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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진 Jul 22. 2017

생활밀착형 노랫말

좋아서하는밴드 - 0.4 | 우리가 계절이라면 (2013)

언젠가 듣기론, 좋아서 하는 밴드는 애초에 앨범을 낼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공연을 활동의 기반으로 삼으며 현장에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지향하는, 일종의 공동체적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밴드로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여겼다. 하지만 ‘기념 삼아’ 낸 첫 싱글을 토대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의 반경도 더 넓어지자 ‘음반’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이 얘기를 나눈 게 대략 2년 전 즈음이니 좋아서 하는 밴드가 1집이라는 형태로 그 고민을 일단락지은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 셈이다.


낭만과 위트야말로 이 긍정적인 에너지의 근원이다


좋아서 하는 밴드에 대해 사람들은 대략 두 가지 방향을 가리킨다. 하나는 기획력. 이들은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더 잘 보여주는 데 많은 수고를 들인다. ‘보신 콘서트’라 명명한 정규공연을 열고,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한 회사를 찾아가는 ‘사무실 구석 콘서트’를 진행하는 기획력을 비롯해, 각종 행사와 공연에 섭외될 때마다 이들은 ‘업무 진행’하듯이 의견을 조율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른 하나는 생활 밀착형 노래. 이것은 좋아서 하는 밴드의 노래 그 자체에 대한 인상으로, 대부분 직관적인 노랫말에 기인한다. 여기서 다룰 얘기기도 하다.


좋아서 하는 밴드의 노랫말은 쉽다. 단어와 비유가 지시하는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어떤 순간을 묘사한다. 그 순간은 낭만적이기도 하고, 성찰적이기도 하며, 또한 사색적이기도 하다. 재밌는 건 이런 일관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각 멤버들의 노래가 각각 다른 특징을 지닌다는 점이다. 요컨대 조준호의 노래에는 자조적인 위트가 있고 백가영의 노래에는 사색적인 특징이 어른거린다. 안복진의 노래는 낭만적이고 손현의 노래는 아기자기하다. 알려진 대로 이들은 노래를 만든 사람이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데, 각 곡들은 서로의 특징들을 조금씩 나누어가지며 좋아서 하는 밴드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조준호와 안복진의 노래를 좋아한다. 특히 조준호의 “감정의 이름”과 안복진의 “0.4”는 듣는 재미에 더해 노랫말을 뒤따르는 즐거움을 준다. 여기엔 연극적인 목소리(조준호)와 정돈된 음색(안복진)도 힘을 보태는데, 노래를 듣다보면 어느새 이 목소리가 안내하는 장면으로 따라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때 낭만과 위트야말로 이 밴드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의 근원이다. 사실 좋아서 하는 밴드의 노래들은 모두 어느 정도의 반어적인 점을 지니는데, 기대와 배반 혹은 한계와 극복의 가벼운 대비가 결과적으로 달콤쌉싸름한 정서의 충돌을 만든다. 그리고 이런 충돌을 통해 가사와 멜로디의 긍정성은 좀 더 부각된다. 경제적으로 조율된 멜로디, 일상적 경험을 토대로 삼은 노랫말이 장점으로 여겨지는 것도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이 음악을 좋은 쪽으로 이끌고, 더불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밴드가 지속해나갈 수 있는 힘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 노래를 통해 약간의 힘을 얻었다고, 울적했던 기분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2013.02.04


좋아서 하는 밴드 - 0.4 (작사/작곡/노래: 안복진)

맞은편 문에 서있는 낯익은 그가 날 보며 웃네. 이젠 잘 보이지 않는 노선표만큼 아른하네.
늘상 너에겐 여름이 남들보다도 이르게 오지. 눈을 비벼 다시 봐도 저 사람은 너일 것 같아.
발을 내민다, 널 향해 걸어간다. 멀어보이던 너의 얼굴이 점점 또렷해진다.
딱 너 같은 얼굴 아니 내가 아는 너는 아냐. 착각이란 걸 안 순간 늦어버렸네.
내 눈은 0.4구나 내 맘은 0.4구나.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는 넌 날 자꾸 괴롭혀.
온 세상이 뿌옇게 보여 내 눈은.
널 바래다주던 동네 익숙한 뒷모습을 보았어. 목 끝까지 네 이름을 외치려다 입을 다물었어.
늘상 너에겐 겨울이 남들보다도 이르게 오지. 눈을 비벼 다시 봐도 저 사람은 너일 것 같아
어쩜 널 닮은 사람 참 이렇게도 많은 건지. 내가 걷는 거리엔 어디든지 나타나.
사실 널 본 다 해도 우린 달라질게 없는 걸. 시간이 갈수록 흐릿해져 가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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