맺기 위한 나름의 전략인 셈이다.
족도리풀도 형제가 제법 많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족도리풀은 10종이다. 대표적인 것이 ‘족도리풀’, ‘만주족도리풀’, ‘서울족도리’풀이다. 족도리풀 대부분이 비슷하게 생겨 구분이 쉽지 않지만, 이 셋은 특히 어렵다. 어느 자료에는 족도리풀이 서울족도리풀로 변경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만주족도리풀과 통합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아마 분류한 사람은 동의하지 않을 거다.
족도리풀은 한방에서 ‘세신’(細辛)이라 부른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족도리풀의 이름은 꽃의 모양이 신부가 머리에 쓰는 ‘족두리’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구전설화에는 ‘혼례를 올리지 못하고 죽은 처녀의 집 마당에서 풀이 돋아났는데 족두리를 닮은 꽃이 피었다’고 한다.
꽃말은 ‘겸손’, ‘숨은 아름다움’, ‘비밀스러운 사랑’ 등이다. 숲 속 낮은 곳에 꽃을 피워, 수줍게 얼굴 내밀고 있는 족도리풀의 모습이 떠오르는 표현들이다. 사랑스럽지 않은가?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던 족도리풀은 있는 그대로 그들의 터전에서 미모로 숲을 밝히고 있다.
봄 산길을 걷다가 족도리풀을 만나면 고개 숙이고 얼굴 한번 마주쳐 보자. 그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기쁨을 만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참고
·《꽃들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이재능 著.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민제 外 編著.
·《국가생물종목록》, 국립생물자원관.
·《국가표준식물목록》, 산림청 국립수목원.
·https://www.nature.go.kr/(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국립수목원.
·검색 도우미 : ChatGPT, 네이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