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여자, 센

3분 소설

by 차우진

놀이공원 앞 작은 부스 안에는 그 정도 사이즈의 조그만 여자가 앉아 있다. 여자는 자신이 어쩌면 박스에 잘 포장된 초컬릿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진열대에 올려놓은 채 시즌을 넘겨버린 초컬릿 박스. 발렌타인 데이가 지나면 어차피 재고로 분류되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식으로 폐기될 운명의 그, 예쁘고 초라한 장미가 장식된 작은 상자.


흰색 블라우스에 곤색 자켓의 유니폼을 입은 여자의 가슴께에는 작고 네모나고 반듯한 명함이 달려있다. 센. 그게 본명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센이 그녀의 진짜 이름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그 이름이 왠지 좋았다. 어릴 때에는 놀림도 많이 받았다. 헛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고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부모가 이혼했고 무당인 할머니와 단 둘이 산다는 얘기도 있었고 원조교제를 한다는 소문도 있었고 아빠가 조폭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자살기도를 했다가 실패한 뒤로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얘기도 있었다. 죽은 동물을 살려낸다는 얘기도 들었다.


센은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던 또래 여자애들을 악에 받쳐 두들겨 패주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소문은 더 막강해져갔다. 마침내 소문이 네스 호의 괴물처럼 실체도 없이 거대한 공포가 되었을 때 센은 모든 것을 그만뒀다. 학교도 그만두고 왕따 노릇도 그만뒀다. 학교에 가는 대신 골목길을 배회할 때는 자유로웠다. 행복했다. 그제야 사는 게 의미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내고 검정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아낸 뒤에 아버지 친구의 소개로 소도시 변두리에 있는 놀이공원의 매표소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이력서에는 그냥 고졸이라고 썼다. 지병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다. 성격은 명랑합니다. 센은 면접관 앞에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이었다. 센은 명랑한 여자였다. 하지만 센은 사실 해파리였다. 바다에 사는 그 해파리, 맞다.


젤리피쉬 신드롬입니다. 해파리 증후군이요. 이 약 먹으면 됩니다. 식후 30분 후에 복용하세요. 의사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오랫동안 믿어왔던 막연한 의심이 마침내 구체적인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할렐루야. 센은 의사가 준 약을 먹지 않았다. 센은 자신이 해파리라는 사실에 내심 기뻐했다. 그동안 센은 막연하게 자신이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이름 때문에 괴상한 소문에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한 것 같았지만 사실 센은 다른 종이라서 그랬던 거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겁을 내니까. 두려움은 언제나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너는 날 몰라. 왜냐면 난 다르니까. 센은 생각했다. 그때마다 달콤했다.


센이 일하는 놀이공원은 날짜 지난 신문의 문화면 같았다. 어린이날에만 사람들이 조금 북적거릴 뿐, 평소에는 거의 아무도 찾지 않았다. 변두리 놀이공원은 버스 종점에 있었다. 센은 몇 년 째 출근길 만원 버스가 센이 내릴 때쯤 텅 비는 모습을 바라봤다. 병원에 다녀온 다음 날, 센은 매표소에 앉아 먼 바다를 생각하거나 의사가 준 약을 만지작거렸다. 그날 하루 센이 판매한 표는 4장이었다. 오후 1시가 넘어 찾아온, 학교를 땡땡이친 것인지 원래 학교를 안다니는 것인지 불분명한 열 몇 살짜리 커플이 있었고, 등이 좀 굽은 노인이 있었다. 서른 몇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도 있었다. 남자는 매표소 근처에서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뭔가를 포기한 얼굴로 입장권을 샀다. 센은 그 남자를 종종 봤다. 남자는 매번 매표소 근처에서 머뭇거리다가 그냥 돌아서 갔다. 보통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머뭇거리던 남자였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센의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요즘 흰머리가 부쩍 늘어난 센의 엄마는 혼기가 찬 센에게 여기저기의 선 자리를 들고 왔다. 딸이 해파리라는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할까. 센은 생각해봤다. 엄마가 뭐라고 할 지 센도 잘 몰랐다. 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손을 뻗어 누군가를 만지면 그 사람의 살이 부풀어 오를까. 의사는 해파리 병이 드물지만 결혼 적령기의 여자들 사이에서 가끔 발병한다고 말했다. 아니야, 나는 원래부터 해파리였어. 센은 생각했다. 번 돈을 술 마시고 노는데 다 쓰는 여자들이요. 의사가 말했다. 비웃는 표정의 그 얼굴에는 개기름이 흘렀다.


