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5일
1. 집 바로 앞에 건물을 짓는 공사가 거의 끝나가자마자 그 옆 집이 건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당인리 발전소 개발 여파 덕분인지 상수동 변두리마저 확 바뀌는 게 느껴진다.
2. '소규모'에 대해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이건 마치, 소규모아카시아밴드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가벼운 충격 같은 것. 네트워크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데 필연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그걸 기반으로 데이터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하지만 우리 몸의 입장에서 데이터란, 하찮은 경험들의 편린일 뿐이다. 어쩌면 빅데이터는 세상을 바꾸는데, 아니 시장을 혁신시키는데, 아니 정확히 말해서 예측불가능한 시장을 내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애초에 시장이란, 그러니까 그걸 구성하고 있는 인간이란 도대체가 제멋대로인 존재이므로. 데이터 기반의 비즈니스, 란 결국 경험을 어떻게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중간 생략) 그러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다시, 관점과 맥락.
3. 이어서, 지금 시대에 '통찰력'이야말로 가장 유망한 상품이다. 아무래도 여러가지로 난감한 시대여서 그럴지도.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 상품성은 쉽게 사라질 것이다. 비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통찰력이란 쓸데없이 거추장스러운 장식에 불과하다.
4. 지난 세기와 21세기가 확연히 구분되는 건, 주변성의 부상일 것이다.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던 많은 것들이 다시 주목받는다. 아시아, 댄스음악, 젠더, 인종, 동네 등 정체성과 연관된 범주 뿐 아니라 감수성이나 분위기, 소비주의, 취향 등 사변적이고 주변적이라는 이유로 언어화되지 못하던/않던 감각이 새삼 중요해진다. 이때 핵심은 '사소하게 여겨진 것들의 목록'이 아니라 '사소함' 그 자체일 것이다. 고정되지 않고, 대립하는 가치(들). 요컨대 작고 귀여운 거울을 준비할 때가 왔다. 새로운 말이 탄생한다. 여성주의는 장식이 될 수 없다.
5. 엄마, 엄마, 엄마. (animato il tempo)
6. 주변에서 중심으로? 놉. 주변에서 주변으로. 중심은, 애초에 그랬던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닌 채로 흐려진다. 주변과 주변이 제각각의 구심력을 부여받는 세계. 언저리는 실제로 언저리에 있을 때 비로소 언저리가 된다.
7. [웨스트월드] 시즌2는 이 드라마가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은유라는 점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다시, 데이터로. 8화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등장할 때는 조금 소름 돋았다. HBO 드라마는 언제나 조금씩 과잉이고, 그런 식으로 잘난 척한다. 나처럼 형편없는 허영덩어리에게 딱 맞는 스토리텔링이라서, 꽤나 짜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말해,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8. [허리케인 조]의 50주년을 기념한 리메이크 [메가로 박스]가 방송 중이다. 2018년에 구식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재미를 준다.
9. '더스비다니어'는 길가에서 만나는 사람들끼리 흔히 주고받는 작별인사래. 그런데도 어딘지 지금 헤어지면 다신 만나지 못할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인사 같은 데가 있지 않어? '더스비다니어'라고 나직이 말하고 나서 그 말을 한 사람은 눈 나리는 밤에 기차를 타고 지평선 너머로 영영 가버리는 거야. (김승옥, [다산성], 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