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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Mar 17. 2017

당신은 언제 가장 효율적인가

야근, 최대 산출의 미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절. 내가 처음 몸 담았던 회사는 야근이 많기로 유명했다. 한창 바쁠 때에는 한 달 근무 시간이 500 시간이 되기도 했다. 한 달 기준 500 시간이면 하루 17 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근무 통계를 보고 나 스스로도 의아했던 그 수치는 사나흘에 한 번씩 밤을 새우면 달성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잔업이 많았던 그 회사는 다른 한편에서는 야근 줄이기 운동도 병행했다. 15년 전이었음에도 GWP(Great Work Place)라는 개념도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 가정의 날을 만들어 칼퇴근을 시켜주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월말에 잔업이 과다한 사람을 불러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나도 그 교육에 불려 간 적이 있다. 200명이 조금 안 되는 개발팀에서 잔업 시간으로 2등을 한 달이었다. 인사 조직에서는 경고 메일과 함께 ‘잔업 과다 직원 면담’ 안내를 보내왔다. 저녁을 먹고 잔업 대신 불려 간 자리에는 상무님이 계셨다. 인자한 미소를 보이시며.

“적당히들 하지 그랬어. 계속 수고들 좀 해줘”

경고도 교육도 아니었다. 그곳은 격려와 눈도장의 자리었다. 회사는 참 야근을 좋아했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니 무엇보다 미혼자가 많았다. 몸이 아픈 직원들도 많았고. 취미를 갖는 것은 괜한 호사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스트레스는 풀어야 했기에 잔업이 끝나면 직원들은 앞다투어 술집으로 향했다. 급하게 술을 입속으로 부어 넣었다. 회사 근처 술집은 그렇게 매일이 불야성일 수 없었다. ‘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술을 마시는데 내일 모두츨근은 할 수 있으려나’하는 걱정이 들었다. 잔업 시간이 많아질수록 다행히 돈은 쌓여갔지만 삶은 점차 쪼그라들었다. 몇몇 회사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제는 너무 많이 인용되어버린 통계처럼 우리나라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국민들이 살고 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6분에 불과하다는 슬픈 통계에도 나아질 기미는 없다.





야근이 효과적이기나 한 것일까? 효율적이냐는 질문에 앞서 야근이라는 것이 효과는 있는지 궁금하다.


프레데릭 테일러(Frederick W. Taylor). 테일러 주의(Taylorism)를 만든 사람. 그의 이론은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이라 할 만하다. 그는 최초로 과학적 근거로 노동에 접근한 사람이다. 또 최초로 합리적 근거를 갖고 노동을 분화한 사람이기도 하다. 분업 노동의 이론적 토대의 탄생이 이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등장 이전에도 분업은 존재했지만 그 근거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자원의 최대 투입이 최대의 산출로 이어 진다.’라는 믿음. 산업사회에는 나이가 어리든 많든, 교육 수준이 낮든 높든, 건강이 나쁘든 좋든 간에 무조건 많은 노동을 투입하면 더 많은 생산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테일러는 이러한 막연한 믿음이 최대 생산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알아챘다. 철강회사, 철도회사 등에서 관리 업무를 하던 테일러는 업무의 적절한 분화와 관리, 교육을 통해 투입 대비 생산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즉, 투입 자원의 양적 증대가 아닌 업무의 효율성 제고를 답으로 제시하여 기존의 상식을 부러뜨린 것이다. 나아가 그의 연구는 적절한 노동 시간, 동기 부여, 명확한 과업 명시, 성과급제도 등으로 이어져 현대 자본주 체제의 근간을 다지게 된다.


Frederick Winslow Taylor



이러한 테일러 주의의 정점을 찍은 인물은 헨리 포드(Henry Ford)였다.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포드는 기존의 분업에 컨베이어 벨트를 접목시켰다. 자동 생산 라인을 통해 효율성을 더 높였다. 그가 고안한 생산 방법은 이후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체의 판도를 바꾸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에 가려 헨리 포드의 업적 중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동기부여’다. 포드사는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 노동 시간과 임금 구조를 갖고 있었다. 다른 자동차 회사들은 될 수 있으면 노동 시간에 따라 성과를 측정하여 차등적 임금을 지급했는데 그 액수는 시간당 약 $2~2.5 정도였다. 하지만 포드사는 고정된 시간 동안 일하고 다른 회사의 두배가 넘는 시급을 지급했다. 8시간을 일하게 하고 시급 $5를 지불했던 포드사의 정책은 고도로 숙련된 장인들을 최대한 오랫동안 충성심 있게 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처음 이 조치가 발표되었을 때 경쟁자들은 반색했다. 머지않아 포드사의 인건비가 상승해 이 정책을 철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전체 비용 측면에서 볼 때 포드사의 투입비용은 상승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소했다. 근로자의 의욕이 상승하여 생산 능률이 높아졌다. 이직으로 인한 재교육 비용이 대폭 줄었다. 심지어 원자재 투입 비용까지 감소했다.


이후 포드의 생산 방식은 사업의 표준이 되다시피 했다. 8시간 근무, 직원 재교육, 업무 지시 방법, 처우등 오늘날 많은 회사의 시스템의 뿌리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Henry Ford




그렇다면 8시간 근무가 최선일까? 그답을 포드 보다 더 오래된 심리학에서 찾아보자. 1908년 비교 심리와 지능검사에 능했던 Robert Yerkes와 젊은 심리학자 John Dodson은 ‘습관 형성에 미치는 자극’이라는 기념비적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은 이후 발표될 스트레스와 과업 달성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논문들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잘 알려진 ‘스트레스가 적절할 때 과업 수행의 결과가 가장 좋다.’는 Yerkes-Dodson 법칙이 탄생한다. 이후 이 이론은 발전을 거듭한다. 1956년 Duffy Elizabeth는 각성과 활성화의 상관관계를 정립했고 2000년대까지도 Yerkes-Dodson 법칙은 지속적으로 인용되었다. 최근의 연구는 단순히 스트레스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과가 떨어진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나아가 단순 작업일 때 보다 지식을 활용하는 일이나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과제를 다룰 때 스트레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까지 밝혀냈다. 즉, 디자인, 예술을 비롯한 지식, 감성노동의 경우 스트레스가 조금만 심해도 생산 효율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순 작업이 8시간 정도에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다는 포드의 이론에 따르면 오늘날의 지식 근로자들은 더 짧은 시간 더 나은 환경에서 일을 해야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Yorkes-Dodson Law




물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이 근무 시간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근무강도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 중에 하나인 점을 감안하면 과한 잔업은 업무 효율을 심각히 저해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트레스와 성과의 상관 관계룰 연구했던 사람들 중에서 적정 스트레스를 산술화 하려는 노력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어느 수준인지 객관적, 통계적으로는 밝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객관적인 통계나 이론이 없더라도 직원의 근무 강도를 높이는 것이 직원들의 사기나 충성도, 행복감 등을 떠나 업무 효율 측면에서도 좋을 것이 없음은 명확해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직장인들이 느낄 스트레스는 그래프 변곡점의 왼쪽에 위치할 것 같지는 않다.



직원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그들의 가정을 위해 근무 시간을 줄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익의 측면에서 봤을 때에도 직원들의 근무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더 많이 일해야 나은 결과를 갖는다는 후기 산업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19세기 후반 산업화 시대를 지배했던 그 통념 말이다. 노력은 시간으로 계량되지 않는다는 이 간단한 상식에 이제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적어도 기업이 직원들을 잔업시간으로 줄 세워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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