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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YB Sep 06. 2023

소모성 가짜 분노와 비소모성 진짜 기쁨

오늘의 하이라이트

클라우드 가상 컴퓨팅 환경에서 네이버 뉴스 텍스트 웹 크롤링을 했다. 원하는 정보를 수집해 txt파일이나 excel파일로 만드는 예제를 좀 더 다듬어서 강의에 넣어도 될 것 같다. 오늘은 연습으로 그냥 간단하게 네이버  뉴스 랭킹의 최신 기사들의 제목을 수집했다. 인터넷 뉴스의 기사는 예제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제목만 봐도 기분이 나빠지는 소식들이 많다. 그런 것을 굳이 귀담아들으며 내 현실에 끌어오고 싶지 않다. 우연히 클릭하게 된 기사의 댓글 중에서도 분쟁과 갈등을 조장하는 댓글이 있었다.

기사에 분쟁 조장 댓글이나 달고 다니는 주제에 현대 문명을 발명한 사람들과 자신을 같은 그룹으로 동일시하여 우월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려는 파렴치한 댓글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던 혁신을 이끈 사람들은 이런 기사나 뒤적거리며 쓸데없는 댓글을 달고 살 시간조차 없이 치열하게 살았을 텐데, 도대체 그 사람이 이룬 것이 무엇이길래 자신이 그들과 같다고 말하며 다른 집단을 경시하고 비하하며 우월감을 얻으려는 걸까? 한심하다 생각하는 한편,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답글을 달려했지만 이내 이런 감정은 거짓된 분노임을 깨닫고 시간 낭비 없이 그냥 신고 버튼이나 눌렀다.


나의 감정이 거짓된 분노임을 금방 상기시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해 안 될 일이 뭐가 있으며, 요즘같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시대에 화가 날게 뭐가 있는 있나요? 다 소모성 가짜 분노예요."

그 말 그대로다. 집단에서의 나의 위치를 철저히 지켜내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을 받던 시대는 지나갔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위협으로 느끼고 분노하는 행동은 그 사태에 '반응'하는 것뿐이지,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분노하고 짜증 내고 욕하는 식의 반응이 아니어도, 단호히 그 의견을 거절함으로써 나의 생각을 명확히 지켜낼 수 있다. 굳이 소모적으로 감정을 드러낼 필요조차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짜증보단 감사함이 먼저 떠오른다.

우선, 나는 내 주변에 실제로 그러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안일하고 게으른 태도로 남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려는 사람은 내 주위에 없다. 이것만으로도 그와 나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내 주위에는 서로 아껴주고 사랑해 주고 존중해 주고, 부드럽게 배려를 나누어 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나도 그들에게 그렇게 대해 주고 싶다. 그런 상황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다.


이번주부터 일주일에 한편씩 유튜브도 업로드하기로 해서 어제 올려놓은 채널 아트를 수정하고, 미리 대본이 나와있는 콘텐츠의 썸네일을 기획에 맞게 제작하는 시간이 오늘 하루 중 제일 집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시계를 보지 않고 시간이 지나버렸는지도 모르게 흘렀던 시간. 오늘 중 몰입의 순간은 그때였다. 유튜브를 할 때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알려 주고 싶은 것도, 도전해 보고 싶은 것도 많아서 뭘 어떻게 할지, 이렇게 하는 것이 맞을지 고민만 하다 흐지부지 되었었다. 그러나 결정한 하나를 1년 동안 집요하고 꾸준하게 끝까지 해보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아침에 본 현승원의 동기부여 영상에서의 말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여러분, 6개월-1년 이상을 집요하게 파고 나서 아니면 그때 놓아도 늦지 않아요. 그걸 했던 것 자체가 어딘가 사용돼요. 우리에게는 '집요함'이 문제지, 전략, 트렌트, 스킬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

"뭐가 문젭니까? 우리가 안 하는 게 문제예요. 우리가 집요하게 안 하는 게 문제예요. 하나부터 파자고요. 하나부터."


저녁에는 엄마와 함께 장터가 열리는 곳에 갔다. 장터라니,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 가보는 것 같다. 괜히 기대가 되었다. 오랜만에 가본 장터는, 장터라기 보단 대학 축제 때 봤던 푸드 트럭이 길게 나열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이 모여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봤었던 물고기 잡기도 하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집 근처나 학교 근처에서 탔었던 미니 바이킹도 있어서 괜스레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저녁을 먹은 후라 별로 배고프지도 않았지만, 아이스크림 추로스, 계란빵, 닭강정, 치즈곱창, 녹두전, 떡볶이, 닭발, 호떡 등등 여러 가지 야식으로 먹을만한 먹거리들의 향연을 걷다 보니 한두 개 사들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엄청 대단히 화려하고 볼거리가 있진 않았지만, 적당히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푸드 트럭을 구경하고 있는 것도 나름 즐길만했다. 한 바퀴 돌고 계란빵 하나를 오손도손 나누어 먹으며 집에 돌아왔다. 별것 아닌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작은 기쁨들을 발견해 주는 것. 어쩌면 이게 행복의 전부 일지 모른다.


나는 항상 목표를 상기시키며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목표를 달성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행복은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과정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임을, 내가 무언가를 가져서, 무언가를 성취해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여기서 행복할 수 있음을 안다. 행복은 그냥 결심하는 것이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목소리인 친구와 전화를 했던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린다. 피곤한 것인지 힘내라는 나의 응원과 호의에도 대꾸 없이 기분이 상하게 빨리 끊어버린 게 내심 열받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친구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줘볼걸 하는 생각도 든다.

하루가 끝날 무렵에 돌이켜보니 엄마에게 왜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점도 후회하게 된다. 아마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도 이런 것들이겠지.

내일은 주위의 모든 것들에게 조금 더 다정한 내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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