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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YB Jun 27. 2024

내 인생에서 뭐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은가?

책 <희망 버리기 기술>을 읽고

오늘 아침에 썼던 관찰일기의 주제였다.

"내 인생에서 뭐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은가?"

사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의, 나를 죽게 만들 만큼의 소중한 것들은 아니었다.

팔다리, 한 두 개쯤? 사실 없다고 해도 어찌어찌 살아갈 것이다.

가족, 친구, 연인? 모두 소중하다.

정말 소중하고 사랑하지만 사실 그들이 없었을 때도 잘 살아왔었다.

아마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19살 때 독립해서 내 생애를 온전히 내 몫으로 책임져 본 뒤로,

부모가 없어져도 어찌어찌 살 수는 있겠다 싶었다. 아, 물론 슬프기야 하겠지.

하지만 못 살 정도는 아니다.


그런 건 없다.

지금 내가 가진 것 중에 없어진다 해도 못 살 것은 없는 것 같다.

직장이 없어져도, 내가 쌓은 지식과 기술이 사라져 버려도

살아갈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드는 와중에

<희망 버리기 기술>이라는 책에 소개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책에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던 '엘리엇'이 무언가를 잃고 삶의 모든 것이 곤두박질쳐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나온다.


그가 잃은 것은 막대한 돈도, 가족도, 직장도 아니었다.

그는 뇌종양 수술로 머리에서 작은 과일 크기의 종양을 떼어 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삶을 유지시키는데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혹시 그가 잃은 것이 지능이었을까?


전혀. 검사 결과 그의 지적 능력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무언가 과제를 수행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는 IQ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그의 추론 능력은 빈틈없었고, 기억력은 대단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초래한 영향과 결과에 대해 논할 수 있었다.


혹시 그가 잃은 것이 심리적 안정감이었을까?

전혀. 그는 자존감도 높았고, 만성적 불안이나 스트레스의 징후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는 파란 펜을 사용할지, 검정 펜을 사용할지 결정하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

그는 새로운 스테이플러를 사려고 투자자 회의를 빼먹었다.

그는 자녀를 돌보고,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고, 자녀의 야구 경기를 관람하러 가는 대신 제임스 본드 연속 방송을 봤다.

그는 결국 해고되었고, 이혼을 당하고, 꽃뱀에게 사기를 당해 재산의 절반을 날렸다.


어째서? 그는 지적으로 전혀 문제 될 만한 것이 없다.

과연 그에게 있어서 무엇이 변한 걸까?


.

.

.


그가 잃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불행에 절망하는 능력'

즉,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다.


감정은 가치를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감정이 없다면 우리가 딸의 피아노 연주회에 참석할 때에 부모로서 느끼는 자부심과

새 양말 한 켤레를 살 때 느끼는 뿌듯함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걸어 다니고 말하는 무관심한 기계가 될 뿐일 것이다.


감정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좋고 나쁨을 구별한다.

어떤 행위의 결과가 우리에게 더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는지 판별한다.

우리에게 좋은 것, 더 나은 무언가, 가치를 판단하고 선악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우선시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이 모든 가치 판단에 의거해 우리는 자기 통제력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가장 이성적인 선택은 가장 감정적인 선택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엘리엇은 자신의 형편없는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로 인해 자기 삶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것을 그는 명백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회한과 자기혐오는 물론이고, 약간의 당혹감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때로 사람들은 엘리엇이 겪은 일의 총합보다 덜한 일로도 자살로 내몰린다.

그러나 엘리엇은 자신의 불행에 편안해했을 뿐만 아니라 무관심했다.

엘리엇은 자리에 앉아 인간 존재의 가장 사악한 타락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가 잃은 것은 우리가 평소에 괴롭게만 느껴졌던 능력이다.

때로 우리는 감정을 느끼지 않기를 바랄 만큼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곤 하니까 말이다.

오히려 그가 잃은 것이 돈이었다면 그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가 잃은 것이 가족이었다면 그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가 잃은 것이 직장이었다면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잃은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절망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 한 가지를 잃고 결과적으로 돈도, 가족도, 직장도, 소중했던 그 모든 것마저 전부 잃게 되었다.


나에게 중요했던 것이 어쩌면 내가 지금 목을 매고 절절히 매달리는 그것이 아닐지 모른다.

나를 절망하게 하고 나를 열망하게 하는 그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런 것들이 없어도 나는 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 잃는 다면 어떨까?

내가 절망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해 무엇이 가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해진다면?

그러면 나는 살아도 산 게 아니지 않을까?

내가 아니지 않을까?

어떤 것에 대한 감정을 느끼는 능력 속에, 가치를 판단하는 그 능력 속에 나라는 존재가 본질적으로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까지 생각이 미치니 문득 다른 분들의 의견이 궁금해진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뭐가 없어진다면, 못 살 것 같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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