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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진 Jul 22. 2017

평양냉면 먹고 싶네

김대중 – 300에 30 | 블루스 더, Blues (2012)

내가 처음 자취를 한 건 1994년이었다. 경기도 안산의 대학동, 학교 바로 앞의 원룸(이라지만 모두들 ‘닭장’이라고 불렀다)이었는데 보증금 없이 월세 8만원이었다. 아무리 94년이라도 이쯤 되면 이미 방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2평 남짓한 곳에 책상만 덜렁 놓인 곳이었다. 거기서 2년을 살고 군대에 갔다. 제대한 뒤엔 학교 총학생회실 구석에 소파 두 개를 붙이고 1년 정도를 지냈다. 난방이 안 되어 겨울 아침엔 천원을 주고 교내 이발소에서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아야 했다. 졸업하고 회사 다닐 때엔 홍대 앞 단골 술집 주인이 구한 상수동 전셋집, 거기에 남는 방 하나에 들어갔다. 공과금 빼고 월 24만원이었다. 94년의 원룸보다 좁은 1.5평 방에서 1년 정도 살다 (마침내!) 서교동에 월세 방을 구했다. 500에 32만원(35만원이었는데 3만원 깎았다)이었다. 단독주택 1층을 개조해 원룸 3개를 만든 곳. 좁았다. 지금 그곳에는 상가 건물이 들어섰다, 아무튼.


음악이 산업화 되기 전의 가객-스토리텔러와 비슷한 김대중


김대중의 “300에 30″을 들으면 이런 기억들이 내림차순으로 정렬한다. 그땐 친구들이 살 집을 구할 때도 종종 함께 다녔다. 2호선 순환선을 타고 서울을 뱅뱅 돌았다. 한 친구는 전철 창밖을 보다 말고 문득 “집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살 데는 하나도 없네.”라고 중얼거렸다. “300에 30″을 만든 박형곤(서명처럼 등장하는 이름, 블루스 하모니카 연주자 ‘박형’이다)도 그랬다고 한다. 지역에 살던 후배가 마침 서울에 취직하게 되어 살 집이 필요했는데, 그때 돈이 300에 30이었다고. 후배와 함께 부동산 주인을 따라다니며 정말 말도 안 나오는 집을 마주한 경험을 노래에 담았다. 


(처음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박형입니다.
박형은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블루스 하모니카 연주자입니다.
1997년 3월 경기도 안성 내리에서 우리 둘은 처음 만났습니다.)

삼백에 삼십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동네 옥상위로 온종일 끌려다니네
이것은 연탄창고 아닌가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만 같아요
평양냉면 먹고 싶네

삼백에 삼십으로 녹번동에 가보니 동네 지하실로 온종일 끌려다니네
이것은 방공호가 아닌가 핵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할 것 같아요
평양냉면 먹고 싶네

삼백에 삼십으로 이태원에 가보니 수염 난 언니들이 나를 반기네
이건 내 이상형이 아닌데 오늘밤 이 돈을 전부 다 써버리고 싶어요
평양냉면 먹고 싶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싶네)
평양냉면 먹고 싶네, 먹고 싶네


돈 없는 젊은이들을 서울의 업앤다운, 옥탑방과 반지하로 몰고 가던 것이 부동산 주인이었다면, 이 청승맞은 노래를 쭈욱 이끌어 가는 건 ‘해학’이다. 옥탑 방 앞에선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만 같아요” 눙치고, 반 지하를 둘러볼 땐 “핵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할 거 같아요” 읊어댄다. “수염 난 언니들이” 반기는 이태원에선 “내 이상형이 아닌데 오늘 밤 이 돈을 전부 다 써버리고 싶어요”라고도 노래한다(개인적으론 이 부분이 제일 좋다). 이 ‘해학’은 반어와 아이러니에서 나온다. 어차피 뾰족한 수도 없으니 차라리 히히덕거리고 마는 뭐 그런 농담. 그래서 노래 끝에 뜬금없이 “평양냉면 먹고 싶네”라고 외친다. 마감에 치이는 날마다 ‘산토리 프리미엄 맥주 한 잔만!’이란 심정과도 비슷한데(고난을 거스를 때에야 욕망은 마침내 구체적이 된다), 에라, 방이고 뭐고 그냥 맛있는 거나 먹으면 딱 좋겠네.


해학, 요컨대 반어와 역설, 풍자는 대중음악의 토대였다. 저잣거리 양인을 사로잡던 탈 놀이도, 흑인 소작농들을 밤마다 꼬드기던 블루스도 해학을 발판으로 현실의 고통을 비틀거나 조롱하며 피로한 삶을 위로했다. 오늘 아침 내 돈을 갖고 튄 나쁜 년은 매일 같이 날 부려먹기만 하는 백인 여주인이고, 밤마다 나를 꼬드기는 악마는 비루한 현실의 버팀목인 신앙을 위협하는 쾌락이다. 곰보 가득 못난이 말뚝이는 틈만나면 양반을 조롱하며 골탕 먹이고선 시치미를 뚝 뗀다. 그 해학 밑에 자학과 자조가 깔렸다는 점에서 김대중의 블루스도, 진작에 델타 블루스 앨범을 발표한 하헌진도 마찬가지다. 헌데 둘은 또한 미묘하게 다르다. 하헌진의 블루스가 의외로 공격적인 위트로 가득하다면(“내게 술과 돈을”, 혹은 “정신 없이 물고 빨고 땀에 쩔어 뒹굴고 내 방에 침대가 생겼다네”라고 무심히 반복하는 목소리) 보다 입체적인 말투의 김대중은 음악이 산업화 되기 전의 가객, 스토리텔러로서의 지위를 자연스레 얻게 된다(“불효자는 놉니다”와 “씨 없는 수박”을 들어보라).


한편 “300에 30″에는 21세기 서울의 삶이 경험적으로 담긴다. 해묵은 자취방의 기억을 굳이 꺼낸 것처럼, 이 노래는 사람들이 듣고 부르는, 그러니까 소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경험들이 중첩되어 재생산될 여지도 많다(이 도시에서 우리는 모두 떠도는 고아들이므로). 다시 말해 이 노래의 힘은, 개인의 경험이 자연스레 한 시절에 대한 비유로 탈바꿈할 때의 예술적 쾌감에 있다. 불리고 들리는, 소비되는 중에 더욱 단단해지기 마련인 이 ‘리얼리티’는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는데 그 현실감이야말로 이 블루스의 오리지널리티일 것이다. 그렇다면 김대중은, 하헌진과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동시적으로 ‘한국형 블루스’의 모범을 새로 고쳐 쓰는 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과정을 목격하게 된 나로선 김대중과 박형곤의 “300에 30″을  올해 가장 중요한 노래로 꼽을 수밖에 없다. 201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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