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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Jul 08. 2017

의지는 작은 데서부터

의지 그 자체로는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얼마 전 담배 이야기가 나왔다. 한 학생 창업가가 담배를 끊게끔 하는 기발한 장치를 개발했다면서 보여주는 자리에서였다. 흡연자가 얼마만큼의 담배를 피우는지 확인할 수 있게끔 해주어 담배를 자연스럽게 줄이거나 끊게 해주는 제품이라고 했다. 반응은 둘로 갈렸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수긍하는 듯했는데 반대로 흡연자들은 '금단증상이 고려되지 않았다.', '담배는 결국 본인의 의지로 끊는 거지 정보가 의지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제품의 무용을 주장했다. 나는 그것을 만든 학생들에게 담배를 피워보거나 끊어본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대답은 '아니오'였다. 반대로 무용을 주장하는 흡연자에게 담배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의지'라고 대답했다. 흡연자가 물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당신은 담배를 끊어본 적이 있습니까?"

"네 끊은 지 4년 됐습니다."


이런 대화의 끝은 늘 비슷하다.


"거 독한 사람이네..."




사실 담배는 의지로 끊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 모두 의지보다는 계기로 담배를 끊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담배를 '의지 만으로' 끊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날 담배를 끊겠다면서 결심을 하고 의지의 회로를 작동시킨다. 아마 대부분의 흡연자들이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 자유의지로만 담배를 끊고 금단증상을 이겨낸다는 것은 판타지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 사회는 자유의지의 신화를 신봉한다. 이 세상 의지로만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을진대 우리는 일의 결과를 지나치게 개인화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공부도, 다이어트도, 돈도, 승진도... 불굴의 의지로 노력만 하면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의지는 자꾸 약해진다. 쉽게 흔들리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타자가 자기 절제의 미덕 위에 쌓아 올린 성취를 학습한다. 반면 의지가 꺾여 성취에 다가서지 못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야박한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지박약이라는 평범한 특성을 타고나지만 이 특질을 들키는 순간 패자로 낙인 찍힐까봐 태연한 척 살아야만 한다.


이런 의지에 대한 신봉은 합당한 것인가? 정말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의지를 갖고 정성을 다하면 목표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인가? 반대로 쉽게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의지박약'이라는 딱지를 붙여도 되는 것일지...


담배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내 주위의 금연가들은 다들 금연을 위한 계기를 만들었다.


이직을 해서 늘 곁에 있던 담배 친구랑 떨어져 있게 된 사람.

유학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끊게 된 사람.

아이가 생겨 스스로를 다잡게 된 사람.


이렇듯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은 환경이 바뀌거나 삶의 변곡점을 기회로 활용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계기를 활용하거나 환경을 바꿔주는 행위는 결심을 현실화시키는데 무척 효율적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오면서도 환경에 변화를 주어 결심에 도달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인지만 못했을 뿐이지...


더 공부에 집중하고자 평소 생활환경에서 벗어나 독서실이나 도서관으로 옮긴다.

고3이 되면 집에 있던 만화책이나 잡서들을 정리하거나 버린다.

자기 계발을 위해 출근시간 한 시간 전에 와서 영어공부를 한다.

연인을 만나면 좀 더 매력적이고 적극적인 인격으로 변화한다.


이렇게 우리는 이미 본능적으로 뭔가를 이루기 위해 계기나 환경 변화를 활용하고 있다. 아무리 결심이 강하게 서도 아무런 주위 환경의 변화 없이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가 어렵다는 것을 자연스레 체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체득한 지혜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자신의 의지를 믿고 너무 쉽게 불굴(不屈) 하지 않을 것이라 예측하고는 한다. 게다가 우리는 스스로 의지가 박약해질 때 그 이유를 찾는데 능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에 자기 합리화는 어찌 그렇게 쉽게 되는지... 거기에 확증편향까지 겹쳐져 의지로 확고했던 기존의 계획은 '애초에 이루기 어려울 법한 일이었어'라고 쉽게 결론 나고 만다.


변화하고 싶다면, 우선 주위 환경부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어떠한 결심을 무너뜨릴 수 있는 요소들을 고찰해 보고, 이들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제거시킬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효과적이다. 술을 끊고 싶다면 퇴근 후 동료들과 어떻게 멀어질지를 생각해야 하고, 지각을 하고 싶지 않다면 전날 잠들기 전에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냥 '먹지 않겠다.', '일찍 일어나겠다.'라는 다짐은 사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리의 의지는 박약하다. 또, 노력과 결과의 관계는 비례적이지도 않다. '불굴의 의지'는 그저 신화로써만 즐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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