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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진 Jul 22. 2017

일단은, 러브 송

김일두 - 문제 없어요 | 문제 없어요, 2012

아니요, 사랑이 이기적일 순 없어요


대학 2학년 때의 일이다. 교양철학 수업 중에 문득 강사가 “사랑이 정말 이타적이라고 생각하나요?”라고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이라 까무룩 졸던 친구들도 반짝 눈을 뜨고선 귀를 쫑긋 세웠다. “사랑은 사실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 마음의 본질은 자기애, 즉 대상을 사랑하는 자기 모습에 대한 애정이죠. 사랑이 이타적이라는 건 일종의 신화예요.” 강사의 말이 끝나자 몇몇(특히 여학생들)은 “에이~”라고 했지만 대다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랬다. ‘이 선생님, 재미있는데?’란 생각도 했다.


잠시 우리의 반응을 살피던 강사는 곧 “아니, 틀렸습니다. 사랑은 이기적일 수 없어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강의실은 어수선해졌다. “그건 사랑을 빙자한 이기심입니다.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건 궁극적으로 이타심이기 때문이에요. 헷갈리지 마세요. 여러분이 사랑을 해보면 알게 되겠지만. 아무튼, 그럼 서양 철학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봅시다.” 라고 말을 이었다. 수업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각인된 ‘사랑=이타적’이란 명제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 후로 어떤 시절의 나는 연애와 사랑을 분리하기도 했고, 어떤 때의 나는 ‘사랑은 속임수’라 생각했다. 사랑이란 말이 유행가에 너무 많이 등장해 차마 입 밖에 내기에도 부끄럽기도 했다. 한편 남들과는 다른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자칫 남자답지 못하단 소리를 들을까봐 오랫동안 감췄던 얘기지만, 사실은 20대에 ‘진정한 사랑’을 찾고도 싶었다.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를 (그렇게 몰래) 좋아했던가. 


그 어둡고 칙칙한 공간에서
당신의 수수함은 횃불 같아요
눈 오는 이 밤
세상의 엄마들 다음으로
아름다운 당신과
사랑의 맞담배를 피워요

당신이 이혼녀라 할지라도 난 좋아요
가진 게 에이즈뿐이라도 문제없어요
그게 나의 마음

당신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담배 뿐 아니라 ROCK N ROLL도 끊겠어요
15번 버스 타고 특수용접 학원에도
지하철 타고 대학입시 학원에도 다닐 거예요
그대가 날
사랑해 준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이 노래를 부르는 김일두의 목소리는 탁하게 가라앉는다. 가끔 갈라지기도 한다. 절절하게, 100퍼센트 진심으로 노래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부산 출신이라는 정보가 더해지면 왠지 부두에서 일하는 하층 계급의 사내가 1박에 8천 원짜리, 신발을 방으로 갖고 들어가야 하는데 세면대도 없는 여관방에 새빨간 입술로 담배 피우는 여자를 앉혀놓고 노래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이건 편견이다. 이런 장면은 80년대의 [TV문학관] 같은 걸로 학습된 클리셰고 이걸 떠올린다는 얘기는 우리, 아니 내게 신파의 전형 같은 게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점에서 김일두는 백현진과 비교될 만하다. 두 사람 모두 신파를 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백현진이 시처럼 파편화된 단어를 나열하고 위악적인 보컬로 반예술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은연중에 엘리트주의를 드러낸다면(그래서 그는 차라리 대중음악 바깥에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김일두는 신파 소설의 클리셰에 제법 세밀한 묘사를 더하면서 ‘이야기’를 완성한다. 김일두에게 노래-이야기에 대한 욕망이 있다는 점에서 그는 본질적으로 싱어-송라이터인데, 그것 또한 백현진과 비슷한 듯 다른 점이다. 백현진은 서사보다 이미지에 더 관심이 많고, 그것을 ‘다른 방식의 사운드’로 구현하고 싶은 걸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위악적이지 않은 보컬도 이 노래를 ‘언젠가 실제로 있었던 사건’처럼 여기게 돕는다. 흔히 ‘진정성’이라는 것이 실재하든 안하든, 이 노래에 진정성이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절절한 신파로 만들어진 노래에는 사랑의 속성과 본질에 대한 혼란스러운 의심을 거두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차라리 혁신적인데, 바로 질문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라고. 201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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