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도 없고 유보될 수도 없는
마침내, 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문장은 다분히 극적이다. 감정적이고 그래서 감정에 호소하는 인상을 준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향하고 잇다는 걸 숨기지 않는 문장이다. 그 전 문장에서 고조된 긴장이 마침내, 에서 펑하고 터진다. 우르릉쾅, 마침내, 우리는. 마침내, 너는. 그리하여 마침내, 그것은. 마침내, 시간은.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마침내.
마침내, 가 지향하는 건 급기야, 따위로 대체될 수 잇는 게 아니다. 그건 그야말로 마침내, 다. 대안도 없고 유보될 수도 없다. 그건 그러니까 미룰수 없는 순간이다. 절대절명의 순간, 우리는 마침내, 를 꺼낸다. 그건 마지막 카드다. 그게 조커가 될 수도, 에이스가 될 수도 잇지만 대부분 어쨋든 상대방은 당황하게 된다. 적어도 움찔, 하게 된다. 마침내, 가 노리는 건 그 순간의 빈틈이다. 마침내! (움찔) 이야아아압! 그러면 敵은 나가 떨어진다. 아아, 敵이라니, 도대체 이 세계에 명백한 적은 어디에 잇단 말이냐. 명백한 건 언제나 거울에 비친 제 모습 뿐이다. 아니다. 여기는 그것마저 확신할 수 없는 세계다.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는데 도대체 누구와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그러니 적이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적은 적이 아니다. 그건 바로 너다. 너는 나가 떨어진다. 마침내. 그리하여 여기서는 네가 나고 내가 너다. 믿을 수 없겟지만 믿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너는 나고, 나는 너다. 우리는 한 뿌리에서 태어낫다. 같은 것을 욕망하고 같은 삶을 지향한다.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여러개를 팔아치운다. 팔아 치울 게 많을수록 우리는 더 부유해진다. 모든 걸 다 팔아버려도 우리는 부유하다. 참혹하게 부유하다. 그건 부끄럽지도 않은 일이다. 명확한 게 없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마침내, 아아, 우리는 마침내.
어둠에서 태어난 그것은 마침 길고 아름답고 무서운 것으로 자라낫다.
도대체 그럴듯한 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불모지에서 나는 무얼 찾고 잇는걸까. 마침내, 따위에 현혹되어서는. 괴상한 노출증에 사로잡힌 두더쥐마냥. 태초에 이야기가 잇엇다. 색깔이 잇엇다. 노래가 잇엇다. 온갖 잠언들이 흘러내리는 사각의 링에서 주춤주춤, 제가 흘린 피에 미끌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너의 피와 나의 피가 뒤섞여 미끄러운 바닥에서 엉거주춤. 누가 적인지 분간하지 못할 세계에서, 마침내. 허공을 향해서 원 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