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솔루트의 브랜드영상 "One Night"
때때로 브랜드가 발표하는 재기발랄하고 창의적인 영상들을 좋아한다. 짧고 강렬한 영상에 담은 메시지를 되새겨보는 것도 흥미롭고, 참여한 작가나 제작진들 혹은 출연자들을 찾으면서 그 이력을 되짚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단순히 제품이나 브랜드를 팔기 위한 광고와는 달라서 특히 흥미롭게 여겨지는 것 같다. 요컨대 내가 말하는 브랜드의 영상들은 커머셜이라기보다는 모티베이션 영역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모티베이션. 이것은 모바일 시대의 가장 대중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스포티파이나 디저, 애플 뮤직에는 조깅이나 운동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들이 ‘동기부여’란 제목으로 큐레이션되어 있고, 유튜브나 페이스북의 영상들 중 대다수가 공부, 연애, 직장생활, 결혼생활, 심지어 인생 그 자체에 대한 모티베이션 콘텐츠이다. 멘토링과 인터뷰, 스토리텔링과 콜라쥬 등으로 형식은 다르지만, 지향하는 바는 대부분 동일하다. 1인 미디어 시대에는 아무래도 자기계발과 성공스토리가 좀 더 개인과 밀착된다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중 성공적인 콘텐츠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테슬라나 애플이 대표적이다. 동기를 자극하기 전에 먼저 관점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 앱솔루트의 브랜드 캠페인인 “One Night”도 그렇다.
이 영상은 1분 동안 인류 발전의 역사를 감각적으로 슥, 훑는다. 비주얼적인 임팩트는 물론 사운드적으로도 꽤나 강렬하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오케이, 빅뱅부터 시작하는 영상은 태양계의 탄생, 지구의 바다, 최초의 생명체, 인류의 태어남과 도구의 발명, 문명의 발달을 순식간에 보여준다. 문명 이전의 태초로부터 문명 이후, 그러니까 고대와 근대와 현대를 단 1분 만에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리학적 규칙 아래 진행되는 대자연의 섭리와 생명체의 진화와 인류 문명의 발달이 모두 있다. 140억년의 역사가 단 1분 만에, 그러니까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일처럼 보여진다.
메시지는 단 하나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아니, 태초에 ‘아이디어’가 있었다. 어떤 위대한 생각이 이 모든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라는 선언. “모든 것이 시작된 그날 밤,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생각. 이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너무도 대담하고 기발해서 온 세상을 움직일 정도였다.” 그리고 압도적인 영상들이 이어진다. 태초의 위대한 순간을 묘사하는 비주얼 이펙트와 고대 문명의 발전사는 마치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여기에는 문자의 발명, 전기의 발명, 증기관의 발명과 산업혁명,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를 비롯해서 위대한 작가들의 단면들이 등장한다. 니나 시몬느, 엘비스 프레슬리, 뉴욕의 스튜디오54, 스푸트니크와 아폴로의 달착륙, 베를린 장벽의 붕괴, LGBT-젠더 무브먼트와 휴머노이드 테크놀로지까지. 20세기 이후 현재까지 라이프스타일의 혁신적인 변화를 이끈 순간들이 인상적으로 펼쳐진다. “셀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지나 여기, 우리가 있다. 이제는 당신의 차례.” 새삼스럽지만, 강렬한 메시지. 크리에이티브가 세상을 바꾼다.
다만, 이런 질문은 생긴다. 창의적인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중요한 건 혁신을 이끄는 행동이 아닐까.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크리에이티브를 엄청나게 대단하고 어려운 것, 요컨대 단지 창작이나 창의적인 생각을 위한 생각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니까, 아티스트들의 전유물로서 크리에이티브를 이해하는 것. 하지만 크리에이티브란 사실 솔루션이다.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이 바로 크리에이티브다. 동기부여 역시 같은 맥락이지만, 동기부여가 실제로 행동했을 때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마인드 콘트롤이라면 해결방식으로서의 창의성은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다.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결국 세상이란 좋은 쪽으로 바뀌기 마련이라고 믿는다. 다만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렵고 험난하고 하필이면 ‘내’가 그 속에 있어서 괴로운 게 사실이지만 ‘지구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사회인으로서 우리는 문제 해결 방식으로서의 창의성을 요구받고, 그걸 토대로 좀 더 나은, 모두에게 좋은 방법을 찾는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진보의 역사가 퇴보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라는 문구야말로 인류의 가능성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래서 문명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그러나 순식간에 바로 여기에 다다른다. 우리는 기술적인 진보와 함께 인식의 진보를 이뤘다. 노동문제와 인종문제와 젠더 이슈는 21세기에도 첨예하게 부딪치는 쟁점이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점차적으로 나아질 것이다. 그러니까, 'Create a better tomorrow, tonight’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그저 관용적인 수사는 아니다.
대중성은 세대의 문제이자 시대적인 감각의 문제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충돌한다. 기존의 생각과 새로운 생각이 부딪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어떤 것은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든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한 문화권은 그 ‘충격적인 것’을 웬만큼 견딜 수 있게 된다. 다만 처음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대중성’이란 이런 과정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그만큼 세상은 좋은 쪽으로 움직인다. 세계는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에겐 더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더 많은 ‘충격’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이 영상은 확실히 자극적이다.
앱솔루트는 이제까지 혁신적인 캔페인들을 통해 자사의 가치를 대중화했다. 그때마다 꽤 논쟁적인 순간을 만들었는데, 이번 영상은 그보다는 조금 무난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난해한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모순적인 감각을 주류 브랜드의 캠페인으로 볼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신선하다.
귀에 쏙 들어오는 나래이션은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에 출연하면서 새삼 화제가 된 줄리엣 루이스가 맡았고,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실제 촬영으로 임팩트 있는 화면을 만들어낸 촬영은 [그래비티]와 [레버넌트], [송투송] 같은 영화로 유명한 엠마누엘 루베즈키 감독이 맡았다. 영상에 흐르는 건 보니 엠의 “Sunny”인데, 이 노래는 1966년 바비 햅의 원곡을 1976년에 리메이크한 것으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곡들 중 하나로 꼽히는 노래다. 지금까지 무려 100개가 넘는 버전으로 리메이크되었고 80년대 디스코 붐을 일으킨 노래기도 하다.
이런 면면들이 이 영상을 좀 더 흥미로운 것으로, 앞서 얘기했듯 브랜드의 커머셜 캠페인 이상의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영화적이라거나 다큐멘터리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앱솔루트는 이제까지 쭉 그래왔다. 시차를 두고 꾸준히 공개된 다른 영상들도 찾아보면 여기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