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01. 스트리밍이 음악 산업을 망쳤나요?
내 미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음악 산업의 입장에서 스트리밍은 이런 존재가 아닐까. 2020년과 2021년은 스트리밍이 마침내 음악 산업의 주류로 등극한 시점이자, 코로나19로 궁지에 내몰린 음악가들이 스트리밍으로 수익을 만드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시점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과연, 이게 음악계만의 이야기일까?
스트리밍은 음악, 영화, 방송에만 국한된 게 아니지. 구독 모델과도 밀착되어 있는 이 '소비자 중심 사업모델'은 엔터테인먼트와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도 확장 중이야. 그러니까, 지금 음악계가 겪는 문제는 다른 분야에서 함께 겪고 있거나, 곧 겪게 될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오늘은 좀 특별한 글을 소개하려고 해.
새소년,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실리카겔 등과 함께 일한 붕가붕가레코드의 대표이자 카이스트 과학기술(CT)대학원에서 소셜미디어, 추천 시스템, 서비스 플랫폼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고건혁(곰사장)님이 3단계에 걸쳐 '스트리밍 시대에 독립 아티스트의 생존 방향'에 대한 글을 연재할 거야.
이 글은 음악가 뿐 아니라 크리에이터, 사업가, 프로젝트 매니저, 마케터 등 디지털 환경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고 봐.
그리고 연재가 끝난 뒤인 5월 28일 금요일 저녁 8시에는 줌 미팅이 열릴 예정.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어서 무료 참가 및 유튜브 스트리밍으로도 진행할 건데, 자세한 건 따로 공유할테니 %name%님도 꼭 참여해주면 좋겠어.
그럼, 시작합니다. �
Phase 01. 스트리밍이 음악산업을 망쳤나요?
1. 음악 산업의 죽음
2. 음악 산업의 구원자, 스포티파이
3. 스트리밍이 음악 산업을 정말로 망쳤나?
(예정)
스트리밍을 고칠 때입니다: Phase 02
스트리밍을 고칠 때입니다: Phase 03
"스트리밍을 고칠 때입니다. (It's Time to Fix Streaming)"
이 말은 작년 6월, 영국의 음악인 조합(Musicians' Union)은 작곡가 단체인 아이보어 아카데미(Ivors Academy)와 손을 잡고 시작한 '음악을 살아있게 해요 (Keep Music Alive)'라는 캠페인의 모토입니다. 그리고 올해 3월, 미국의 10개 도시를 비롯한 세계 전역에서 음악가 노동 조합 연맹(Union of Musicians and Allied Workers)이 벌인 시위는 직접적으로 세계 최대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스포티파이에정의를 (#JusticeAtSpotify)"이라는 피켓을 들고요.
그런데 이와 같은 '음악가 vs. 스트리밍 서비스' 대결은 처음이 아닙니다. 2017년에는 '테일러 스위프트 vs. 애플뮤직'이었고, 2009년에는 '밥 딜런 vs. 스포티파이'가 있었으니까요. 다만 뮤지션 개인과 회사 사이의 합의로 수습됐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쉽게 사그러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영국에서는 의회 차원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올해 4월에는 폴 매카트니부터 크리스 마틴을 아우르는 이름난 음악가들이 나서서 공식적으로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의 바탕에는 코로나19가 있습니다. 음악가의 일은 녹음을 하고 공연을 하는 것인데 공연이 금지되어 오로지 녹음밖에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 그동안 묻어뒀던 문제는 이제 생존을 좌우하게 되었고, 그래서 음악가들은 묻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돈을 내는데 왜 우리는 잔돈밖에 못 받는 거지?"
영국 의회가 스트리밍 문제에 대해 나서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트위터를 중심으로 펼쳐진 '#부서진음반 (#BrokenRecord)' 캠페인입니다. 이 캠페인을 시작한 영국 음악가 톰 그레이(Tom Gray)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문제는 스트리밍이 늘 문화를 잡아먹어왔고 모든 수입을 시장의 소수에게 줬다는 것이죠. 항상 그랬습니다. 이제 그건 아주 해롭습니다. 위험할 정도로 해로운 거죠."
결국 문제는 분배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인식에 따라 현재 주요한 쟁점은 현재 스트리밍 서비스가 주로 채택하고 있는 '비례 배분 (pro-rata)' 정산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속가능한 음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스트리밍의 오래된 미래'인 한국의 경우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스트리밍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은 이미 2011년에 음악 청자의 90%가 실물음반도 다운로드도 아닌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음악가들과 제작자들이 음원 서비스에 맞서 '스톱 덤핑 뮤직(Stop Dumping Music)'이라는 모토로 집단행동이 나섭니다. 나름대로는 음악계 사상 최대의 집단 행동이었고, 결국 음원 정액제 폐지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으나 몇 가지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음악가, 제작자, 그리고 작곡자, 작사자의 몫이 늘어난 것이죠.
그런데 그래서 크게 달라진 게 있나요? 스트리밍 서비스의 몫은 줄었고 창작자들의 몫이 늘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음악가들은 충분히 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스트리밍 서비스의 몫을 더 줄여야 할까요? 스트리밍 서비스가 하나도 안 가져가고 고스란히 음악가들에게 넘겨주면 대다수의 음악가들이 충분히 벌 수 있게 될까요?
그러니까 정말로 스트리밍을 고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요? 좀 더 정확히는, 스트리밍의 분배를 고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죠.
1. 지난 10년 동안 결국 스트리밍이 대세가 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청중들의 선택이었다.
2. 다수의 음악가들이 스트리밍을 통해 충분히 벌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청중들의 성향 때문이다.
3. 1과 2를 고려했을 때 스트리밍은 최대 다수의 청중을 만족시키는 최적의 음악 경험 방식이다.
그럼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의 글은 이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입니다. 일단 1번부터 시작해보죠.
이어서 읽기: https://maily.so/draft.briefing/posts/b3830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