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02. 90%를 위한 스트리밍은 없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90%를 위한 스트리밍은 없습니다'라는 주제의 글을 준비했어. 늘 말하지만, 이 글은 음악가 뿐 아니라 크리에이터, 사업가, 프로젝트 매니저, 마케터 등 디지털 환경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고 봐.
그리고 연재가 끝난 뒤인 5월 28일 금요일 저녁 8시에 줌 미팅이 열릴 예정. 주제는 '스트리밍 환경에서 인디펜던트하게 활동하는 것'이 될 거고, 참석자는 차우진, 곰사장, 그리고 오주환(밴드 아도이)으로 정해졌어. 개인적으로 아도이야말로 독립 음악가의 비전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 평소에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 중이니, 차우진님도 꼭 참여해주면 좋겠어. 친구들도 막 불러. �
그럼 이번 호, 시작합니다. �
Phase 01. 스트리밍이 음악산업을 망쳤나요?
0. 아티스트의 적이 된 음악 스트리밍
1. 음악 산업의 죽음
2. 음악 산업의 구원자, 스포티파이
3. 스트리밍은 음악 산업을 정말로 망가뜨렸나?
Phase 02. 90%를 위한 스트리밍은 없습니다
1. 이긴 놈이 장땡(Winner Takes All)
2. 스트리밍은 '탑 아티스트'를 사랑하나요?
3. 스트리밍의 청중들은 '탑 아티스트'를 사랑합니다
4. 답은? 스트리밍 바깥에
스트리밍을 고칠 때입니다: Phase 03 (예정)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을 봉쇄당한 후 생존 위기에 처한 음악가들은 묻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돈을 내는데, 왜 우리(음악가)는 잔돈밖에 못 받는 거지?
지난 1년 간 영국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스트리밍을 고치자 (Fix Streaming)'이라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스트리밍을 고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재의 첫번째 글에서 저는 지난 20년 간의 변화를 통해 이에 대한 근거를 말씀드렸습니다.
1) 1999년을 기점으로 인터넷, mp3 포맷, 그리고 냅스터가 불붙인 불법적인 음악 공유는 그 후 10년 동안 음악 산업을 36%로 축소시켰다.
2)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불법 다운로드보다 편리'하면서, '불법 다운로드보다 그리 비싸지 않은' 서비스가 필요했다.
3) 그리고 월 1만원만 내면 세상의 모든 노래를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정액제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했다.
20년 전에는 10곡을 구매하기 위해 1만원을 내야했지만 이제는 모든 곡을 월 1만원의 가격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격이 내려가지 않았다면 여전히 사람들은 공짜로 불법 다운로드를 받고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어쩌면 음악 산업 자체가 소멸했을 지도 모르고요.
아예 한 푼도 못 받는 것에 비하면 월 1만원이라도 받는 게 낫겠죠? 그리고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음악 소비자들의 선택에 의해 시장이 찾아낸 균형 가격입니다. 실제로 2014년에 바닥을 찍은 음악 시장은 스트리밍의 성장에 힘입어 다시 성장하고 있죠.
현재 스트리밍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에 많은 문제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선택한 현재의 저렴한 음악 가격 구조 아래서라면, 아무리 스트리밍을 고친다고 하더라도 잔돈만 벌던 음악가가 갑자기 충분한 돈을 버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스트리밍을 통해 음악가들이 충분히 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불편한, 아니 잔인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진실입니다. 음악으로 성공하기를 꿈꾸는 것 뿐 아니라, 그저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겁니다. 저한테도 그러니까요.
파레토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80/20 법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80%의 결과(consequence)가 20%의 원인(cause)에서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수학적으로는 확률분포 중 하나인 멱함수 분포(power law distribution)로 설명된다고 하는데,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부의 불평등한 분배(상위 20%의 부자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한다)를 설명하는데 사용했다는 이유로 파레토 분포(Pareto distribution)라고도 불립니다.
그런데 이걸 '법칙'이라고 하는 까닭은 부의 분배 외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현상들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보면 컴퓨터 공학부터 스포츠, 보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들이 나와 있습니다. 예컨대 야구에서는 전체 선수 중 15%가 85%의 승리를 만들어낸다는 얘기도 있네요. 인터넷의 댓글 중 80%가 20%의 사용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도 있고요. 간략한 설명은 위키백과 한글판에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영문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법칙을 음악 산업에 적용해보면 '20%의 아티스트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따라서 80%의 아티스트가 차지하는 매출은 전체 매출의 20%에 불과하다'는 가설이 가능합니다.
이게 사실일까요? 사실이 아닙니다. 훨씬 더 극단적이거든요. 최소한 스트리밍에서는 그렇습니다.
2020년 9월에 나온 분석 결과에 따르면 스트리밍 서비스에 1개 이상의 음원을 올려놓은 아티스트는 160만에 달합니다. 전체 스트리밍의 90%는 그 중 상위 1%인 1만 6천 아티스트가 차지합니다. 이때 범위를 상위 10%인 16만 아티스트까지 넓혀보면, 이들의 점유율은 무려 99.4%에 달합니다. 상위 10% 미만인 144만 아티스트의 점유율은 단지 0.6%에 불과한 것이죠.
https://www.rollingstone.com/pro/news/top-1-percent-streaming-1055005/
실제 금액으로 계산해보면 더 확실하게 차이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2020년 스트리밍의 전체 매출은 134억 달러입니다. 위의 통계를 바탕으로 속한 백분위 별로 한 아티스트의 연 평균 매출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 상위 1% 이상(1만 6천 아티스트): $753,750 (약 8억 5천만원)
- 상위 1% 미만 10% 이상(14만 4천 아티스트): $8,747 (약 990만원)
- 상위 10% 미만(144만 아티스트): $55 (약 6만 2천원)
스트리밍 환경에서 아티스트의 연 평균 매출
요컨대 전 세계에 있는 144만 아티스트는 스트리밍에서 연간 6만원, 한 달에 5천원 꼴의 매출을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글의 말미에 저는 세 가지 가설을 제안했습니다.
a. 스트리밍 서비스가 수익을 가로채고 있다.
b. 스트리밍 서비스가 모든 수입을 소수에게 분배한다.
c. 세 배 늘었지만 스트리밍 회당 3원으로는 티가 안난다.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c의 '세 배 늘었지만 스트리밍 회당 3원으로는 티가 안난다'에 대해서: 지난 5년 간 스트리밍이 3배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음악가들의 수입은 고만고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위 10%에 속하지 않는 144만 아티스트가 그렇습니다. 2만원에서 6만원으로 늘어났어도 티도 안 나는 거죠.
그리고 a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수익을 가로채고 있다'에 대해서: 만약 많은 음악가들의 주장하는 것처럼 스트리밍 서비스의 수수료를 낮춰볼까요? 현행 수수료율을 30%라 생각하고 이걸 20%로 낮춰보죠. 상위 10%에 속하지 않는 144만 아티스트에 돌아가는 몫은 연 6천원, 월 5백원이 늘어날 따름입니다.
결국 스트리밍에서 잔돈 밖에 벌지 못하는 까닭은, 상위 10%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상위 1%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봐야겠네요.
이제 마지막 남은 질문은 b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모든 수입을 소수에게 분배한다'에 관한 것입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모든 수입을 소수에게 분배하고 있나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게 스트리밍 서비스의 문제일까요? 다시 말해, 그러니까 스트리밍 서비스가 의도적으로 상위 1% 아티스트에 청중-사용자들을 집중시키는 걸까요?
이어서읽기: https://maily.so/draft.briefing/posts/dbcd4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