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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우진 Jul 22. 2017

밀었다가 당겼다가

시와 - 나는 당신이 | 시와, 커피 (2013)

‘연애 잘하는 법’, ‘연애의 기술’, ‘연애 카운슬링’, ‘연애 바이블’ 등등. 검색창에 ‘연애’란 단어를 치면 이런 게 등장한다. 책 제목, 블로그 포스팅, 지식검색, 뉴스, 카페와 사이트들에 흩뿌려진 광고와 제목들. 과연 연애야말로 동시대 한국인들에게 (부동산과 더불어) 가장 큰 위협이구나.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이토록 기술적인 방법론에 목을 맬까. ’20살에 1억 자산 만들기’, ‘아파트 말고 오피스텔을 노려라!’ 같은 레토릭처럼 연애 역시 대상과 이유보다 기술이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바야흐로 이 땅에서 ‘연애’는 업무의 영역에 들어섰거나, 혹은 노동 과잉 사회의 한국이 모든 걸 업무처럼 여기게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연애가 고도의 커뮤니케이션인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청년들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이자 ‘정상화’의 규범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걸까. 사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건 아닌가. 그러니까 이런 기능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내면이나 서로의 관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자기 성찰이 아닌가. 시와의 새 노래, “나는 당신이”의 짤막한 노랫말이 새삼스레 들리는 이유다.   

      

좋았다가 싫었다가 좋았다가 서운했다가
좋았다가 미웠다가 좋았다가
우리가 만난 진 한참 됐지 자랑삼아 말한 건 아냐
그동안 보냈던 시간 동안 실망한 날들도 많아
아마도 우리 서로 같아지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아
다르면 다른대로 그대로인 게 좋단 걸
알만한 때도 이젠 됐는데
좋았다가 싫었다가 좋았다가 서운했다가
좋았다가 미웠다가 좋았다가
더더더 좋았다가 


이 노랫말에 처음 떠오르는 건 ‘밀당’이다. 그런데 타이밍 맞게 잘 밀고 당기는 기술, 반복된 훈련과 연습과 자기계발을 통해 단련된 근육이 아니라 저도 모르게 ‘밀리고 당겨지는’ 감정의 진폭에 대한 고백 같다. 그러고 보면 ‘밀당’은 원래 본성에 가까운 성질이 아니었나. 알통을 키우는 것처럼 갈고 닦아 연마할 수 있는 게 아니라(물론 밀당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차라리 그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라 봐야할 것이다) 그저 자연스레 어쩔 도리없이 그리 되고 마는 것. 사실 내 기준에서 연애란 이상한 감정의 집합이다. 일종의 ‘패닉에 가깝게 고조된 감정이 지속되는 상태’라고 할 수도 있을텐데, 그래서 당연히 비정상적이고 비일상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그토록 연애를 갈망하다가도 무심결에 연애를 그만 두고 싶어지기도 한다. 만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새로운 누군가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때에, 이 복잡하고 난감하고 어려운 감정이 다소 진정되기를, 요컨대 안정된 감정 안에서 관계의 깊이가 쌓여가기를 바란다. 연애의 속성이란, 기간에 관계없이 이런 감정의 오르내림이 비정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노래가 겨누는 건 오히려 그 반대쪽인 것 같다. ‘만난 지 한참 된’ 연인이 ‘좋았다가 싫었다가 서운했다’고 읊는 것은 역설적으로 관계의 지속성이 불안에 있는 건 아닐까 되묻게 한다. 요컨대 안정적인 연애란 게 가능할까. 그 안락함이 ‘이성애 결혼 제도’를 통해 비로소 구현될 수 있을까. 높이 올랐다가 한없이 가라앉는 이 연애감정의 굴곡이 과연 정돈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우리는 파도가 잔잔해지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그 평온한 바다 한 가운데 미지의 폭풍우가 들이닥치기를 기대하는 걸까. 그러니, 이 노래를 잘 들어보자. 시와는 안정된 연애감정이란 게 없다고, 적어도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오히려 그 ‘싫었다가 좋았다가 서운했다가’를 반복하는 진폭이 관계를 더 깊게 만든다고 한다. 뭐지 이 기분은? 맞다, 이 노래는 ‘자랑질’이자 ‘염장질’이다. ‘자랑삼아 말한 게 아니’라더니… 하아, 어디서 약을 막 팔고….


한편 나는 이 짧고, 다소 심심한 노래가 연애 아닌 다른 것, 이를테면 ‘애정의 대상과 주고 받는 관계’에 대한 은유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게 음악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로 들린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만난 진 한참 된’ 음악이란 게 정말로 ‘좋았다가 싫었다가, 미웠다가 서운했다가’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이 진폭은 늘 당혹스럽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가도 영원히 함께 있으면 좋겠다 싶다가 또 에라이, 진짜 뭐하는 짓이람, 하게 된다. 물론 어느 틈에 ‘더더더’ 좋아지는 때가 있다. 음악으로 충만하고 글쓰기로 만족하는 때가 있다. 그래서 계속해서 듣고, 또 쓴다. 요컨대 연애든 음악이든 글쓰기든, 일종의 이상한 중독이자 질병인 셈이다. 이 노래는 거기서 즐겁게 아프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 | 2013.03.15


ps. 이 노래는 [시와, 커피]에 실렸다. 현대카드 뮤직과 밴드캠프, 아이튠즈에서만 살 수 있다(멜론/벅스/네이버 뮤직 같은 데엔 없단 얘기다). 아예 시와와 직거래(!)할 수도 있다. 홈페이지(http://blog.naver.com/weneedtrees/)에 더 자세한 얘기가 나오니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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