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우진 Jul 22. 2017

스모크 or 스모우크

3호선버터플라이 – 스모우크핫커피리필 | Dreamtalk(2012)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모국어/한국어에 대한 유난한 애착이 있다. 그런데 그 애착은 ‘국어교육원’의 것과는 다른, 아니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안팎의 도전에 고군분투하는 한국어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쓰이는 한국말의 질감을 살리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시인은 언어의 뿌리를 캐는 광부들이고, 시란 그렇게 파헤쳐지고 쌓이는 흙더미로 짓는 성이라고 생각한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새 앨범(무려 8년 만이다)인의 첫 곡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노래는 두 개의 층에 따로 놓인 4개의 문장이 지독할 만큼 반복되는 곡이다. 그런데 그 문장들은 의미와 맥락이 아니라 오직 이미지 구현에만 애쓴다. 설명할 순 없지만 듣고 있으면 아득하고, 또한 슬프고 한편 충만한 감각에 휩싸이는데, 그러다 문득 왜 ‘스모크’가 아니라 ‘스모우크’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무슨 뜻인지도 모를 단어들을 중얼거리게 된다


사실 이 노래는 그저 들어서는 노랫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발음은 정확하지 않고, 귀를 기울일라치면 다른 소리가 자꾸 끼어든다. 선명한 첫 두 마디 후에는 중저음의 남자 보컬, 노이즈, 효과음이 개입하고 정박으로 뛰는 비트는 천천히 여러 개로 쪼개진다. 특히 “스모우크핫”에 이어지는 “커피리필”은 엇박인데, 여기서 생긴 긴장감은 곧바로 “달이뜨지않고니가뜨는밤”의 가쁜 속도감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부여된 속도감이 동일한 프레이즈를 지배하면서 16회나 반복된다. 그 열여섯 번 반복되는 중에 홀수 회마다 각각 다른, 앞서 언급한 소리들이 하나씩, 둘씩 보태진다. 요컨대 이 노래는 가장 단순한 리프를 복잡하게 겹쳐가며 완성된다. 그러는 동안 중독적인 리듬감이 쌓이고 저도 모르게, ‘무슨 뜻인지도 모를 단어들’을 중얼거리게 된다. 


이때 중요한 건 조성이 바뀌는 브릿지다. 1층에서 두리번두리번 흥얼대던 감각이 고조되려는 찰나, 2층으로 올라가는/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스모우크핫커피리필 달이뜨지않고니가뜨는밤”을 조심스레 따르던 안정감은 거기서 온통 뒤엉키고 비약되어 집약된 감정을 밀쳐낸다. 그 짧은 혼란이 끝나면 다시 안정된 감각이 찾아오는데, 덕분에 이전의 감정은 더욱 고조되고 마침내 노래의 하이라이트인 “붉은눈시울망초 심장을누르는돌”이 등장한다. 2층/지하층은 1층보다 더 화려하고 직관적이다. 보컬은 하이 톤으로 비상하고 이펙터로 재현되는 공간감은 극단적으로 강조된다. 우리는 어쨌든 이전과는 다른 세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스모우크핫커피리필 달이뜨지않고니가뜨는밤
스모우크핫커피리필 달이뜨지않고니가뜨는밤

붉은눈시울망초 심장을누르는돌
붉은눈시울망초 뜨거운피귀뚜리피리
붉은눈시울망초 심장을누르는돌
붉은눈시울망초 지나가는흰구름이쓰는이름


이 과정에서 노랫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의 가사는 맥락이나 의미보다 발음에 우선권을 부여해 만든 문장이다. ㅅ과 ㅇ의 부드러운 발음은 ㅋ과 ㅍ의 거친 발음과 뒤섞이고, 후렴구에서는 ㄷ과 ㅁ, ㅂ과 ㄴ, ㅁ과 ㄷ, ㄸ과 ㅍ이 자연스럽게 엮인다. 무성음이 유성음과 마찰음, 파찰음과 파열음과 붙으며 자연스레 연결되는 이 흐름이 음악적 특징으로 전환된다. ‘스모크’가 아니라 ‘스모우크’인 이유는 결국 이 운율, 말맛을 살리려는 표기로 시적 허용이기도 하다. 물론 다수의 노래에서 이런 변칙이 다양하게 허용되는 건 사실이지만, 여기서는 구조의 일부이자 음악적 요소로 자리 잡고 있음을 기억하자. “붉은눈시울망초”는 끝말잇기처럼 그저 나오는 대로 받아적은 것 같고 그 주변을 맴도는 소리는 이 정체불명의 무드를 ‘깊은 밤 안개 속’처럼 감싼다. 노래에 내재된 아련하고 복잡한 분위기를 짓다가 허물다가 또 쌓아올리는 모든 사운드 효과는 결국 모국어의 맛을 살리기 위해 쓰인다.


이쯤에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이자 시인인 성기완은 여러 방면으로 텍스트와 사운드를 이으려는 시도를 해왔고(솔로 앨범과 시집을 동시 발매했던 것부터 난해한 사운드 아트까지), 밴드 역시 소리의 재현을 통해 과거와 현재, 여기와 저기를 연결하고자 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내게는 이 음악이 마치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사랑에 빠지리라!’는 저주처럼 스산하고 슬프면서 또한 기쁨에 충만한 감각을 준다. 이 모순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흐릿하고 모호한, 층층이 겹쳐진 소리의 질감 외에 또 무엇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2012.10.29

매거진의 이전글 생활밀착형 노랫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