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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진 May 17. 2020

밤레터#04 | 한결같기를 바라는 밤, 차우진입니다

수요일 밤 9시, '밤에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뮤직레터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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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다'


원래는 '본질'이나 '기본'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문득 그 단어를 쓰기가 주저되었어요. 그러다가 '한결같다'는 말의 어감이 좋아서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습니다. 좀 더 부드럽고 친밀한 느낌이라서요. '본질' '기본' 모두 좋은 말인데 너무 딱딱하다는 인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째서인지 혼나는 느낌도 들고요.  

한결같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한결같은 사람들도 떠오릅니다. 제 주변의 누군가들이요.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아끼는 사람들이 되고, 제 삶의 스승이 된 사람들. 매일 얘기를 나누진 못하지만 늘 마음에 머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는 밤입니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와 동네 카페에서 만나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할 수 있는 것, 그런 마음에 대해 얘기했어요. 
"100퍼센트의 마음, 어때요?"
그가 말했습니다. "너무 좋아요!" 대답하는데 문득 불가능성이 떠올랐습니다. 불가능함을 꿈꾸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겠지. 마음이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태도'가 많은 걸 결정한다고 옮겨 적었는데, 새삼 그 기반이 바로 마음이 아닌가 싶어요. 거기서 많은 것들이 자란다고요.




⚓️ '기준'에 대해 생각하는 밤

'한결같다'의 말 뜻을 찾아보니 "변하지 않고 언제나 같다." "모두 하나와 같다."고 합니다. 요즘 특히 강조되는 얘기 같아요. 그래서 '썸트렌드(sometrend)'라는 빅데이터 서비스로 '한결같다'는 말이 인스타그램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좀 찾아봤습니다. 사실 제가 이제야(!)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해보는데, 온갖 사람들이 다 여기 있는 것 같더라고요.

결과를 보면, 한결같음은 '멋진' 느낌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런 걸 '기대'할 만큼 '좋은' 것이기도 해요.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 같은 거니까요. 그냥 좋아 보이는 게 아니라,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좋은 겁니다. 그래서 당연히, 어렵겠죠.
한결같은 취향, 한결같은 마음. 누군가 멋지다고 생각할 때 저도 이런 기준을 떠올려요. 그래서 '지금이 한결같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변치 않기를, 이 마음에 무언가 단단하게 뿌리박고 튼튼하게 자라기를 희망합니다. 


그런데 뒤집어보면 한결같은 건 바로 그 한결같음을 위해 어떤 것들을 거절하거나, 포기하거나 버릴 만큼 담담하고 단호하고 냉정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요, 글을 쓰면서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단호한 어조로 쓰지 못해서, 그 자신없음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세상에 의미없는 현상도, 쓰레기 같은 작품도 없다'는 말을 지팡이 삼아 오래도록 더듬거렸지만(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다는데 정확하진 않습니다. 아, 네 뭐 이런 식이죠ㅠㅠ), 모자란 실력을 그럴 듯한 말로 가리는 게 아닐까, 겁이 났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인 사람이 되면 어쩌지...

그래서 '한결같다'는 말, 생각만해도 아득하고 또 자신없고, 어휴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후다닥 변하고 곳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튀어나오는데 어떻게 한결 같을 수 있겠어. 모두가 불변의 가치를 칭송하지만, 그럴 만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같고요.
하지만 동시에, 유물론자로서 저는 세상에 불변은 없다고 믿어요. 마음 역시 바뀌는 게 당연합니다. 다만 끝없이 미세조정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돕겠어'라는 마음을 온갖 것들이 흔들때, 그 마음은 사실은 불변하지 않고 끊임없이 미세조정되는 거라고요. 그래서 한결같음이 사실은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게 아닐까, 싶었어요. 단단한 의지와 타고난 본성이 담긴 게 아니라 마음은 애초에 허약하고 우리는 그 허약함을 끌어안고 자라는 게 아닐까요. 
이 연약하고 부드러운 마음이 온갖 도전에 부러지지 않기를 바라며 '기준'을 찾게 됩니다. 부드럽고 말랑해서 잘 휘어지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라도 나를 잡아줄 수 있는 기준이요. 인생에서 그런 닻 하나를 갖고 싶어집니다.


♪조동익을 듣는 밤

며칠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서 레터를 씁니다. 무려 26년 만에 발표한 새 앨범이에요. 그 긴 시간동안 조동익의 한결같음, 그의 기준을 짐작해 봅니다.

조동익 - 날개 II (8:32) | 2020

⨕원나잇 바이브 from TMI.fm

조동익이라면 하나뮤직, 제주도가 떠오릅니다. 오늘 선곡은 거기서 출발했습니다.

하나뮤직의 일원이었다가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는 윤영배는 음악과 생태주의를 삶의 기준으로 삼은 싱어송라이터입니다. 2011년 온스테이지 촬영으로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9년 동안 저와 제 주변이 빠르게 바뀌는 걸 보면서, 가끔 그가 선택한 삶의 태도를 떠올리고 돌아보곤 했습니다. 오늘 선곡한 음악가들 모두 제게는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함께 듣고 싶었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한결같기를 바라는 밤, 차우진이었습니다.


윤영배 - 바람의 소리 | 2011, 온스테이지 ver.

두물머리 유기농 단지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당시 4대강 사업의 시발점이었던 그곳에서는 1년 간 매일같이 '팔당 유기농지 보존을 위한' 천주교 미사가 열렸고, 윤영배는 거기서 일하고 있었어요. 9년 전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쓴 글입니다. <윤영배, 혹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강아솔 - 나의 대답 (4:05) | 2014, 동네방네작은콘서트 ver.

제주도와 싱어송라이터라면 저는 강아솔을 떠올립니다. 일렉트릭뮤즈의 '동네방네작은콘서트' 영상으로,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어느 때보다 그대, 정직한 사람이길"이라는 가사가 날카롭게 찔러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곡입니다.


김목인 - 한결같은 사람 (2:42) | 2014, 동네방네작은콘서트 ver.

제주 세화 해변에서 촬영된 영상이에요. 김목인의 노래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곡은 특히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또한 그 그림의 빈 곳을 응시하게 됩니다. 이렇게 마무리되거든요.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부르지 / 아, 이 한결같은 사람 / 그러나 왜 그라고 한결같았겠는가 / 아, 이 한결같은 사람"


이아립 - 이름 없는 거리 이름 없는 우리 (4:04) | 2010, 카페 벨로주 (촬영: 이로)

10년 전 영상에는 제게 특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립언니'라 부르게 허락해 준 이아립 싱어송라이터, 제가 늘 본받고 싶은 선배 박정용 대표의 카페 벨로주, 이걸 찍은 독립책방 유어마인드의 운영자인 이로. 본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이들에게서 많은 걸 배웠고 또 얻고 있습니다.


원나잇 바이브 | TMI.fm 전체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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