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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Mar 10. 2017

수평과 독재

조직의 성격을 좌우하는 하나의 키

요 근래 몇 년, 수평 조직에 대한 실험이 여러 회사에서 있었다. 수직적인 조직 구조를 변화시켜 조직 구성원 개개인의 다양한 가치를 품어 혁신과 진보를 가능하게끔 하려 했다. 이 시도에 공감한다. 사람들의 개성과 특성을 존중해 줄 때 개인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고 조직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수평 조직은, 흔히 생각할 때 스타트업 기업의 전유물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위계(Hiararchy) 중심의 문화가 기업의 근간을 이루는 대기업이나 공무원 조직은 수평 조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최근 4~5년 동안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평조직으로의 전환이 시도되었다. 초기기업들은 호칭을 없애버렸다. ‘~님’이나 ‘~매니저’로 모든 직원을 부르게끔 하여 직급과 연차를 쉽게 알 수없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어떤 기업들은 아예 직급을 없애 버리거나 인사 체계 자체를 완전 수평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기업 인사 체계의 중요 지표였던 연공서열마저 없애버리자는 시도였다. 이 기업들은 성공했을까? 수평 조직이 뿌리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평 조직을 시도했던 몇몇 기업의 사례를 들어본다.


A 기업 - 통신사

A 기업은 초창기 수평 조직 문화 설파에 앞장섰던 조직이었다. 연공서열은 존재하지만 호칭을 없애는 것으로 수평 조직 문화를 뿌리내리고자 했다. 호칭은 매니저였다. 워낙 조직이 크고 보고 문화가 철저했던 그 기업은 부문별, 부서별로 리더(長 – 상위 부서에 보고하는 사람)를 지정할 수밖에 없었다. 팀장 역할을 하는 사람이 부서별로 한 명씩은 있어야 했다. 호칭 통일이 이루어진 후 언뜻 수평적인 듯한 분위기가 났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이 전보다 특정인의 역할만 더 커졌다. 상위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팀장의 권한과 역할은 이전보다 강해졌다. 호칭 수평은 이루어졌지만 팀장의 gate keeping은 기존과 비슷하거나 더 심해졌다.




B 기업 - 제조업

B 기업은 더 나아가 직급까지 철폐하였다. 이 조직 역시 A기업과 비슷하게 호칭은 ‘매니저’였다. 모든 지위 구분을 없애겠다는 시도였다. 확실히 조직의 분위기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상위 조직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들의 역할도 명확히 구분하여 그들은 커뮤니케이터로써의 역할과 권한을 가질 뿐, 조직의 리더가 아닌 구성원임을 인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기업은 밴드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직급 대신 자신이 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였다. 직원들이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해야 성장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주장에 직급을 대신해 도입한 제도였다. 사실상 직원들의 연공서열을 나타내는 체계였다. 진급자 발표는 없어졌지만, 밴드가 존재하는 바람에 직원들은 자신이 대략 어떠한 직급에 위치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해가 지남에 따라 조직은 자연스레 수직화 되었다. 상명하달 문화가 다시 등장했다. 이럴 거면 그만두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조직의 창의성 증진이라는 이유로 제도는 유지되었다.




C 기업 – 인터넷

이 기업은 수평 문화 정착에 성공하는 듯했다. 리더를 포함한 모든 성원의 역할과 권한이 무척 평등했다. 최상위 리더 까지도 팀원과 다름없이 업무에 뛰어들었다. 보고는 없었으며 대화와 토론이 보고를 대신해 이루어졌다. 문화가 정착됨에 따라 발언권과 의사 결정권이 고르게 분배되었고 이에 따라 직원들의 자발성은 향상되었다. 직원 스스로 동기 부여하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졌다. 조직의 성과 또한 눈부셨다. 일하는 이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다른 회사의 선망을 사곤 했다.


하자성혜(下自成蹊)라 했던가, 그 기업에 사람들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기업은 더 많은 일을 더 큰일을 시작했고 조직은 점차 커졌다.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바뀌었다. 기존에는 P2P 형태로 이루어지던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조직이 커져 가면서 이전 형태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마치 노드의 개수가 늘어남에 따라 연결의 개수가 기하급수 적으로 늘어나는 것처럼 사람이 늘어나면서 소통의 복잡성도 커져갔다. 결국 N:N의 커뮤니케이션은 점차 1:N의 연결로 바뀌어 갔다. 선택의 기로였다. 조직을 작게 쪼개거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꾸어야 했다. 하지만 리더는 조직을 쪼개지도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꾸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늘어난 다음에도 모든 팀을 직접 챙겼다.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대화와 토론은 사라졌고 리더에게 보고하기 위한 줄만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대화와 토론은 사라지고 성과와 지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위의 사례들은 수평 조직을 지향하되 그것이 편제(編制)에 그칠 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리 하멜은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서 창의성과 효율성을 고루 갖춘 조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가 설명하는 이상적 조직의 모습은 놀랍게도 국내 기업들이 추구하는 이상과 닮아있다. 반대로 게리 하멜이 국내 기업들의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 정도다. 그런데 그는 이상적인 조직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수평조직 문화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한 조건이자 기본 전제였다. 그것은 바로 ‘대화와 토론’이었다. 모양 만수 평하고 공평한 조직이 되었다고 해서 그 속이 공평할 수는 없다. 정말 수평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에 빈번하고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핵심은 모양이 아닌 그 속을 흐르는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일지도 모른다. 건강한 신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근육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몸을 지탱하는 코어(Core)를 단련해야 하는 것처럼…


사례에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조직을 보자. 초기 활발한 토론과 대화가 조직 문화 깊숙이 스며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구성원들의 자기 동기부여와 만족도 모두 높았다. 스스로 업무를 만들고 풀어나간다는 성취감에 조직은 날로 번창해 갔다. 하지만 조직이 성장한 후 조직 내의 대화는 크기와 반비례하여 줄어갔다. 조직이 커짐에 따라 리더는 비전과 목표, 문화에 더 신경을 써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직접 챙기려 했다. 그 고집 때문에 조직은 점차 한 사람만 바라보게 되었고 그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조직의 병목이 되어갔다. 실무자들은 그의 입만 바라봤다. ‘Yes’라는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리더는 어느새 조직의 one point of failure가 되었다.


커뮤니케이션과 대화. 이 작은 차이가 수평과 독재를 나누는 경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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