센은 의사의 아내를 생각했다. 그녀는 행복할까. 하지만 그건 센이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행복할까. 센은 그것도 잘 몰랐다. 대신 요즘 같은 불경기에 조그만 박스에 앉아 하루에 6시간 씩 근무하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은 했다. 물론 좋지도 않았다. 센의 이름을 조롱하던 여학교의 여자애들은 대부분 서울로, 다른 도시로, 여기가 아닌 먼 곳의 대학과 직장으로 떠났다. 센은 그들이 그곳에서 부디 성공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다시는 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기를 가끔 기도했다.


어린 커플은 두어 시간 뒤에 놀이공원을 빠져나갔다. 조악한 바이킹과 회전목마와 유아용 리프트를 타고 범퍼카 출구 뒤에서 몰래 키스를 나눴을 것이다. 날라리들. 센은 생각했다. 저 애들은 행복할까. 깔깔거리며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던 센이 생각했다. 그들이 나간 뒤 조금 후 등이 굽은 노인이 놀이공원을 빠져나갔다. 들어갈 때처럼 느릿느릿, 조금은 흐느적거리는 느낌으로 걷고 있었다. 저 사람도 해파리. 센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사실 그 모습은 아버지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그것은 어딘가 장엄한 비애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센은 아빠가 더 늙기 전에 좀 친절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는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나왔다. 센이 교대할 시간이었다. 남자 혼자 놀이공원에서 뭘 했을까. 센은 바이킹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남자를 떠올렸다. 좀 우스웠다. 피식. 센은 저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와 데이트를 신청하는 상상을 해봤다. 그럼 나는 그 사람에게, 전 해파리에요, 라고 말해야지. 그럼 뭐라고 할까. 과연 뭐라고 할까. 해파리라도 괜찮아요! 에이 설마. 명랑한 센은 공연한 생각에 혼자 피식, 피식 웃었다.


저 멀리서 김씨 아줌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4시 10분에 센과 교대할 것이다. 그녀는 항상 10분씩 늦었다. 센보다 네 살 많은 여자였지만 스물에 결혼해 벌써 둘째를 둔 여자였다. 아기처럼 깨끗한 피부를 가졌지만 덩치가 하마 같아서 사람들은 그녀를 그냥 아줌마라고 불렀다. 물론 명랑한 센은 네 살 많은 그녀 앞에서는 애살맞은 목소리로 언니이이라고 불렀다.


교대를 마친 센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주머니에는 의사가 준 약봉지가 있었다. 이걸 먹으면 병이 정말 다 나을까. 벌어 놓은 돈을 전부 술 마시고 노는데 쓰는 여자가 아니라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의 월급을 쪼개 대출금을 갚는 여자가 될까. 해파리가 아니라 사람이 되는 걸까. 하지만 센은 그게 뭔지 잘 몰랐다. 어쨌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곧 버스 정류장이었다. 거기엔 아까의 그 남자가 멀뚱히 서 있었다. 종점이었다. 센은 그 남자의 옆에 섰다. 약봉지를 만지작거리며. 그때 남자가 센을 불렀다. 저... 저기요. 있죠. 저기, 어, 아, 잠깐만요. 남자는 귀까지 빨간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그걸 보자 센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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