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코베인 – 누나야 | 파는 물건 (2003, 2012)
어떤 노래는 한참이 지나서야 되새겨진다. 최근에는 눈뜨고 코베인이 그랬다. 덕분에 이번 회에 아이돌이나 최신 히트곡을 쓰려고 했던 마음을 바꿨다. 이 곡에 대해 쓰지 않고는 못 배겼기 때문이다. 눈뜨고 코베인의 “누나야”는 10년 전 밴드의 데뷔 EP [파는 물건]에 수록된 곡으로, 최근 리마스터링되어 재발매되었다(당시 나는 이 곡보다는 “영국으로 가는 샘이”나 “그대는 냉장고”를 더 좋아했다). 이 곡은 명백히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 대한 오마주이지만 한편으론 도어즈(The Doors)의 “Rider’s on the Storm”이나 “The End”를 연상시키는 근사한 사이키델릭 트랙이다. 신서사이저 무그 톤이 펑크 록 스타일의 보컬과 결합해 상당한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여기엔 짧고 강렬한 가사도 한 몫 한다.
낯익은 골목길을 거꾸로 달려가 보자
하늘에는 거꾸로 매달린 커다란 아빠 머리
집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혼날 테지만
누나만은 내 편인걸,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누나야, 모두 쫓아내고 우리 둘이서만 살면 안 될까
누나야, 모두 쫓아내고 우리 둘이서만 살면 안 될까
누나는 예쁜 눈을 가지고 있었지
나는 그런 누나를 너무 좋아했었지
아빠는 누나를 혼내고만 있었지
엄마는 누나를 혼내고만 있었지
가부장의 권위가 폭력으로 대체되거나 폭력적으로 와해되는 세계
전반적으로 불온하고 음습한 뉘앙스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노랫말이다. 혹자는 몇 개의 키워드: 요컨대 패륜, 아동 학대, 친족 성폭력이나 근친애를 발견하거나 아니면, 킨제이와 라캉을 지나 ‘누나 모에’에 이르는, 통념상 범죄로 여겨지는 개념들, 정신분석학 용어들, 하위문화 개념들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자극하는 상상력은 가사로부터 캐낼 수 있는 이런 개념적 용어들로 온전히 수렴되지 않는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개념을 활용하는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노래는 동요 “엄마야 누나야”가 진술하는 이상향으로부터 자극받은 상상력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가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이 낭만적 목가주의에 대한 평행 우주적 세계라고 하는 게 타당해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매혹적이다. 가사와 사운드가 합심해 만드는 이미지가 선명하다. 그래서 굳이 의미를 찾게 된다. “낯익은 골목길을”부터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어”까지의 첫 단락이 특히 그렇다. ‘거꾸로’와 ‘아빠 머리’, ‘집’과 ‘누나’ 그리고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내뱉는 타이밍이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이 세계는 골목길을 거꾸로 달려갈 때에나 비로소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거꾸로 매달린 아빠 머리’의 감시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세계다. 흔히 정서적 감각이 투영되는 ‘얼굴’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아빠)머리’는 가부장의 절대 권력이자, 심지어 거꾸로 매달려 있으므로 무시무시하고 괴상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상징물아다. 그때 ‘집’으로 상징되는 가족 공동체는 ‘아이’를 구속하고 가두는 주박이자 감옥이 된다. 그러므로 곧이어 등장하는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란 구절이 쾌감을 선사하는 때는, 청자들이 실제 이 압박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 때다. 바꿔 말해 이 음습하고 불온한, ‘반가족적인 세계관’에 매료되지 못할 때 이 노래는 단지 이상하게 들리고, 눈뜨고 코베인은 쉽게 ‘취향에 맞지 않는 밴드’가 되거나 ‘키치 밴드’로 불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간편한 평가는 눈뜨고 코베인에 부당한 일이다.
“아빠, 가족, 외계인이 등장한다면 그건 눈뜨고 코베인의 음악이다”라는 장기하의 말대로, 이들이 묘사하는 세계는 가부장의 권위가 폭력으로 대체되거나 폭력적으로 와해되는 세계다. 세계는 늘 위협적이고, 혹은 위협을 받고 있으며 우리는 그 안에서 분열적이다. 이때 눈뜨고 코베인은 실험실의 플라스크 속에다가 거짓말과 협박, 감시와 트라우마가 지배하는 세계를 만든 다음 그걸 가지고 이것저것 실험하는 과학자 집단과 유사하다. 눈뜨고 코베인의 노래에 있어 창작자의 절대적 시점이 무엇보다 강조되며, 그래서 과정과 결과, 묘사와 기록이 중요해지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이들 음악에 연민은 있되 윤리가 없다는 인상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러나 바로 같은 이유로 눈뜨고 코베인의 음악은 비로소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고 거기에 속한다. 억압과 저항, 폭력과 자기파괴, 죄의식과 쾌락이 대체로 구분되지 않고 섞인다는 점에서 특히 이들은, 적어도 내겐 김창완/산울림보다는 짐 모리슨/도어즈에 가깝다. 이 반-낭만주의에 근거한 모더니티는 지난 10년 간 “아빠가 벽장” “납골묘” “바훔톨로메” “네 종종 전화할게요” “당신 발 밑” “일렉트릭 빔” 등으로 착실하게 구축되어온, 불가항력적인 힘이 지배하는 시공간의 산물이다. 요컨대 “누나야”는 밴드의 최근작 [Murder’s High]의 원점이자, 밴드가 설계한 그 아름답고 삐뚤어진 세계관의 ‘프리퀄’이다. | 2012.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