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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YB Jul 04. 2024

짐승에 합격한 모든 요조에게, 그리고 내 안의 요조에게

<인간실격>을 읽고

스스로 인간으로서 실격이라고 생각했던 요조.

사실 요조의 시선에서 인간이,

엄하고 무서웠던,

그리고 경외심이 들만큼 대단하기도 했던,

사회에서 인정받는 높은 위치에 있던,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인간'이다.


성인이 되어 집을 나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그는 아버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내면에는 항상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스스로를 나무라는 아버지가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은 인간으로서 실격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갔다.

인간실격을 관통하는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의 굴레에서,

그는 '아버지가 뒤집어질 정도로 대단한 화가가 되기 전엔'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는 형 앞에서도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미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 전의 자신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타인에게 거부당하기 전에 먼저 거부해 버린다.

가장 두려운 상황이 오기 전에,

자신의 가치의 기준이 되는 아버지에게 거절당하기 전에 스스로를 거절해 버린다.


보면서 명치를 세게 치고 싶었다.

“아니, 이 자식은 쓰레기 같이 사는 주제에 기준이 왜 이렇게 높아? ”








자기 도피적 행위에 몸담으면서,

그런 자신을 싫어하고 경멸하며,

그 경멸의 감정을 느끼는 동안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으려고 한다.

자신을 나무라는 동안에,

적어도 스스로를 경멸하는 자신은

경멸당하는 자신과 분리돼서 느껴진다.


자아가 분열하는 것이다.


너무 싫은 나를 스스로 비난하면서 타인의 비난,

그리고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비겁한 행위다.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 인정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럼 요조는 진정으로 '아버지가 뒤집어질 정도의 대단한 화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나?


그것도 아니다.


매일 자신의 엄격하고 높은 잣대와 싸우면서도

화가로서 인정받기 위해 몰입하고 매진하긴커녕

술과 여자로 하룻밤을 잊기 바쁜, 처녀에 환장한 쾌락주의자의 삶을 산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떠오른다.

죽고 싶다면서 왜 그렇게 섹스는 하고 싶어 하는지?


요조는 그럼 왜 대단한 화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걸까?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가 원하는 건 대단한 화가가 되는 것 따위가 아니다.

그가 원하는 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것뿐이다.

그냥 한 명의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것뿐이다.


근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와, 사람들과, 세상과 마주하는 게 너무 두려워서 회피할 뿐이다.

본인이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다.

그걸 똑바로 보는 게 너무 힘드니까 맨날 쓸데없이 여자와 술에 절어 방탕하게 지내면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요조는 그 누구도 제대로 마주해 본 적이 없고, 그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다.

스스로도.






.

.

.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싫다.

그래서 줘 패고 싶었다.


자기 연민에 점철된 사람치고 이상하리만치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또다시 몰아세우고 혐오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만 해"라는 고착을 내려놓지 못한다.


만약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이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

내가 만들어왔던 스스로가 진짜 내가 아니란 걸 들킨다면?


나는 어쩌면…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나에게 있는 걸까?


작품 속 요조는 "나는 자격이 없다."라는 두려움과 절망감이 깔려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눈치를 본다.

타인의 반응을 살핀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끊임없이 타인의 기준에 맞춰 광대가 되려고 하거나, 남들의 반응을 확인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나를 보며 우월감과 자기혐오적인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넌 알아야 했다.

네가 진짜 원했던 것은 아버지의 인정 따위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 누구의 인정도 아니었다는 것을.

상관없다. 그런 건.

왜냐면 네가 진짜 되고 싶은 것은 그저 한 명의 인간이었을 뿐이었으니까.

스스로 봐도 인간 같지도 않은 네가, 가면 없이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네가 뭘 잘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대단한 뭔가를 이뤄서가 아니라

그저 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사람.

단지 그 하나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지켜내기 위해선 넌 책임에서 눈을 돌리면 안 됐다.

문제를 회피해선 안된다.

남들이 말한 높은 기준을 내면화해서 그게 네가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너의 사소한 이유와 의미를 찾아 책임을 져라.

그게 진짜 네가 원했던 인간답게 사는 삶이었다.


-인간실격 진짜 싫어하는 이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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