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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YB Feb 02. 2024

인생 반성문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 리뷰

어릴 때부터 난 졸라 똑똑했다.

영재 진단을 받았었다.

유치원 다닐 땐, 제대로 글을 배우기 전부터 글을 읽었다고 한다.

공부도 어릴 때부터 별로 노력 안 해도 잘했다.

맨날 놀아서 아 ㅈ됐다 생각하고 시험을 보면 다른 애들은 나보다 더 ㅈ되어 있었다.

그때는 "아, 나도 공부 참 안 하지만 다른 애들은 진짜 하나도 안 하는구나"생각했던 것 같다.

어릴 땐 공부를 별로 안 해도 항상 성적이 좋았으니까.


뿐만 아니라 피아노든 미술이든 손대는 것마다 다른 애들보다 쉽고 빠르게 터득했다.

꼬맹이 시절부터 국제 대회에서 상패를 받아 왔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개 천재고 내 미래는 보장되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에겐 치명적 결함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빨리 습득하는 만큼 질리기도 졸라 빨리 질린다는 것.

손대는 것마다 쉽게 하는 나는 조금이라도 어려운 게 있으면, 조금이라도 고통을 견뎌내야 하면 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릴 땐 내가 항상 앞서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난 제대로 해놓은 게 없고 다들 나를 앞서가 있더라.

난 내가 가장 뛰어난 줄 알았는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끝까지 해낸 게 없었다.

잠재력 말고는 가진 게 없었다.


그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When I was young, 내 꿈은 매달 23일 오전에, 소파에 누워 띠링 울리는 다음과 같은 알림을 받는 것이었다.

"XXX님, 20XX 년 X월 저작권료가 지급되었습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어릴 때부터 무형의 자산에 관심이 많던 나는, 가장 이상적인 돈벌이 수단이 저작권이라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대중음악이 돈도 많이 벌고 제일 간지 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쉽게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이 드니 해봐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작곡가를 찾아갔었다.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해서 작곡을 시작했다.


작곡을 시작한다고 결심하자마자 앉은자리에서 매일 7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곡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곡들을 들고 가니 당시 작곡 팀 사람들이 전부 놀라워했다. 당시 팀에서 키우고 있던 작곡가들은 제대로 배우기 전까지 하나의 곡을 완성시키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곡을 완성시켜 오는 것도 모자라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작곡 기법들을 사용해서 곡을 만들어 오는 것이 아닌가? 천재임이 분명하다!


... 는 식으로 당시 친한 작곡과 전공생분들에게 창의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금 객관적으로 당시의 내 곡을 분석하자면 아무 실력도, 기본기도 없는 곡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아이디어를 뺏긴 내 곡은 그냥 노래방 반주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본다. 고된 훈련과 연습으로 실력과 기본기를 갖춘 다른 작곡가들이 그 아이디어를 응용하면 훨씬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그 당시 나 또한 작곡가 밑에서 고된 훈련을 했다. 가장 먼저 훈련한 것은, 소리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몇 백개나 되는 드럼(에서 시작하여 나중엔 베이스, 피아노, 기타 등 모든 악기)의 사운드를 구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샘플로 주는 몇 백개의 드럼 킥 사운드의 파형, 주파수를 분석해서 어떤 분위기의 곡에 어떤 소스를 써야 하는지 훈련해야 했다.


하루 종일 푹, 퍽, 픽, 칙, 턱, 통, 특, 탓하는 킥 소리, 스네어 소리 등을 듣고 분석해서 분별해 내는 훈련이었다. 주파수를 구별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선 나날들이 이어졌다. 감각도 매일 쓰면 예민해진다고 했던가, 당시에 잠귀도 너무 밝아져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계속 그런 훈련이 지속되니까 미칠 것 같았다.


또한, 나는 특별히 곡을 쓸 수 있으니 한 가지 과제가 더 있었다. 그것은 매주 매주 곡을 하나씩 완성해 오는 것이었다. 이 작업이 처음엔 재밌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금방 질리게 되었다. 아니,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내가 만들어 낸 곡에 대한 피드백을 듣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당시엔 내가 만든 결과물과 나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고, 곡에 대한 비판을 나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고 괴로워했다. 그래서 일 년도 안되어 탈주닌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특별한 기억은 아니었다. 나는 관계든 일이든, 그런 식으로 쉽게 시작하고 쉽게 끝을 내었으니까.


이때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작곡을 손에서 놓은 지 2년쯤 뒤였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붙어 다녔던, 가장 친했던 친구가 유튜브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우리 둘 다 K-POP과 아이돌, 음악을 좋아해서 같이 뮤지컬도 하러 다니고 노래도 자주 함께 부르곤 했다.

내가 그 친구에게 꿈을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뭔진 모르지만, 그냥 어쨌든 노래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졸업 후에 호주로 어학연수 간다는 소식만 듣고 연락이 끊긴 친구였는데, 우연히 발견한 그 친구의 유튜브 채널을 보게 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꾸준히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친구를 보는 순간,

머리에 피가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게, 선택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선택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동안,

이 친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선택해 나갔고,

그건 구체적인 결과가 되어 이제 그 친구의 모습, 그 차제가 되었구나...'


