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만큼 아껴주세요.

올괴불나무

by 이우형


십수 년 전 봄, 산에서 내려오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웠다. 가지 끝에 자그마한 붉은 꽃이 달려 있었다. ‘올괴불나무꽃’이었다. 아마도 누군가 가지를 꺾어 편하게 사진을 찍고선 버리고 간 듯했다. 올괴불나무와의 첫 만남이었다.

언젠가 숲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바위 위에 있는 버섯을 촬영하고 있었다. ‘바위 위에 버섯?’하고 자세히 보니, 숲에 있는 걸 옮겨다 배경 좋은 곳에 놓고 촬영 중이었다. 함께 간 일행이 한마디 했다. 돌아온 답이 “예술을 하기 위해서”란다.

봄 야생화 탐사를 위해 소문난 자생지를 찾은 적이 있다. 많은 사진가가 와서 꽃을 촬영하느라 북새통이었다. 게 중에는 방석을 깔고 앉아 촬영하거나, 심지어 돗자리 깔고 엎드려 촬영하는 기이한 풍경을 목격했다. 목표로 삼은 모델만 중요한가?

최근 집에서 가까운 수목원을 방문했다. 제법 많은 사진가가 단체로 와서 왁자지껄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식물복원지로 출입을 금한다’는 표식이 붙어 있었다. 상관없다는 듯 통행로를 넘어 들어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조심하는 기색 없이 두세 명이 함께 몰려가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괜히 울컥해 주제넘게 한마디 했다.

오래전이지만, 한 유명사진작가는 자신이 촬영하려는 피사체를 가린다고 그 앞에 나무를 모두 베어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비슷한 경우는 또 있다. 자생지에서 물색 좋은 피사체를 발견해 사진을 촬영하고 나서, 돌아갈 때 꽃을 꺾어 버리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다른 사람이 촬영하지 못하게 하려는 처사다.

이 정도면 자연 입장에서 빌런이 따로 없다. 이들에게 “왜 그랬냐”라고 물으면, 아마도 “좋은 작품을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적어도 자연을 촬영하는 사람이, 사진의 피사체가 되어주는 꽃이나 나무를 함부로 다루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좋은 사진은 피사체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사진에는 파인더 너머 피사체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다. 화려하고 예쁜 사진이 좋은 사진이 아니라, 피사체를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사진이 좋은 사진이다.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사진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부러진 가지 끝에 달린 올괴불나무꽃과 최근 수목원에서 만난 사진가들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괴불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은 우리나라에 대략 10종 정도가 알려져 있다. 모두 ‘인동과’에 속한다. ‘괴불’이라는 이름에는 몇 가지 다른 설이 존재한다. 가장 유력한 것으로는, 옛날 어린아이들이 차고 다니던 세모 모양의 조그마한 주머니인 ‘괴불주머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꽃의 모양이 이 주머니를 닮았다는 데서 기인한다.

또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걸어두는 대형불화 ‘괘불’(掛佛)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아래로 늘어지는 모습과 화려한 색이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했다. 또 다른 설로는 열매가 고양이(혹은 개)의 고환과 닮아서 붙여졌다는 민간의 전승도 있다.

일본에서는 계절을 나타내는 의미가 담긴 이름으로 불린다. 괴불나무는 일본에서 ‘우구이스카구라’(鶯神楽, うぐいすかぐら)로 부른다. 뜻은 ‘꾀꼬리가 부르는 신의 노래’ 혹은 ‘꾀꼬리가 춤추는 신의 노래’ 정도가 되겠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이른 봄 꾀꼬리가 울 때 피는 꽃이라는 해석과 다른 하나는, 꽃이 흔들리는 모습이 신에게 바치는 춤, ‘카구라’(かぐら)를 닮아서란 해석이다.

괴불나무 중, 올괴불나무는 ‘일찍 피는 괴불나무’라는 뜻이다. 비슷한 시기에 피는 같은 집안의 식물로는 ‘길마가지’가 있다. 올괴불나무꽃은 붉은색이지만, 길마가지꽃은 흰색이거나 옅은 노란색을 띤다. 가끔 옅은 분홍색을 띠기도 해 올괴불나무와 혼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꽃의 꽃밥 색은 완전히 다르다. 올괴불나무는 붉은색, 길마가지는 노란색이다.

참고로 길마가지란 이름은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 모양의 도구’인 ‘길마’에서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여기서 ‘가지’란 말 그대로 나뭇가지를 의미한다.

올괴불나무의 꽃말은 ‘사랑의 희열’이다. 아마도 이른 봄 만나는 예쁜 꽃을 그렇게 연관 지었나 보다. 사진 하는 사람들은 흔히 ‘토슈즈 신은 발레리나’로 부른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사진은 피사체를 통해 작가의 마음을 전달하는 예술이다. 피사체를 통해 어떻게 마음을 전달할 것인지 먼저 생각하는 게 사진에 앞서는 마음가짐이다. 그러려면 피사체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빨간 토슈즈 신고 우아하게 춤추는 발레리나를 보며 우리는 무엇을 담고 싶은 걸까? 그러고 보면 글쓴이 역시, 여전히 ‘하수’에 불과하다.





■참고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민제 外 編著.

·https://www.nature.go.kr/(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국립수목원.

·검색 도우미 : ChatGPT, 네이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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