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만든 한 컷

설리해안의 멸치잡이

by 이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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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초여름 무렵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부모님과 여행을 떠난다. 되도록 부모님이 가보지 않은 곳을 택하는데, 그해 여름 여행지는 남해였다. 두 분은 섬진강과 화개장터를 둘러보고 싶어 하셨다.

개인적으로 남해는 그리 낯선 곳이 아니다. 일 때문에 서너 번 찾았었고, 야생화 촬영을 이유로 두어 번 찾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몇 해 전, 잡지의 신년호 화보 촬영차 방문했을 때다. 계획은 보리암에서 남해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일출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풍경사진을 촬영하거나 일출을 찾아다니며 소원을 담아 본 사람들이라면 경험했겠지만, 제대로 된 일출을 만나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1년에 한 50일 정도나 제대로 볼까 싶을 정도니, 이틀짜리 짧은 출장에 멋진 일출 사진은 그야말로 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었다. 결론은 누구나 떠올리는 일출은 촬영하지 못했다. 대신 보리암 석등과 기와지붕을 걸고 일출 분위기만 물씬 풍기는 사진 몇 장을 촬영했다.

일이라는 불편한 기억을 걷고 떠난 여행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편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여행지는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가이드를 자처하고 섬진강을 따라 화개장터와 평사리 최참판댁을 들러 하동에서 남해군으로 들어갔다.

숙소는 미조항 인근 설리해변의 한 리조트였다. 해변 바위 절벽 위에 지어진 이 리조트는 침실과 거실에서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였다.

첫날 오후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잔뜩 구름 낀 하늘은 오후 4시 조금 너머부터 초저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려다본 바다에 어선 3척이 눈에 들어왔다. 두 척의 어선이 넓지 않은 만(灣)에 가득 차듯 그물을 돌리고 한 척의 어선은 그 주위를 맴돌았다. 이윽고 그물이 좁아질 무렵 3척의 어선이 모두 모였다. 주위를 맴돌던 어선의 뱃머리 쪽 커다란 통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광경에 신기해하며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망원렌즈를 걸고 어선들의 움직임을 따라 연신 셔터를 눌렀다. 뒤늦게 멸치잡이 어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남해의 멸치잡이는 죽방렴 정도만 알고 있었고, 그 사진은 이미 여러 번 촬영해둔 터였다. 그런데 우연히 또 다른 멸치잡이 방식(권현망 어업이라던가?)을 사진에 담게 된 것이다. 어두워진 하늘에, 어두운 망원렌즈는 거의 최악의 촬영조건을 제시했다. 높은 ISO(1000)와 렌즈의 흔들림 보정기능을 사용한 덕분에 그나마 온전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게으른 탓에 피사체를 정해놓고 떠난 출사는 야생화 촬영 때밖에 없었던 것 같다. 여행길에 촬영한 숱한 사진들은 즉흥적으로 찍힌 게 대부분이다. 물론 ‘어! 어!’하다가 좋은 기회와 ‘결정적 순간’들을 놓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 와중에 건진 몇 컷이 살아남아 여행의 기억을 명확하게 해주는 작은 수확이 됐다. 여행을 사진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렇다.

여행 내내 멸치회와 멸치쌈밥 등 남해의 맛있는 멸치요리를 맛보았지만, 이날의 여행 기억은 오롯이 멸치잡이 사진 한 장으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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