그 순간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이미 연락처도 없긴 하지만, 있어도 다시 연락하기 부끄러울 것 같았다. (사실, 이래놓고 다시 연락하긴 했다.)


아무튼 무언가를 끝까지 추구해 낸 그 친구가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그리고 부러웠다.

그녀는 잠재 가능성을 실현한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본질적으로 한번뿐인 일회적인 삶의 책임을 회피해 왔던 나와는 달랐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멋있고 한편으론 부러웠으며,

'뭔진 모르지만 노래하면서 사는 삶'을 이뤄낸 그 친구가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나는 고통을 피했고, 희생을 외면해 왔다.

누군가가 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그 수많은 것들을 놓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내 실패 요인을 분석한다면 나는 GRIT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릿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앤젤라 더크워스가 개념화한 용어로,

목표한 바를 열망하고 해내는 열정과 난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끈기를 뜻한다.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그릿이다.

일단 훈련의 좁은 관문만 견디면, 그 좁은 통로를 통과하면,

나를 압축해서 진화하게 하는 그 시간을 견디면 많은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을 것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이를 잘 표현한 문장이 있다.



인생이란 잠재 가능성을 우리가 어떻게 실현시키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사람은 수많은 현재의 가능성 중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당신은 당신이 선택해서 실현한 삶의 모습 그대로를 살고 있다.

어떤 선택으로 어떤 실현을 이뤄낼 것인가?

지워지지 않고, 돌아오지도 않은 단 한 번뿐인 이 순간의 페이지에 영원히 기록될 '선택'에 어떤 모습을 남길 것인가?


싫든 좋든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자신의 존재의 기록을 남기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실현시킬까?'의 연속된 선택의 총합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조던 피터슨의 '피터팬'이야기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피터팬은 자라지 않는 마법의 소년이다.

이것은 아이들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마법과 같은 잠재력을 지녔다는 것을 상징한다.

피터팬은 그 마법(잠재력)을 잃고 싶지 않아 한다.

가진 것이 그것뿐이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존재하지도 않는 Neverland에서 잊힌 소년들의 왕이 되어 살아간다.

진짜 여성과 진정한 만남을 가질 가능성을 포기한 채로 어쩌면 사랑이 되었을 수도 있는 웬디를 잃는 선택을 한다.


그녀는 평범하게 자라서 아이를 갖고 가정을 가지고 싶어 한다.

자라나는 것을 받아들이고 삶의 유한함도 받아들인다.

피터팬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은 여성의 대체물인,

마치 포르노의 환상 같은 팅커벨에 만족하고 살아가야 한다.

팅커벨은 존재하지 않는, 진짜의 대체품일 뿐이다.


조던 피터슨은 이야기한다.


'가능성'을 포기하고 실제로 선택해서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성숙에는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젊음의 잠재력을 현실의 틀에서 희생해야만 한다.

희생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우리는 성숙해지는 것을 늦춤으로써 오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이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 자신을 부숴버릴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대체 뭘 했어? "
"글쎄 20대 초반의 나와 비슷한걸?"
"근데 넌 20대 초반이 아니잖아. 넌 그냥 늙어빠진 젖먹이일 뿐이야."
“….”


적당히 애매한 수준의 20대 초반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은 나에게 성숙을 기대할 것이다.

그것은 적당히 애매한 무언가에서 나오지 않는다.

성숙함을 거부함으로 얻는 것은 그냥 포텐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다.

그것만으론 뭔가 뚜렷해지지 않는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아직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다.

나는 아직 아무도 아닌 것이다.

희생하기 전까진.


희생하기를 망설이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조던 피터슨은 일침을 가한다.


희생할 무언가를 선택하라.
희생은 필연적이다.
희생을 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무엇을 희생할 것인지 정하라.
그나마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희생할지 선택할 수 있다.

잠재력을 희생하라.
실제로 존재하기 위해선
잠재력을 희생해야 한다.

누군가가 되어라.
훌륭한 누군가가 되면
또 다른 무언가도 될 수 있다.

당신이 훌륭한 회사원이 되면
훌륭한 사업가도 될 수 있고,
훌륭한 가장도 될 수 있고,
훌륭한 지역사회의 기둥도 될 수 있다.










염세주의자는 매일 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내면서 달력이 얇아지는 걸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사람과 같다.


반면에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떼어 낸 달력 뒤에 그가 행한 중요한 일과가 기록되어 있어 그것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 놓는 사람이다.

그는 거기 적힌 풍부한 내용과 충실히 살아온 삶의 기록들을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는 피터팬을 졸업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젊음이 주는 잠재 가능성, 미래, 청춘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혀있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 속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 아니라
내가 용감하게 견뎌낸 시련이라는 실체까지.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나는 이렇게 말하는 삶을 살아오고 싶다.







참고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조던피터슨] 몸뚱이만 어른인 아이들에게

https://youtu.be/eRraJkqsWNk?si=fEWyzpMRJO_8kz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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