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드노아 제로 (2014)
2010년 이후에 방송된 TV애니메이션 중에서 수작으로 꼽는 작품. 많은 팬들이 용두사미가 되었다고 비판했지만, 그것마저도 견딜 만 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로 입증한 우로부치 겐의 탁월한 기획력을 재확인했던 작품. 심지어 [알드노아 제로]는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와 같은 설계도를 가진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SF 작품 전통에서 양분되어 있던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의 세계관을 하나로 결합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각종 초능력으로 현실감없는 설정을 무지막지한 액션 장면으로 무화시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타격감과 쾌감에 집중하면서 드라마를 슬쩍 끼워넣는 슈퍼로봇물의 전통을, 21세기적인 관점에서 현재까지 입증된 물리학 법칙이 지배하는 공간-우주와 지구-에 놓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했다. 요컨대 '말도 안되는 것이 말이 되는 세계에서 벌어질 때 그것을 어떻게 납득시키느냐'의 문제.
게다가 사실상,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지만 눈 앞에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설명하기 위해 엄청난 인력과 자원이 투입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벌어진다면? 설명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지만, 그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요컨대 '말이 되는 세계'라는 것은 절대적인 법칙이고, 그 법칙 아래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알드노아 제로]에서 진행되는 화성인의 지구 침공은 사실상 '말도 안되는 상황'의 연속이다. 그들이 운용하는 병기는 지구의 물리학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인데, 그것은 화성인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과학적 근거는 모르지만 작동은 할 수 있는 것. 그런데 지구인의 입장에서 이 압도적인 무기를 가진 외계 병기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평범한 모범생인 이나호는 수업시간에 배운 기본적인 물리학 법칙으로 이 외계 병기들을 해치운다. [알드노아 제로]의 쾌감은 바로 거기에서 온다. 매회 외계 병기들은 더 말도 안되는 설정을 가져오고, 이나호는 매번 새로운 수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한다. 물론 허점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과학 수업이 아닌 이상 이 정도의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요컨대 이 작품은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을 한 화면에 담고 싶다는 오타쿠의 욕망을, 스테이지가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퀴즈쇼처럼 풀어낸다.
그런데 나는 한편 이 작품을 통해서, 2010년 이후의 모바일 비즈니스 플레이어들이 고뇌를 엿보기도 한다. 업계와 업종이 뒤섞이는 현재의 비즈니스 환경은 말도 안되는 것과 말이 되는 것의 결합을 요청하고, 다수의 스타트업들은 그 복수의 문제를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미션을 가진다.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이라는 분리된 세계관이 [알드노아 제로]에서 결합된 것처럼, 신세기의 비즈니스 역시 저쪽과 이쪽을 연결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이라면, 의외로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